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국가 상징 공간
국가 상징 공간 만들 수 없어
사회 구성원의 집단지성 의해
세월과 문화 어우러져야 생겨
지난달 11일,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와 국토교통부 그리고 서울시는 협의체를 구성해 ‘국가 상징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국가 상징 공간’이란 도시의 주요 역사, 문화 자산을 활용해 국가적 정체성을 표현하고 미래 도시 비전을 구현하는 시민 소통 공간”이라는 정의도 제시했다.
당시 언론은 정부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인용해 미국, 영국, 프랑스의 사례를 들면서 ‘국가 상징 거리’가 선진국이 되는 ‘필요조건’인 양 보도했다. 영국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트래펄가 광장까지가, 미국은 워싱턴의 의사당에서 링컨기념관에 이르는 내셔널몰과 의사당에서 백악관에 이르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가, 프랑스는 파리 개선문에서 콩코르드 광장까지의 샹젤리제 거리가 각각 해당 국가의 상징 거리라고 그림과 사진을 곁들여 소개했다.
2009년에는 국립민속박물관 강당에서 ‘국가 상징 거리 조성을 위한 심포지엄’이 열렸는데, 패널 한 사람의 비판적인 발표가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대한민국의 상징은 새 정부가 아름답게 꾸미려는 널찍한 길은 아니며 그렇다고 경복궁이나 숭례문도 아니라고 운을 뗐다. 그는 대한민국의 상징은 아마도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의 도시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대단위 아파트단지일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서 그는 국가의 상징은 그 나라의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이지 어떤 특정 정권이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런저런 논란 속에 ‘국가 상징 거리 조성 사업’은 사업 주체인 ‘건국 60주년 기념 사업 추진위원회’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흐지부지되었다.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들은 정부가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내세운 것에 대해 헌법 전문에 명시된 상해임시정부의 법통과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처사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건축물이나 조형물 등 도시의 풍경은 대중의 눈에 쉬이 띄는 요소라 위정자가 이를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픈 유혹에 끌리기 쉽다. 조선조 말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로 추락한 왕실의 권위를 높인다는 명분으로 열악한 국가재정에도 경복궁 중건을 추진했다. 조선을 식민지로 차지한 일본은 거대한 조선총독부 청사를 조선의 으뜸 궁궐인 경복궁 안마당에 세우고 그들의 신을 모신 조선신궁을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남산에 지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상징화했다. 히틀러는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1905∼1981)를 나치 독일의 건축 책임자로 임명해 자기의 정치적 야망을 건축과 도시로 연출하고자 했다. 슈페어는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3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스타디움을 나치의 집회를 위해 만들었고, 세계를 제패하고자 한 히틀러의 야망에 따라 베를린을 ‘게르마니아’라는 이름을 붙인 세계의 수도로 계획했다. 그러나 대중을 선동하는 프로파간다로 조작된 상징은 권력의 몰락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특정인이나 집단의 이해에 따라 국가의 상징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더더욱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국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정부가 나서 상징을 만들어내는 일은 21세기 대한민국보다는 북한이나 중국과 같은 전제 국가에나 있을 법하다. 올해 광복절 무렵 정부는 또다시 ‘건국절’에 대한 불을 지폈고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2008년에 비해 올해 하나 더 보태진 것은 정부가 육사에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을 철거하려다 국민의 반발에 부딪힌 일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고려, 백제,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 자웅을 겨루던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중심이었다. 도심에 큰 산과 넓은 강을 가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곳이며 대한민국의 문화가 모이고 용출하는 곳이다. 이곳은 특정한 이념을 가진 정치 집단이 자기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함부로 파헤치고 상징을 조작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상징은 사회 구성원의 ‘집단지성’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레 그 사회의 문화와 어우러져 생겨나는 것이지 몇몇 실력자의 뜻에 맞추어 단박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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