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국가복지 제대로 해야 서민이 산다
2023년 가을, 추위와 함께 고통이 길어질 것 같다. 고금리와 고물가로 가만히 있어도 소득은 줄고 일자리의 불안정성은 커지고 있다. 새벽시장에서 일거리를 찾지 못해 빈손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늘었다. 씀씀이를 줄여보려 하지만 주거비와 의료비를 줄일 순 없다. 정부는 허리띠를 조르라고 하지만 교통비와 에너지 비용이 올라버린 이상 한계는 있다. 학생들 등록금으로 월급받는 처지이기에 고민이 깊다. 더 오래 일해서 등록금을 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직과 폐업,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등 삶을 나락에 떨어뜨리는 위험 속에서 서민들이 이를 버텨낼 수 있는 힘은 갈수록 줄고 있다. 더욱이 경제적 고통은 하층에게 가중된다.
이럴수록 국가복지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우리의 복지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한국의 복지가 하층에게 가중되는 경기침체의 고통을 덜어내고 서민들이 사회권을 누리면서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데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현장 사회복지사들은 항상 자원 부족을 겪는다. 수원 세 모녀 사건 등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면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라는 요구는 커졌지만 찾아낸 이들을 제대로 지원해내기엔 국가의 복지 지원이 충분치 않다. 긴급지원은 기간이 짧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지원은 삶의 위기를 헤쳐가기에 부족하다. 어떻게든 여기저기 민간의 후원을 끌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이 역시 경기침체에 따라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 복지의 오래된 문제는 불충분함, 총량의 부족이다. 사회의 총 산출 중 복지에 할당하는 자원 자체가 적다. 202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4위라 한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빈곤과 불평등,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사회복지의 대응에 한국이 유사한 경제력을 가진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적은 자원을 투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지를 통한 재분배에 상대적으로 게으른 것이다. 그래서 어중간한(?) 가난은 지원에서 배제된다.
한국의 복지는 여전히 빈곤 예방 기능이 부족하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 보장 수준은 낮고 앞으로 오히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수십년을 꾸준히 일하며 연금 보험료를 낸 사람이라면 국가가 책임지는 연금으로 노후 최저생활 이상은 가능해야 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여러 복지국가에서 가장 큰 자원을 들여 해결해 온 것이 바로 이 문제이다. 그런데 한국의 복지에서 이런 목표는 실현된 적이 없다. 그 결과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가 내년부터 인상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척박한 땅에 단비가 되기엔 부족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인상 소식은 없다.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가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뒤늦게라도 보고서에 넣어 정부가 보장성 강화를 고려하도록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이를 위한 재정 방안은 삭제한다고 하니 국민과 정부에 온전한 판단 근거를 제공하지는 않는 것 같다.
국가복지에 관한 과감한 접근을 바란다. 서민의 고통이 가중되는 지금 국가복지의 역할이 고용 창출과 수요 창출을 통한 경제순환의 한 축으로 전면에 대두될 필요가 있다. 적어도 국가가 어려운 국면을 관리할 수 있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참으라고만 하기에는 윗목은 너무 춥고 추위는 길다. 나아가 국가는 경기침체에 굴하지 않고 긴 시야에서 미래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음을, 사람을 지킬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게 리더십이다. 진심으로 묻고 싶다. 서민들의 삶과 사회경제적 발전에 관해 정부는 어떤 비전을 보여주고 있는가?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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