[기고] 묻지마 범죄는 고립과 외로움의 패턴 가진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쓰는 용어가 되었지만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는 매우 낯설고 생소한 용어가 있다.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단어 자체가 사회적 관계망을 단절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물리적 거리두기’ 사용을 권장했었다.
코로나가 발생한 지 3년이 넘은 현재, 코로나가 종식되면 경제가 살아나고 삶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와 달리 불평등과 격차가 더 심해졌고 세계보건기구가 우려했던 사회적 관계망 단절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마음의 거리두기가 되면서 고립과 외로움은 과거보다 더 큰 사회적 질병이 되었고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또 고립과 외로움은 열등감, 격차, 차별, 사회적 불만과 연결되어 신림역과 서현역의 묻지마 살인, 시신을 훼손한 정유정 살인사건 등 불특정 타인을 대상으로 벌이는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묻지마 범죄(이상행동 범죄) 가해자들은 조현병 등 각종 정신질환이 원인이라, 고립과 외로움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묻지마 범죄를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일으키는 범죄라고 판단하면 해결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심지어 약간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조차 의심하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어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동안 발생한 묻지마 범죄를 분석하면 사회 불만, 열등감, 차별, 분노 등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원인에서 출발하지만 반드시 고립과 외로움의 과정을 거쳤다. 이것이 묻지마 범죄의 일반적 패턴이다. 이 패턴에서 범죄의 원인은 해결하기 매우 힘들다.
예를 들어 열심히 노력했는데 나만 취업 못 하는 것 같다. 부모 잘 만나 일 안 해도 잘 쓰고 잘 먹는 데 나는 노력해서 왜 이렇게 살까 등의 차별과 불만, 격차와 불평등 등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구도에서 나온 산물이라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사회제도 전반의 변화 없이는 힘들다. 그래서 현재 가장 적절한 방법은 고립과 외로움의 과정에 접근하는 것이다.
묻지마 범죄와 유사한 패턴을 가진 두 가지 아픈 사회현상이 있다. 바로 고독사와 극단적 선택이다. 묻지마 범죄처럼 원인은 다양하지만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참으면 고독사, 못 참으면 극단적 선택이 된다. 그래서 고독사, 극단적 선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고립과 외로움의 과정에 대한 접근이다.
그런데 우리는 실천은 되지 못했지만 소 뒷걸음에 쥐 잡듯이 부산에서 묻지마 범죄와 패턴이 같은 극단적 선택에 대해 깊이 다룬 적이 있다. 2015~16년, 국제신문은 20, 40대의 극단적 선택을 주제로 ‘절망하는 이에게 희망을’이라는 기획보도를 했다. 이 기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의 선택 전후를 직접 확인하고 패턴을 정리하여 절망사로 규정했었다. 한발 더 나아가 기업, 단체, 부산시 등 절망사를 막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고립의 단계에서 사회적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고 절망사를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아쉽게도 사업화는 되지 못했지만 실천계획까지 수립했었다.
또한 시민은 잘 모르지만 2019년 부산에서 전국 최초로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질병을 줄이기 위해 ‘부산시민 외로움 치유와 행복증진을 위한 조례’가 제정되었다. 극단적 선택과 고독사, 묻지마 범죄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조례로 앞서 언급한 국제신문의 절망사 기획을 통해 수립한 실천계획에, 같은 패턴인 고독사와 묻지마 범죄를 포함한 것으로 외로움 치유센터를 실천 전략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례만 만들어졌을 뿐 현실에서 실천은 되지 못했다.
코로나가 사라져가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각박한 현실에 부딪히면서 마음의 거리두기가 되고 고립 외로움과 결합되면서 많은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그동안 노력과 경험을 잘 되짚어 보고 좋은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