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소박하지만 독창적… ‘하나의 장르’가 된 장욱진[미술을 읽다]
이번 전시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작품은 지난 60년간 오직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 몇의 기억 속에서 구전(口傳)되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발굴된 ‘가족’이다. 장욱진이 항상 머리맡에 걸어둘 만큼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자 생애 처음으로 돈을 받고 판매한 작품이다. 아쉬운 마음에 똑같은 그림을 다시 그리기도 했다(1972년작 ‘가족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부인 고 이순경 여사도 생전에 그림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고, 장녀 장경수는 이 작품을 장욱진의 대표작으로 꼽은 바 있다.
어쩌면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장욱진 회고전이 마지막 기회일지 몰랐다. 작품은 1964년 작가의 첫 개인전을 찾은 시오자와 사다오 씨가 구입해 일본으로 가져갔지만 그가 작품의 행방을 알리지 않은 채 사망해 작품 소재가 불분명했다. 이후 소장가의 아들인 시오자와 슌이치 씨도 “그림을 못 찾겠다”고 말하며 작품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방문을 거듭 거절했지만 이번에 겨우 허가했다.
일본 오사카 근교 소장가의 오래된 아틀리에는 수풀이 무성해 낫으로 길을 만들며 들어가야 했다. 전기도 끊기고 먼지도 수북한 아틀리에 안에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포기해야 하나’ 하는 순간 다락방 낡은 벽장에 눈길이 갔다. 겨우 비집고 들어간 벽장 안, 잔뜩 먼지를 뒤집어쓴 물건들 사이로 비스듬히 꽂혀 있는 작은 액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그림 한가운데에 1955년이란 작품의 제작 연도와 함께 장욱진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60년 동안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던 ‘가족’이 다시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시오자와 부부뿐 아니라 미술품 운송회사 직원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발견된 작품은 평생 가족 이미지를 그린 장욱진 가족도의 전범(典範)이라는 측면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대상이 군더더기 없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장욱진의 조형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의 가족도 중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아이들만이 함께 그려진 유일한 사례라는 점도 의미 깊다.
장욱진은 생전에 “나는 심플하다”는 말을 진언처럼 되뇌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낸 ‘심플’해 보이는 화면에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풍부한 서술성이 함축되어 있다. 가볍다면 한없이 가벼울 수도, 어렵다면 한없이 어려울 수 있는 그림이 장욱진 작품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의 풍부한 해석은 다시금 장욱진의 그림이 ‘심플하지만 심플하지 않은 그림’임을 상기하게 한다. BTS의 리더이자 작품 6점을 선뜻 출품한 소장가 RM도 1989년작 ‘노인’을 보며 “돌아가시기 일 년 전에 그리신 작품이라 그런지 왼쪽 위에 그려진 초승달이 마치 사후 세계로 가는 문의 입구를 묘사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 어떤 장욱진 관련 논문과 책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해석이었다.
장욱진은 재료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움과 하나의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작 태도를 보였다. 서양화를 기반으로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가미해 이 두 가지를 무리 없이 융합하고 일체(一體)를 이룬 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였다. 장욱진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미술사에 우뚝 서는 독자적 양식을 보여준 화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사가 향후 다양한 시각으로 더욱 풍성하게 쓰일 수 있음을 기대하게 한다.
장욱진은 앞과 뒤가 똑같은 심플하고도 정직한 화가이기도 했다. 장욱진은 “나는 정직하게 살아왔노라”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예술과 생활이 일치되는 모습을 보여준 보기 드문 화가였다. 그의 그림은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향해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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