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성공의 기원 담아 심은 큰 나무

기자 2023. 10. 16. 2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들은 후손의 성공을 기원하며 나무를 심었다.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살림집 대문 앞에 서 있는 ‘해남 연동리 녹우당 은행나무’(사진)가 그 나무다.

‘녹우당’은 500여년 전에 이 자리에 보금자리를 틀고 살림을 시작하면서 ‘해남윤씨’를 일으킨 어초은 윤효정((尹孝貞·1476~1543)을 시작으로 윤선도, 윤두서(尹斗緖·1688~1715) 등이 살림을 이어간 ‘해남윤씨 어초은파 종택’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전남 지역의 살림집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건물로, 보존 가치가 높아 1968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했다.

‘초록 비’라는 뜻의 당호 ‘녹우(綠雨)’는 이 집 울타리에 닿은 뒷산 숲의 비자나무가 바람이 불면 비 내리는 소리를 낼 만큼 무성하다는 걸 상징한다. 비자나무숲은 이곳에 처음 터 잡은 윤효정이 뒷산의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가난해질 것이라고 후손들에게 이르며 꾸준히 나무를 심어 가꾸라고 해서 조성한 인공 숲이다.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숲’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아름다운 숲이다.

이 종택을 지난 500년 동안 말없이 지켜온 대문 앞의 ‘해남 연동리 녹우당 은행나무’는 윤효정이 진사시에 합격한 아들을 축하하고 그 후손 대대로 가문의 명예를 지켜나갈 것을 기원하며 심은 나무로, 오랫동안 정성껏 지켜온 큰 나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뜻에 따라 나무는 높이를 23m까지 헌칠하게 키워 올렸고, 가슴높이 줄기 둘레도 6m나 될 만큼 우람하게 자랐다. 후손의 정성이 가득 담긴 덕분에 500년을 살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것도 특별하다. 이쯤 되는 연륜의 나무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외과수술 흔적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짙은 초록의 비자나무숲을 배경으로 가을이면 언제나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의 찬란함은 윤씨 가문은 물론이고 그를 바라보는 누구에게라도 성공의 기운을 북돋울 만큼 뜸직하다. 옛 사람의 뜻이 고마울 따름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