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가을 전차

2023. 10. 16.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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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내 목을 조르는 듯하였다.

내 옆에 앉은 굴뚝의 기사가 자기 머리를 양손으로 붙들고 중얼거리는 동안에도, 종을 딸랑이며, 빨랫줄에 걸린 색색의 옷들 단풍처럼 나부끼는 좁은 골목을 가을 전차가 달려가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몹시 아득하기만 하였다.

목을 조르듯 닥쳐오는 게 계절인지, 계절을 빙자한 이런저런 삶의 문제들인지 알 수 없지만 "가을 전차에 오르는 내 마음은 쓸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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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경
가을이 내 목을 조르는 듯하였다. 육교도 천변도 천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도 내 목을 조르는 듯하였다. 퇴근을 해도 갈 곳이 없는 나는 낡고 허름한 상가 골목을 쏘다니다가 양복 입은 흡혈귀 소설가와 마주쳐도, 백반집에서 혼자 밥 먹는 서대경 씨가 소리쳐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가을 햇살 부서져 내리는 고가도로 아래서, 가을 전차에 오르는 내 마음은 쓸쓸하기만 하였다. 하늘이 너무 파래요. 거리의 웃음이 너무 커요. 내 옆에 앉은 굴뚝의 기사가 자기 머리를 양손으로 붙들고 중얼거리는 동안에도, 종을 딸랑이며, 빨랫줄에 걸린 색색의 옷들 단풍처럼 나부끼는 좁은 골목을 가을 전차가 달려가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몹시 아득하기만 하였다. 나는 답답한 가을 넥타이 풀어헤치고, 철공소 앞 가을 바다 넘실대는 골목 끄트머리에 그냥 내려버린다. (후략)
가을 어귀에 들어 이 시를 읽자마자 마음을 빼앗긴다. “가을이 내 목을 조르는 듯하였다” 하는 첫 문장에서부터 대번에 시선을 강탈당한다. 목을 조르듯 닥쳐오는 게 계절인지, 계절을 빙자한 이런저런 삶의 문제들인지 알 수 없지만 “가을 전차에 오르는 내 마음은 쓸쓸하기만” 하다. 요즘 들어 부쩍 모든 게 멀고 희미하다. 빌딩과 빌딩 사이 그늘진 곳을 그림자처럼 숨어 배회하는 이들을 본다. 나를 본다. 계절 탓은 아닐 것이다. 아무렴, 가을은 죄가 없지.

그러나 정말 죄가 없나? 그렇다고 하기에 이 계절은 너무 막강한데. 천변의 코스모스도, 파란 하늘도 너무 왕성한데. 유독한데. 마음을 몹시도 아득하게 만드는 가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조락의 계절이 뿜어내는 이토록 격한 맹기.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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