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시민 주도의 정치판 만들기
‘시민 주도의 새 정치판’은 시민이 내년 총선 의미를 규정하고 표를 줄 세력을 만들거나, 기성 정당이 따라오게끔 만들어야 한다
시민 주도의 정치판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 총선에서 바로 이루어질 일도 아니고, 시작이나 할 수 있을지조차 분명치 않다
하지만 시민 주도 정치판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치 지성’ 핵심을 상기하는 것은 기나긴 여정의 시작을 도모함에 있어 무의미하지 않을 듯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을 치른 후 모든 정당에서 ‘혁신’이 다시금 화두다. 그런데 뭘 어찌 혁신하려는지, 그게 뭐든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진짜 하겠다는 것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목청 높여 소란스럽게 당 지도부 혹은 집권세력에 책임 추궁만 하고 있을 뿐이다. 선거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지 모르지만 총선 승리라는 당면의 목표를 감안하면 주어진 혁신의 시간은 별로 많지 않다. 이런저런 조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효과를 통해 성패가 갈린다고 할 때 특히 그렇다. 효과의 중요성은 이번 보선 승패가 누가 더 잘했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더 화가 나 있는지를 담고 있을 따름이라고 할 때, 한층 더 심대하게 여겨져야 한다.
사실 혁신은 쉽지 않다. 특히 정치에서는 그렇다. 저마다 생각과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당으로 모여 있는 이들끼리도 그렇다. 그래서 각기 다른 생각과 처지를 반영해 하나로 묶어내야만 하는데, 이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치와 정당은 위에서 시키면 아래에서 행하는 식의 위계가 분명한 세계와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 윗선의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표를 얻어야 하는 유권자의 마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다고 해도 그것이 유권자의 마음과 부합하는 한에서 그리한다. 이를 모르고 무시하는 자가 있다면, 애초에 정치할 능력과 자격이 없거나 아예 독재를 하기로 작정한 자이다.
혁신이 문제 될 때마다 등장하는 게 리더십이다. 혁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인식하고, 혁신의 의지를 발현하며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혁신을 둘러싼 갈등과 긴장을 조정하는 게 바로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정당학자들이 리더십을 정당다움을 구현하는 중추로 간주하고, 심지어 ‘조물주의 실천’에 비견하면서까지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리더십은 -헤드십과 다르게- 지위에 기댄 권력이 아니라, 주변과 뭇사람의 신뢰와 동의에 바탕을 둔 권위를 통해 작동한다. 대통령이나 당대표 등과 같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혁신을 주도하고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아래의 생각과 처지도 잘 읽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한다. 뭇사람에게 나의 리더는 분명 그런 리더십의 성격을 잘 알고 행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사야 한다. 또 나의 리더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조치가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데에 동의를 얻어야 한다.
시민 총선 관여 활동 다시 지펴내야
이미 여기까지만 들어도 많은 사람들은 혁신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집권세력이든 야당세력이든 혁신을 가능케 할 리더십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만약 리더십이 작동하고 있다면 가장 먼저 생각과 처지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태도를 취하거나, 그런 의견이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 했다. 만약 들을 시간이 아직 없었다면, 찾아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리를 제일 먼저 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집권세력은 구청장 보선을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전국적 사건으로 만들어버렸지만, 그 사건의 정치적 의미 해석에 걸맞은 행동을 준비해놓지는 않았다. 야당세력은 이에 편승해 구청장 보선 결과를 집권세력 실정의 바로미터로 몰아갔지만, 그 실정을 넘어설 수권세력에 부합할 구상과 계획을 만들어놓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혁신을 내세워도 지금까지 해왔던 체제와 전략이 유지될 공산이 커 보인다.
그렇지만 혁신과 리더십 부재의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다. 정치인들도 그렇지만, 시민들은 특히 더 그렇다.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행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선거의 쓰임새와 의미가 ‘정치학 교과서’에서 칭송하는 바와 달리 한정적임을 알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선거무용론이나 투표 불참론에 빠져들 일은 아니다. 또 둘 다 미워하면서도 결국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시민 주도의 새 정치판’을 만들어야 한다. 작금의 정치판에서 혁신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시민들이 나서서 내년 총선의 의미를 앞서 규정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표를 줄 세력을 만들거나, 기성정당들이 따라오게끔 만들어야 한다. 섣불리 -제3지대론을 기치로- 새 정당을 만들어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입장에 설 일도 아니다. 작금의 상황은 결국은 기존의 정치판과 게임의 규칙 속에 들어갈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기대하는 때가 아니다. 누차 반복되어온 제3당의 등장과 쇠퇴와 사멸 속에서 그것의 허망함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을 계기로 선거의 의미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권심판 혹은 야당심판과 같은 단순 선택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재명 vs 윤석열 3차전’으로 치러서도 안 된다. 승패 결과에 상관없이 기성정치세력 간 적대성만 더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미 경험해온 바와 같이 승패 결과 자체를 제외하고는 서민 삶의 고통 해소 측면에서 얻을 게 아무것도 없다. 국제정세의 군사화-기후위기의 심화-민생파탄을 극복하기 위한 의제-담론-정책을 두고 겨루게 하되, 그 내용 평가의 기준을 정당이 시민과 함께 혹은 시민 주도로 만드는 장으로 세워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근간에 들어 저조해진 시민의 총선 관여 활동을 다시 지펴내야 한다. 현실 정치가 망가진 데에는 의제-담론-정책에 대한 정치권 밖의 시민참여에 기반한 사회적 압력과 영향이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팬덤밖에 남은 게 없기 때문이다. 기성정당들이 진짜 혁신을 하겠다면 팬덤을 넘어선 공적 차원의 시민정치활동을 촉진하고 지원하고 연계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공약개발과 후보자 선정 등에 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아예 공천권의 상당 부분을 시민에게 내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기성정치, 사회적 압력으로 바꿔야
이당도 저당도 아닌 제3당을 기치로 한 세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당 자체가 아니라, 그들 정책의 시대적 조응성과 시민적 개방성을 중시해야 한다. 일단 제3당은 거대 양당의 혁신을 유도할 지렛대로 삼는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재의 정당정치환경과 준비세력의 속도와 역량을 보면 제3당이 그 자체로 대안세력이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 충족과 같은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민의 정치적 관여도 증대에 활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초점을 둬야 한다. 3당이라는 존재 자체가 또 다른 하나의 정파가 아니라, 정치의 탈바꿈을 바라는 상식 있는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와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조직의 위상과 역할을 보수나 진보 혹은 그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중도라는 이름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체’가 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끼리끼리 뭉쳐 자기들이 먼저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정해놓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는 건 복잡다단한 삶의 세계와 현실에 들어맞지도 않지만, 설사 들어맞는다 해도 호응을 얻기는커녕 귀를 기울이게 할 수도 없다. 새로이 정당을 만들려면 그에 걸맞은 새로운 내용과 형태의 실험을 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기대하지 않고 있다 해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오랜 세월 이미 제3당이었던 정의당과 같은 군소정당도 이와 같은 선상에서 재창당 전략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 주도의 정치판 만들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 총선에서 바로 이루어질 일도 아니다. 시작이나 할 수 있을지조차 분명치 않다. 계속되는 고용과 소득과 주거 불안정함에 고물가-고금리 현상마저 더해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한 삶의 현실이 녹록지 않아 특히 그렇다. 하지만 시민 주도의 정치판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치 지성’의 핵심을 상기하는 것은 기나긴 여정의 시작을 도모함에 있어 무의미하지 않을 듯하다. 정치 지성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성정치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압력과 도전이 없으면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둘째, 그 압력과 도전이 제 정치세력의 혁신 경쟁을 촉발하는 데로 작용해야 한다. 셋째, 그 혁신경쟁의 결과는 특정 정치세력의 선거 승패에 머무는 게 아니라, 시민 주권의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넷째, 시민주권은 투표권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자원의 배분에 관한 정책 결정권의 행사를 통해 구현된다. 이를 염두에 둔 정치혁신의 노력이 일단 다음 총선에서의 선택 기준일 수 있으리라.
■김윤철
경희대 교수 및 실천교육센터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세계와 시민’ ‘정치의 인문학적 탐색’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노회찬정치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정당> <헬조선 3년상> 등의 저서와 ‘노동존중 정치와 노회찬의 6411정신’ ‘한국 불평등 민주주의의 정치사적 기원’ 등의 논문이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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