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도, 시신담을 가방도 없다”…유엔조차 가자 떠날 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김상준 기자(kim.sangjun@mk.co.kr) 2023. 10. 1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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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조차
더이상 인도적 지원 불가 손들어
가자지구 사망자 60%가 여성과 어린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지속되는 가운데 1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한 병원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다친 한 소년이 누워있다. 2023.10.15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사이 전쟁이 10일째에 접어들면서 가자지구에 인도주의 위기가 극에 달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부터 단행된 이스라엘의 ‘완전 봉쇄’로 인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은 식수조차 제대로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하마스는 7일 이후 지금까지 가자지구에 인질들을 억류하고 있다.

미국 ABC방송에 따르면 필리페 라자리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 집행위원장은 1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가자지구는 교살당하고 있다”며 “세계는 인간성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날까지 가자지구에서는 UNRWA 직원 14명이 이스라엘의 공습에 의해 사망했다. 라자리니 집행위원장은 이어 “가자지구에는 이제 시신 담을 가방도 부족하다”며 “전례없는 인도주의적 재앙이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이 15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공격을 받은 남쪽 국경도시 라파에서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지난 7일 시작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로 지금까지 양측에서 4천명 이상이 사망했다. 2023.10.16[사진=라파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봉쇄를 강화한 지 7일째에 접어들면서 유엔조차 가자에서 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자리니 위원장은 16일(현지시간) 동예루살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오늘부로 가자의 우리 UNRWA 동료들은 더는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중동이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기 직전이라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향해 인도주의적 조치를 요청했다. 그는 먼저 하마스를 향해 “인질들을 조건 없이 석방하라”고 촉구했고, 이스라엘에게는 “가자지구 민간인을 위해 인도주의적 지원 물품과 지원 인력이 신속하고 방해 없이 가자지구에 접근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스라엘의 봉쇄로 인해 가자지구에는 물과 식품, 전기, 의료품 등이 곧 바닥난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병원에는 현재 진통제가 바닥났으며, 다수의 가자지구 주민들이 식수 부족으로 심각한 탈수 증세를 보이고 있다.

가자지구 주민들이 15일(현지시간) 남부 칸 유니스에서 불을 피우고 있다. 이스라엘의 봉쇄로 가자지구에 물과 연료 공급이 중단되면서 인도주의적 위기가 커진 가운데 이날 이스라엘은 남부 지역에 물 공급을 재개했다. 2023.10.16 [사진=신화 연합뉴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16일 가자지구 전역의 병원에서 연료가 24시간 정도 내에 고갈된다고 밝혔다. 도미닉 앨런 유엔 인구기금(UNFPA) 대표는 CNN과 인터뷰를 통해 가자지구 내에 임산부가 5만명 있으며, 임산부 가운데 5000명은 다음 달 출산 예정이라고 밝혔다. CIA 자료를 보면 가자지구 인구의 40% 가까이가 15세 미만 미성년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한 주 가자지구 사망자의 60%가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제사회에 비판 여론이 커지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내에 인도주의 구역을 설정하는 방안을 유엔과 논의하고 있다. 마이클 헤르조그 주미 이스라엘 대사는 15일 CNN과 인터뷰에서 “가자지구 남부에 대규모 인도주의 구역을 설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물과 식량, 의약품 등 모든 필수품들을 공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헤르조그 대사에 따르면 인도주의 구역은 수십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집트는 미국, 이스라엘과 함께 가자지구 남부에 접한 라파 국경을 개방할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5일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에게 국경을 열어 미국인들을 대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도 같은날 라파 국경이 곧 열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라파 국경 재개방 소식이 전해지기 전 라파 국경이 이날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면서 “이집트는 미국 국적자를 가장 먼저 수용한 뒤 미국 이중 국적자, 기타 서구 국적자, 유엔 등 구호 활동가, 마지막에는 글로벌 기업 직원의 입국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가자지구에 현재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은 500~600명으로 추산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5일(현지시간) 요르단으로 향하기 전 이집트 카이로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블링컨 장관은 충돌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중동 각국을 순방하고 있다. 2023.10.16 [사진=AP 연합뉴스]
구호 물품도 전달될 수 있다. 블링컨 장관은 “가자 주민을 지원하기 위한 물품들이 마련돼있다”며 “UN, 이집트, 이스라엘 등과 함께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하는 방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 적신월사에 따르면 튀르키예와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 튀니지,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보낸 구호 물품이 실린 항공기들이 최근 라파 국경에서 약 45km 떨어진 이집트 엘 아리시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이 물품들은 라파 국경이 열리면 신속하게 가자지구로 옮겨질 수 있다.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 수용에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구호 물품 전달 등 가자지구 지원에는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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