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칼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한국의 안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국제 뉴스에서나 보는 남의 일일 뿐이다. 사람이 많이 죽고 다쳤다고 하니 마음이 아픈 정도랄까.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이 전쟁도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안보지형을 바꾸고, 따라서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흥미로운 ‘음모론’으로 시작해보자.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일은 지난 10월7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71회 생일이었다. 우연일까? 하마스의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와 그 일행은 올해 알려진 것만 해도 3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모스크바를 방문했고, 그로부터 한 달 뒤 푸틴 생일에 맞춰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측 주장에 따르면 러시아의 용병 기업 바그너가 하마스 전사들의 훈련을 도왔다고 하고, 아이언 돔을 무력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사이버 공격 또한 러시아와 관련된 해커그룹이 주도했다는 정보가 있다. 이란이 하마스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정보이지만, 러시아도 그 배후에 있다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지원을 갈라놓은 러시아뿐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모두 연결돼 있고, 따라서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토의 부활과 한·미·일을 비롯한 인도·태평양의 결집에 맞선 북·중·러의 움직임은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끌어왔다. 크게 보아 두 개의 시나리오가 있는데, 하나는 매우 위협적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조금 나은 정도이다. 위협적인 시나리오는 북·중·러의 밀착이 이뤄지고 북한은 이 과정에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할 기회를 챙긴다는 것이다. 북한 나진항에선 이미 평소의 3.5배가 넘는 컨테이너 선적이 관찰되었고, 북한제 무기와 탄약은 러시아로 옮겨진 후 철도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고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판단이다. 북한은 그 대가로 두 차례 실패한 스파이 위성 관련 기술을 받으려 한다는 게 정설이다. 중국은 민군겸용 기술과 부품을 러시아에 제공하고, 러시아는 북·중·러 연합군사훈련을 제안했다.
북·중·러의 밀착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위험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세 나라는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둘째, 어느 시점에서 북·중·러는 동시에 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군사력은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 이후에는 한 개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다른 한 개의 전쟁에서 교착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세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 각각이 핵무기를 수반한다면 얘기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조금 나은 시나리오도 위협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하용출 워싱턴대 교수에 따르면 세 나라는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기 마련이고 북한에 있어서 러시아가 중국을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북·중·러의 밀착이 즉각적인 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은 다소 과장된 진단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거의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북한의 처지를 생각할 때 북·러의 밀착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중국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북·중·러 밀착으로 인해 한·미·일 협력이 더욱 강화되는 것도 중국이 원치 않는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도 미국이 관여해야 할 군사적 위협이 매우 복잡해졌다는 판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기존의 북한, 중국, 대만,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판 9·11 사태까지 벌어졌다. 미국은 북한을 억제하는 데 쏟을 노력을 더 여러 곳으로 분산할 수밖에 없게 됐다.
며칠 전 미 의회는 초당적으로 합의된 ‘전략태세위원회 최종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2027년에서 2035년 사이에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핵능력을 보유하는 초유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미국과 동맹국들은 강력한 두 개의 적을 동시에 억제하고 필요시 패퇴시킬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기 위해 지금 즉시 지도자들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지금 우리 국회에서는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 중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자는 일에 지난 정부가 잘했는지 못했는지가 뭐 그리 중요한가. 여야 할 것 없이 특정 정권의 맥락이 아니라 글로벌 안보환경 변화의 맥락에서 근본적인 숙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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