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성공의 기원 담아 심은 큰 나무
그때 그들은 후손의 성공을 기원하며 나무를 심었다.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살림집 대문 앞에 서 있는 ‘해남 연동리 녹우당 은행나무’(사진)가 그 나무다.
‘녹우당’은 500여년 전에 이 자리에 보금자리를 틀고 살림을 시작하면서 ‘해남윤씨’를 일으킨 어초은 윤효정((尹孝貞·1476~1543)을 시작으로 윤선도, 윤두서(尹斗緖·1688~1715) 등이 살림을 이어간 ‘해남윤씨 어초은파 종택’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전남 지역의 살림집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건물로, 보존 가치가 높아 1968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했다.
‘초록 비’라는 뜻의 당호 ‘녹우(綠雨)’는 이 집 울타리에 닿은 뒷산 숲의 비자나무가 바람이 불면 비 내리는 소리를 낼 만큼 무성하다는 걸 상징한다. 비자나무숲은 이곳에 처음 터 잡은 윤효정이 뒷산의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가난해질 것이라고 후손들에게 이르며 꾸준히 나무를 심어 가꾸라고 해서 조성한 인공 숲이다.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숲’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아름다운 숲이다.
이 종택을 지난 500년 동안 말없이 지켜온 대문 앞의 ‘해남 연동리 녹우당 은행나무’는 윤효정이 진사시에 합격한 아들을 축하하고 그 후손 대대로 가문의 명예를 지켜나갈 것을 기원하며 심은 나무로, 오랫동안 정성껏 지켜온 큰 나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뜻에 따라 나무는 높이를 23m까지 헌칠하게 키워 올렸고, 가슴높이 줄기 둘레도 6m나 될 만큼 우람하게 자랐다. 후손의 정성이 가득 담긴 덕분에 500년을 살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것도 특별하다. 이쯤 되는 연륜의 나무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외과수술 흔적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짙은 초록의 비자나무숲을 배경으로 가을이면 언제나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의 찬란함은 윤씨 가문은 물론이고 그를 바라보는 누구에게라도 성공의 기운을 북돋울 만큼 뜸직하다. 옛 사람의 뜻이 고마울 따름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이재명, 김혜경 선고 앞두고 “희생제물 된 아내, 죽고 싶을 만큼 미안”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또 아파트 지하주차장 ‘벤츠 전기차 화재’에…주민 수십명 대피
- [단독]“일로 와!” 이주노동자 사적 체포한 극우단체···결국 재판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