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당나귀 수레 엑소더스
가히 엑소더스(대탈출)라 할 만하다. 격화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에 각국 정부가 군 수송기 등을 투입해 자국 교민 철수에 나섰다.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필사적인 피란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지상 작전을 위협하며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 소개령을 내린 후 남하하는 사람들이다. 13일 촬영된 AFP통신 사진을 보면 승용차 지붕에 가재도구를 실은 행렬 속에 당나귀가 끄는 수레에 올라탄 이들도 보인다.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이들은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수레는 어쩐지 구약성서의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대탈출하는 장면과 겹쳐진다. 큰 차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가자지구 남부이다. 이집트가 경제난 등을 이유로 국경을 넘으려는 피란민 행렬을 제한하고 있다. 이집트로서도 200만 넘는 가자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의 물·전기·식량 공급을 끊고 제한하는 상황에서 피란민들의 삶은 이미 지옥 같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 수천명은 지상군 점령 위협에도 고향을 떠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의해 국경이 통제돼 ‘창살 없는 감옥’으로 불리는 가자지구가 ‘인도주의적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유니세프는 지난 8일 동안 이스라엘의 반격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최소 700명 이상의 어린이가 숨졌다고 추정했다. 7일 하마스 기습 후 이어진 교전으로 지금까지 1300여명의 이스라엘인이 숨지고, 그 두 배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숨졌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전쟁범죄에 더 큰 규모의 전쟁범죄로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생명 가치는 왜 달라야 하는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더 큰 참화, 피의 악순환을 가져올 지상군 투입 계획을 접어야 한다. 압도적 화력을 가진 이스라엘은 이번 가자지구 전투에서 이길지 몰라도, 전쟁에서는 결국 패배할 것이라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의 경고(포린폴리시 10월9일 기고)를 새겨야 한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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