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종로구의회 '이전투구'
"조선 팔도 사람을 평해봐라"
조선을 세운 태조 임금 이성계가 하루는 개국공신 정도전에게 팔도 사람들의 기질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경기도는 경중미인(거울 속에 비친 미인) 충청도는 청풍명월(맑은 바람과 밝은 달) 전라도는 풍전세류(바람 앞에 하늘거리는 버들) 경상도는 송죽대절(소나무나 대나무 같은 굳은 절개) 강원도는 암하노불(바위 아래 늙은 부처) 황해도는 춘파투석(봄 물결에 던져진 돌) 평안도는 산림맹호(산속의 용맹한 호랑이)
이렇게 '4자 품평'을 하던 정도전은 그러나, 태조의 고향 함경도에 대해선 평을 하지 못합니다.
태조의 재촉에 정도전은 '이전투구(진흙밭에서 싸우는 개)'라고 말했고, 왕의 안색이 바뀌자 "함경도는 석전경우(돌밭을 가는 소)와 같은 우직한 품성도 갖고 있다"고 덧붙여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지요.
그런데 바로 지금 자기 이익만을 위해 볼썽사납게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종로구의회입니다.
작년 7월 출범한 직후부터 장기 휴업상태거든요. 그것도 감투싸움으로요.
갈등은 의장 선거 때 민주당 소속이던 구의원이 경선에서 떨어지자 국민의힘으로 이적을 하며 시작됩니다.
당을 옮긴 구의원이 의장에 당선되자 민주당은 의장 선출이 국민의힘 단독으로 진행됐다며 직무 정지 가처분 신청과 선거 무효 소송을 제기, 싸움이 길어지며 종로구의회는 출범 후 15개월 동안 의원 전원이 출석한 회의는 달랑 9차례, 조례를 통과시킨 회의도 5번뿐일 정도로 사실상 마비가 됐거든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이들의 감투싸움에 희생되는 건 애꿎은 서민입니다.
종로구가 의회에 제출한 307억 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은 심사도 받지 못해 취약계층 복지사업 등은 올스톱, 구청이 발의한 조례 19건도 처리가 안 돼 이대로 두면 내년부터 구민 대상 의료급여 사업은 중단돼 버립니다.
이렇게 구의회가 문을 닫았음에도 구의원들은 매달 400만 원 가까운 의정비와 수당을 꼬박꼬박 타간다니, 이런 지방의회가 필요할까요.
지금 이들의 행태는 "우린 없어도 됩니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 밖에 더 되나요.
지금 고성과 막말이 오가는 여의도 국회를 보면, 그래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정도전의 '이전투구'란 말에 안색이 변했던 이성계.
하지만 저 정도 되면 진흙탕 개싸움이라고 대놓고 말해도 안색이 변하긴커녕 아마 아무 말도 못할 것입니다.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종로구의회 '이전투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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