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 수학 킬러문항, 왜곡 없이 다시 보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15일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공교육 과정 안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문항을 출제하라는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이에 며칠 만에 수능을 주관하는 평가원장은 사임하고, 교육부는 부랴부랴 최근 수능에 나온 22개의 킬러문항을 선별해 발표했다.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언론과 교육관련 단체들이 지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정책에 찬성하는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급작스런 정책의 시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작은 편이다.
국어와 영어는 빼고 수학의 킬러문항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자. 최근 몇해 동안 수능 출제에 들어갔던 교수가 나에게 “교육부 발표로는 한 문제에 몇 가지 개념이 융합돼 있으면 킬러문항이라는데 실은 그동안 출제진 사이에는 그런 문제가 좋은 것으로 평가됐어요. 아주 혼란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수학동아’의 한 기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교육부의 킬러문항 조건 중에 ‘출제자의 의도와 다르게 답이 나올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요, 국제수학올림피아드를 취재했을 때 보니까 그곳에서는 출제자의 의도와 다르게 학생들이 새로운 좋은 풀이를 생각해낼 수 있는 문제가 좋은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교육부에서는 그게 마치 잘못된 것처럼 기준이 적혀 있네요.”
교육부는 킬러문항을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으로 정의하고, 교육부·현장 교원 중심으로 킬러문항 점검팀을 구성해 킬러문항을 골라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변별력’은 갖추겠다고 약속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킬러문항이란 정답률이 낮은 어려운 문제라는 뜻으로만 여겨왔는데 ‘어려운 문항의 제거’와 ‘변별력 유지’가 상충되는 의미가 있다 보니 교육부는 킬러문항을 어려운 문항이 아니라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항으로 정의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지난 10여년간 일선 학교와 수능에서는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문제를 배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는 사실이다. 교사들은 교육과정에 벗어난 문제를 내면 심한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는다. 수능 출제위원들도, 검토위원들도 모두 교육과정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그래서 지난 3년간의 수능과 올해 모의고사에서 킬러문항으로 지적된 9개의 수학 문제 중 어느 것도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는 없다. 교육부는 단순히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안 된다”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기 때문에 킬러문항으로 지정한 문항마다 그 이유를 달았지만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투명하다.
킬러문항의 이슈는 사교육 억제와 공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수능에서 쉬운 문제, 정형적인 문제들만 내면 학교 교육만으로 충분하니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쉬운 문제, 뻔한 문제만 내면 과연 사교육이 줄어들까? 예비고사-학력고사-수능으로 이어져 온 대입 국가시험이 시행된 지 40년이 넘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관찰해 왔다. 그사이에 몇년 주기로 문제들이 쉬워졌다 어려워졌다 해 왔는데 문제가 쉬워지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이 현실 세계에서 실현된 적은 없다.
쉽고 정형화된 문제만 내면 학교 교육만 받아도 충분하고 사교육은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실제는 기대와는 반대로 정형화된 문제들만 반복적으로 학습시키는 학원에 다닌 학생들이 집에 와서 혼자 공부하는 학생들보다 더 유리하다. “어려운 문제는 학교에서 다루지 않으니 사교육을 받은 애들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학원들의 선전에 현혹된 것이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능력은 학원에서도 길러주기 어렵다. 그런 능력은 자기 혼자서 어려운 문제를 푸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학생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공교육의 틀 안에서 출제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기본적으로 찬성이다. 다만, 킬러문항이라는 이슈가 왜곡되고 필요 이상으로 커지면서 혹시라도 창의적인 사고력 신장이라는 수학 교육의 기본목표를 훼손할까 걱정된다. 사교육을 잡겠다며 많은 사공들이 몇 가지 통념을 토대로 교육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 온 지 50년이 넘었다. 이제는 좀 차분하게, 그리고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책을 수립해 나갔으면 한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이재명, 김혜경 선고 앞두고 “희생제물 된 아내, 죽고 싶을 만큼 미안”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또 아파트 지하주차장 ‘벤츠 전기차 화재’에…주민 수십명 대피
- [단독]“일로 와!” 이주노동자 사적 체포한 극우단체···결국 재판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