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김유정 백일장 최우수상] 낙타 - 중등부 산문

손이현· 2023. 10. 1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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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현·서울 온곡중 2년

나는 걸었다.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계속 다리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다리엔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점점 눈앞도 흐릿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오아시스를 만날지도 모르잖아?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온통 캄캄한 도시는 황량한 사막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곳에 홀로 남겨져 의미 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우둔한 낙타 같았다. 그 순간 손 안에 든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누군가 내게 문자를 남겼음을 알렸다.

‘야, 한가하면 좀 나와라. 담배 사야 하는데 돈 좀 빌려 줘라.’

문자의 내용은 잔인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걸까. 나는 생각했다.

나는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을 보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평범했던 어느날, 홀로 나를 돌봐주시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누군가 나를 도맡아 키우기 위해 거리에 나가 과채를 팔던 할머니를 차로 치고 도망갔다고 했다. 나를 위해 위태롭지만 따스하게 감싸주던 외할머니라는 장벽은 너무나 갑자기 무너졌고, 나는 준비를 끝마치기도 전에 막막한 사막으로 내던져지고 말았다.

그 뒤로는 모든 일이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는 그나마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맡겨졌고, 평생 떠나지 않을 줄만 알았던 강원도를 떠나 서울로 향하게 되었다.

“안녕? 김운하라고 해. 강원도에서 왔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

처음 서울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간 날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너무 밝지도 않고 너무 어둡지도 않게 그런 무심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이 사막에서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야. 강원도에서 왔다고? 그럼 맨날 옥수수만 먹냐?”

누가 봐도 조롱 조가 섞여 있는 어조였다. 나는 발굽에 연신 침을 놓는 전갈을 대하는 낙타 마냥 아무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데 여긴 왜 왔냐?”

또 다른 질문이 들어왔다. 솔직히 대답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냥’이라 일관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그날부터 나는 점점 소외되어 가기 시작했다. ‘촌구석에서 이사 온 놈’이란 꼬리표는 날 계속 따라다녔다. 그래도 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버텼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이 사막도 끝이 보이고 오아시스가 나타날 거야’라고 계속 되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오늘 점심시간에 급식 같이 먹자! 괜찮지?”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아이는 자신을 동훈이라 소개했다. 동훈이는 나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밝고, 따뜻하며 다정했다. 나는 동훈이의 나와는 다른 면에 빠지고 말았다.

“운하야. 나 뭘 좀 사야 하는데… 혹시 돈 좀 빌려 줄 수 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동훈이도 바뀌기 시작했다. 한 달간의 짧은 우정을 빌미로 내게 조금씩 조금씩 돈을 빌려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금액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늘어나더니, 곧이어 빵을 사오라는 등의 심부름까지 시키기 시작했다. 나도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형식적인 우정마저 잃고 싶지 않았기에 늘 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물론 그 돈을 돌려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나날이 계속되던 중, 나는 우연히 길가에서 동훈이를 보게 되었다. 그에게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김운하 시골에서 왔더라니 진짜 호구야. 조금만 잘해주면 바로 ATM 된다니까?”

분명 동훈의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부정하려던 사실들이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날 덮쳐왔다.

난 걸었다. 그대로 반대편으로 뒤돌아 목적지 없이 걸었다. 캄캄한 사막 위 덩그러니 놓인 낙타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분명 오아시스라 믿었던 샘물이 완전히 말라버렸다. 더는 사막 위에서 걷지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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