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명학교의 절박한 현실, 외면해선 안 된다
여명학교는 북한 이탈 청소년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하고 동화하게 하는 대안 교육시설로, 이들이 한국민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곳이다. 그런데 북한 이탈 청소년의 교육과 자활에 필요한 교육시설마저 반대 여론이 커 이전 계획이 백지화될 처지다. 대안학교를 세운 이유와 명분이 있을 텐데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 중인 여명학교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부는 북한 이탈 청소년들을 보듬고 교육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 이탈 청소년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무관심에 가깝다.
여명학교가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이전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학교 측은 중구 남산동의 한 건물을 임차해 사용해오다 계약 만료(2021년 2월)가 다가오자 부지를 직접 사들여 건물을 지으려 했다. 2019년 은평구 진관동 은평뉴타운 내 2143.3㎡ 부지를 매입하려 했고, 학생 수도 180명으로 늘린다는 청사진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무산됐다. 여명학교가 이전해 온다는 것을 알게 된 일부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은평구청에는 ‘이전 반대’ 민원이 빗발쳤고, 2019년 12월에는 ‘은평뉴타운 내 주민 의견을 무시한 여명학교 신설·이전 추진을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은평구는 물론 강서구에는 이미 폐교된 학교들이 있다. 여명학교 이전 대안으로 결정된 게 가양동 부지다. 염강초등학교가 학령 인구 감소로 2020년 1월 폐교됐는데 이곳에 여명학교가 임시 이전하게 된 것이다. 여명학교는 폐교한 염강초등학교 건물 4개 층 중 1~2층을 쓰고 있다. 하지만 계약이 만료되는 2026년 2월엔 이곳을 떠나 새 둥지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2004년 처음 문을 연 여명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이 유일하게 인가한 북한 이탈 청소년을 위한 중·고등학교다. 이 학교를 졸업한 북한 이탈 청소년은 고졸 학력을 인정받는다. 교사 13명이 학생 76명에게 중·고교 과목을 가르친다. 그동안 40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임용고시에 합격한 교사를 비롯해 간호사·사회복지사도 있다고 한다.
여명학교는 대체 부지를 서울 밖에서 찾을 수는 없다.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정규 학력 인정이 취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결정된 게 가양동 부지다. 지난 9월1일 남산동에서 가양동으로 옮긴 여명학교 2층 강당에선 2학기 개학식이 열렸다. 70여명 학생들은 교사가 학교 시설을 소개할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윤석열 정부와 여야 국회의원, 해당 지자체가 여명학교가 처한 절박한 현실을 외면한다면 평등과 공정, 정의가 사라진 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여명학교를 마치 쓰레기소각장 같은 혐오시설의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북한 이탈 청소년조차 품지 못하는 국가와 사회가 어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거론할 수 있겠는가. 총선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정치권과 지자체들은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지 말고 여명학교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최성용 서울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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