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제거는 지지, 가자지구 점령엔 반대…美, 확전 자제 경고 통할까
지상전 발발 시 이란 개입 여부, 中·러 美견제 외교 변수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미국이 이스라엘을 향해 ‘제한적인 지상전’을 사실상 용인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를 제거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입장은 지지하면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분할 통치하는 ‘2개국 해법’ 평화안을 시사했다. 이스라엘의 지상 작전 임박에 긴장감이 커지는 가운데 중재 외교를 통해 이스라엘에 자제를 촉구한 것이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며 아랍권에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여서 중동 외교전은 ‘고차방정식’으로 흐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美, 지상전 용인하되 확전 자제 촉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미국 CBS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는데 동의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시 연정의 첫 긴급 각료회의에서 “하마스를 부숴버릴 것”이라고 했는데, 이에 전적으로 힘을 실어준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만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국가로 가는 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마스와 하마스의 극단 분파들은 팔레스타인 주민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다시 점령한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2006년 평화협정 이행을 위해 중동전쟁 때 이집트로부터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후 38년 만에 주둔 병력을 철수했다. 이후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제했으나, 하마스가 2007년 내전 끝에 서안지구에 근거지를 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따르던 파타 세력을 축출하면서 가자지구를 점령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제거하되, 다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가자지구를 통치해야 한다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의중으로 읽힌다. 장기적으로 독립국가로서 팔레스타인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해 이스라엘과 평화적인 공존을 모색하는 ‘2개국 해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 등의 개입으로 인한 확전 가능성을 두고서는 “그러지 말라”며 이들 세력에 경고했다.
이날 언급은 이번 무력 충돌 이후 미국이 낸 가장 선명한 입장으로 평가 받는다. 이스라엘이 벼르고 있는 가자지구 지상전은 사실상 용인하면서도, 그 규모는 최소화하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이스라엘을 제지하기 위한 바이든 대통령의 첫 번째 공개적인 노력”이라고 전했다.
중동을 순방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이날 중동의 맏형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난 것도 중동 중재 외교의 일환이다. 블링컨 장관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만난 후 회동이 어땠는지 질문을 받고 “매우 생산적”이라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주 주말께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악시오스는 양국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이번을 ‘중동 데탕트’ 기회로 삼아 중동 패권을 탈환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이스라엘, 이집트는 지상 작전을 앞두고 민간인 대피를 위해 가자지구 남부와 인접한 이집트 라파 통로를 개방할 예정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가자지구 북부에 이스라엘 공격이 예고된 상황에서 라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외부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다. 아울러 이스라엘군은 북부 레바논 국경 2㎞ 이내에 있는 28개 마을 민간인들을 위한 대피 계획을 가동했다. 하마스를 도와 참전할 가능성이 있는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의 위협이 높아지는 와중에 이뤄진 조치다.
이란 개입 변수…중·러 외교전 주목
그러나 이번 사태가 미국의 바람대로 ‘빠른 종전’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이란의 개입 여부가 변수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전날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과 만난 후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전쟁을 계속한다면 지금의 역내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최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공격을 강행한다면 이란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유엔을 통해 이스라엘 등에 밝혔다고 악시오스는 보도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란 개입 우려가 있다”고 인정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면서 미국과는 결이 다른 중동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전날 아미르압돌라히안 장관과 통화하면서 “중국은 평화와 정의의 편에서 팔레스타인인들 자기 민족의 권리를 지키는 정의로운 일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랍권 국가들의 편에 서서 이스라엘을 감싸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뉘앙스가 뚜렷한 셈이다. 더 나아가 중국이 이란을 중동 외교력 확장의 지렛대로 삼아 미국에 맞서 중동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속내가 분명하다는 해석 역시 나온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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