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칼럼] 김기현의 선택

황정미 2023. 10. 1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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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복’ 기댄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
野 압도할 정책 의제 선점한 적 없어
용산에 쓴소리 전달, 공천 개혁 위해
당대표직이라도 던질 각오 돼 있나

서울 강서구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지난 11일 실시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보고 20대 딸이 깜짝 놀라더란다. “아빠, 어떻게 국민의힘 후보 득표율이 40% 가까이 나와요?” 여당 후보 참패로 국민의힘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해지자 보수 진영의 다른 지인도 비슷한 글을 보내왔다. ‘국민들은 국민의힘 후보가 표를 40% 얻었다는 데 놀라는데 권력에 취했던 당 지도부는 새삼스레 위기론을 얘기한다’고. 이번 보선 참패는 지난해 3월 대통령선거,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편에 섰던 중도층이 1년여 만에 대거 이탈한 결과로 분석된다.

기초자치단체장 선거를 ‘전국구급’으로 키운 건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다. 그러니 참패 원인도, 대책도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번 선거 결과는 야당 복에 의존한 정치의 실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윤석열정부에 ‘독이 든 사과’와 같다. 먹음직스럽지만 잘못 베어 물면 깊은 잠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다. 보선 원인을 제공한 김태우 전 구청장을 후보로 밀어붙인 건 이 대표 구속과 그에 따른 민주당 분열을 예단한 탓이다. 정권 핵심 인사들조차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을 짐작하지 못했다는 전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과적으로 명분 없는 단식 승부수를 던졌던 이 대표가 기사회생하는 발판만 만들어 줬다.
황정미 편집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당 내부에서는 ‘과반은 못돼도 제1당은 가능하다’는 총선 낙관론이 팽배했다. 이 역시 ‘이재명 리스크’를 근거로 한 전망이다. 이 대표 사법리스크가 여전하고 그에 대한 비호감도가 60%대에 달한다. 그러나 이번 보선에서 보듯 유권자들은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에 더 엄중한 잣대를 들이댔다. 윤 정부 출범 3년 차에 치러지는 내년 총선은 중간 평가가 될 공산이 크다. 거대 야당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는 변명은 안 통한다. 정부 여당은 정책적 성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게 빈약하면 정치적 내전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적폐청산, 검찰과의 전쟁에 골몰했던 문재인정부가 그랬다.

선거에서 지자 당정은 부랴부랴 회의를 갖고 의대 정원 확대 등 민생 현안을 논의했다. 본지를 비롯해 여러 언론이 올해 초부터 ‘구급차 뺑뺑이’ ‘응급실 뺑뺑이’로 숨진 사례를 들어 의사 수 증원 및 필수의료 인프라 확충 이슈를 제기했음에도 이제야 움직이는 것이다. 김기현 대표는 지난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보수만이 해낼 수 있는 ‘결정적 변화’를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결정적 변화’가 필요한 첫 과제로 노동 개혁과 같은 민생 경제를 꼽았다. 하지만 그동안 야당을 압도할 만한 정책 의제를 선점한 적이 없다. 대통령이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한 연금, 노동, 교육 개혁은 시동도 제대로 걸지 못한 상태다.

10·11 보선을 신호탄으로 내년 총선까지는 여당의 시간이다. 공천 개혁을 통해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을 내놓아야 한다. 중도층을 끌어안을 선거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지 못하면 윤 정부의 3대 개혁은 물 건너간다. 여당은 그제 의원총회를 열어 김기현 체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정리했다. 당 안팎에선 우려가 쏟아졌다. 대통령이 낙점한 김 대표가 용산에 쓴소리를 하고 공천권, 국정 현안에 당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여권 내부에서도 ‘용산 출장소’ 처지를 면키 힘들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온다.

김 대표는 의총에서 내년 총선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고 한다. 선거에서 지고 나면 그의 진퇴가 무슨 소용인가. 2016년 청와대의 ‘진박 공천’을 막지 못한 김무성 대표는 ‘옥새 들고 나르샤’ 해프닝으로 180석을 차지할 것이라던 총선에서 122석을 얻고 제1당 자리를 민주당에 내줬다. 보수 진영 붕괴의 서막이 됐다. 2016년 김무성 대표의 선택과 2023년 김기현 대표의 선택은 달라야 한다. 김 대표는 총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대표 자리, 지역구라도 내놓겠다는 각오를 밝혔어야 했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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