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교란종’ ‘유해식물’…모욕당하는 식물을 위한 변론
[왜냐면] 유상준 | 경기도 광주시민
서울에서 살다가 가까운 시골로 내려와 주변 식물과 더불어 살아온 지 30년 정도 됐다. 그동안 식물들은 나의 친구이자 때론 삶을 가르쳐주는 스승이기도 했다. 오늘은 말 없는 식물들을 대신해 한가지 변론문을 작성하고자 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삼덩굴’이라는 풀에서 탈모 치료제를 추출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쐐기풀목 삼과의 환삼덩굴은 식물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아! 그 풀”하고 알 정도로 친숙하다. ‘엄마의 손’이라는 꽃말처럼 잎은 단풍나무 잎이나 손바닥 모양 대여섯으로 갈라져 있고 줄기는 네모꼴로 질긴 편에 온통 가시로 덮여 있어서 무심코 건드리거나 스치기만 해도 여기저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한해살이 식물이다. 이에 관한 신문 기사나 뉴스를 보면 이 풀의 약용 가치를 강조하거나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하나같이 ‘유해식물’이라는 범주로 묶고 실제로 2019년인가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됐다는 사실까지 덧붙이고 있다.
이른바 ‘유해식물’의 원조 격이 되는 것은 아까시나무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뿌리를 여기저기로 내뻗어 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특히 묫자리를 파고든다는, 근거 없는 악소문에 시달리는 나무다.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100년 된 아까시나무가 없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식물의 천이 과정에서 질소 고정 작용(콩과 식물의 특징)을 통해 비옥한 토양을 공급하는 생태적 역할을 다하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또 ‘자리공’이나 ‘싱아’같은 풀은 열매에 독성이 있어서 그것이 떨어진 곳에서 다른 식물들을 잘 자라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자기의 생장 영역을 늘리기 위해 일종의 독으로 주변 식물들을 제어하는 것을 유해식물이라 한다면, 피톤치드로 주변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소나무와 잣나무도 모두 유해식물이라 불러야 할까? 최근 이슈가 되는 식물로 망초나 개망초, 칡, 단풍잎돼지풀, 가시박, 환삼덩굴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환삼덩굴이나 칡은 원래부터 있던 고유종이고 다른 것들은 외래종 혹은 귀화 식물들이다.
이처럼 우리가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식물들은 고유와 외래의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이들이 ‘생태계를 교란’하는 이유는 대개 번식력이 왕성하고 성장 속도가 빨라서 한번 자리 잡으면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며 제거하기가 좀처럼 힘든 속성 때문이다. 이러한 식물들이 아무 곳에나 자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울창한 숲 속에서 이들 식물을 본 적이 없다. 생태 환경이 잘 보존된 곳에 이들이 뿌리내릴 곳은 없다. 오히려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어 다른 식물들이 좀처럼 뿌리내리기 힘든 강둑 같은 곳이나 도롯가 절개지, 각종 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는 개활지 등에 가장 먼저 자리 잡아 토양 침식을 방지하고 초기 생태계 형성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
이들 식물을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생태적으로 어떤 한 종이 우세종으로 자리 잡아 다른 종의 성장과 번식을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면 어느 정도는 제어할 필요가 있고, 우리는 충분히 그런 능력과 기술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지자체에서 하듯 보여주기식 ‘예초’만 해서는 안 되고 제거와 동시에 대체 식물들의 식재와 일정 기간 관리라는 종합적 계획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예초만으로 이런 식물들이 쉽게 제거가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면 이렇다. 예초기는 제거 대상 식물과 그렇지 않은 식물들을 가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무차별적으로 예초하고 나면 겉보기에는 깨끗하나 다음 순간 제거하려 했던 식물들이 더 빠르게 늘어난다. 이런 식물들이 환경에 잘 적응하고 번식력도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복과정을 통해 생태계 다양성은 파괴되고 일부 식물들은 생태계 교란이라는 악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결국 생태계를 파괴하고 교란하는 것은 식물이 아닌 그 원인을 제공하는 우리 인간들이다. 식물 생태 환경도 사람들에 달려있다.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식물들에 ‘생태계교란종’이라거나 ‘유해식물’이라는 모욕적 언사를 사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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