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한국사회와 자살예방정책, 어떻게 할 건가

2023. 10. 1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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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한국, 반복되는 정책과 악화되는 현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자살률'은 'OECD 최저 출산율'과 함께 현재 한국의 상황을 상징하는 대표적 지표다. 낮은 출산율이 다음 세대가 살아갈 불확실한 미래를 반영하는 지표라면, 높은 자살률은 현재 대한민국의 낮은 삶의 질을 반영하는 지표다.

1990년대 중반 이전에는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수로 계산하는 자살률이 10명 이하였던 대한민국 자살률이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1998년 22.7명으로 급등한 이후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고, 2002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OECD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2017년 단 한 해만 2위로 잠시 떨어졌던 것은 2018년 OECD에 신규가입한 리투아니아의 자살률이 한국보다 더 높았던 이유인데, 리투아니아의 자살률이 계속 감소하여 한국의 자살률은 다시 2018년부터 OECD 국가 중 1위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특징적 지표인 저출산율 역시 2002년부터 국가 합계출산율 1.18명으로 초저출산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같은 해인 2002년부터 OECD 자살률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우연으로만 볼 수 없다. 자살과 저출산의 심각한 양상이 같은 시기에 심화되었다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반영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에 대한 정부 정책의 대응방식 역시 유사했다. 저출산에 대해서는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따라 5년 단위로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으며, 자살예방정책 역시 2004년부터 5년 단위의 국가 자살예방기본계획으로 유사한 형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두 가지 국가정책 모두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저출산 국가계획이 시작된 2006년 합계출산율 1.13명에 비해, 최근 통계인 2021년의 출산율은 0.81명으로 더욱 낮아졌다.

자살률은 2004년 인구10만명당 23.7명에서 2021년 26.0명으로 국가계획이 시작된 2004년에 비해 더 높아졌다.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2011년 31.7명과 비교하면 현재 다소 낮아졌으나 전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자살률 추세와 달리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계속 높은 수준으로 OECD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가자살예방정책: 목표 vs. 실패

정책 차원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한민국 국가자살예방정책이 설정한 목표를 단 한번도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제1차 국가자살예방기본계획(2004-2008)의 목표였던 2010년 인구 10만명당 18.2명은 실제 자살률 31.2명으로, 제2차 기본계획(2009-2013)의 목표였던 2013년 20.0명은 실제 28.5명으로, 제3차 기본계획(2016-2020)의 목표였던 2020년 20.0명은 실제 25.7명으로, 명칭이 변경된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2018-2022)의 목표였던 2022년 17.0명은 아직 공식통계가 발표되지 않았으나 잠정 추산치 약 24.4명으로 파악된다. 4차에 걸친 국가계획 모두 목표 달성에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4차례에 걸친 5개년 계획의 정책목표 달성이 모두 실패했다는 점은, 정책의 실천 혹은 정책목표 설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지난 2023년 4월에 발표된 제5차 국가자살예방기본계획은 2027년까지 자살률을 30% 줄인 18.2명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어떤 과학적 근거에 의한 목표인지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물론 국가자살예방정책은 자살률로만이 아니라 그 외 다양한 정책적 노력도 고려되어야 한다. 자살예방대책의 근간이 되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약칭, 자살예방법)이 2011년 제정되어 2012년부터 시행되었다.

자살예방사업의 중앙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2012년 중앙자살예방센터가, 2015년 중앙심리부검센터가 각각 만들어졌다. 두 센터가 병합되어 더욱 확대된 조직으로 2020년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설립되었다.

한편, 2018년에는 '역대 최초'라는 강조와 함께 100대 국정과제에 자살예방이 포함되었고, 중앙정부 차원의 전담부서가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보건복지부 내에 자살예방정책과가 2018년 신설되었다. 국회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2018년 국회자살예방포럼이 출범했다. 모든 부처를 아우르는 상위조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2019년 국무총리 직속 자살예방정책위원회가 구성된 성과가 있었다.

예산 관련해서는 자살예방 예산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었다. 추산 방식에 따라 규모가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대략 2009년 자살예방사업 관련 직접 예산이 약 5억원 수준이었던데 비해, 2021년도 약 395억원으로 대폭 증가하였다.

즉, 제도와 조직, 예산 증대가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체계적인 국가정책의 수립, 효과적인 사업의 진행, 과학적인 목표 설정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물론 자살률 하나만으로 정책의 성패를 결정할 수는 없다. 자살예방을 위한 개별 세부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자살률은 외적 요인의 영향을 받기에 국가정책 효과에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한국사회 자살의 쟁점, 자살율이 왜 이렇게 높은가

국가적 자살예방정책은 상황 및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되어야 한다. 한국의 자살률은 외환위기 사태가 일어난 직후인 1998년 급증한 이후, 2003년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인구 10만명당 30명 이상으로 증가해 2011년 국제비교를 위한 인구보정 자살률 33.8명(실제 자살률 31.7명)까지 치솟았다.

이에 2011년 이후 맹독성 농약 등 치명적 자살 수단의 제조 및 판매 금지, 노인 복지를 위한 기초연금을 시행하는 등 국가적인 자살예방 노력을 통해 비교적 감소되었으나 여전히 전체 자살률은 OECD 기준으로 가장 높은 상태이다.

흔히 IMF 경제위기라 불리는 1997년 외환위기 이전의 1990년대 초반에는 자살률 10.0 미만으로 자살률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의 자살률은 왜 이렇게 높아진 것인가?

◆현실 1: 노인 자살률, OECD 평균의 3배

한국의 자살에서 가장 심각한 특징은 높은 노인 자살률이다. 청장년에 비교해 노년이 될수록 자살률이 낮아지는 것이 전 세계적인 경향임과 반대로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60대 인구 10만명당 약 34명, 70대 약 46명, 80세 이상 약 67명으로, OECD 평균 노인자살률에 비해 약 3배 높다.

연령이 올라갈수록 급격하게 자살률이 높아지는 양상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반대 방향을 보이는 특이한 현상이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노인인구에 대한 공적 사회안전망의 부족함이다. 공적 복지제도가 부족한 대한민국은 일종의 사적 복지제도에 의해 과거에는 지탱될 수 있었다. 부모가 자녀를 전적으로 양육하고 경제 활동을 하게 된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던 가족내 경제 부양의 사이클, 즉 효(孝)라는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가정중심적 사적(family-centered private) 복지체계가 대한민국의 부족한 공적 복지제도를 대체함으로써, 선진복지국가에서 국가가 담당하는 제도를 가족 안에서 책임지는 형태였다.

그러나 90년대 말 경제 위기로 인해 고용 안정성이 위태로워지고, 사회안전망이 부재하여 경제활동인구가 위기에 직면함으로써 사적 복지체계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사적 복지체계의 붕괴로 인해 가장 타격을 받은 것은 노인세대였기에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율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 되었다. 이는 높은 노인 자살률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실 2: 압도적으로 높은 여성 자살

여성 자살 역시 대한민국 자살률의 특징적인 면이다. 남성이 일반적으로 더 치명적 자살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에 남성자살률이 약 2배 더 높다는 이유로 여성자살의 심각성이 간과되곤 하지만, 국제 비교를 통해 볼 때 우리나라 여성자살의 심각성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OECD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자살률은 리투아니아에 이어 2위로 평균의 약 1.9배인데 비해, 우리나라 여성자살률은 1위(12.8명)으로 OECD 평균에 비해 2.5배 높은 수준이다. 2위와 3위인 벨기에와 일본보다 약 50% 높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한국의 여성자살률은 이미 2002년부터 OECD 국가 중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1위를 기록해 오고 있다. 가장 높았던 2009년에는 자살률 22.8명으로 OECD 평균의 약 4배가 되는 높은 수준이었고 2위였던 일본의 2배였다.

한국의 남성자살률이 OECD 신규 가입국 통계까지 포함해 비교했을 때 단 한번도 1위가 아니었던 것과 비교할 때, 여성자살률은 OECD 국가와의 비교에서 가장 높은 상태가 항상 이어졌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원인으로는 정신건강의 상대적 어려움 뿐만 아니라 여성의 고용 불안정성, 여성 대상 폭력을 비롯한 구조적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자살예방 전략: 국제적 퍼스펙티브

자살예방 국가전략이란, 단순히 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자살예방 활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자살예방 활동의 근간을 계획하고 다양한 활동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체계를 말한다.

OECD 국가들의 자살률을 분석하였을 때 자살예방 국가전략의 유무가 자살률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었음을 보고하는 연구를 볼 때, 효과적 자살예방을 위해 국가전략이 국가적인 명확한 목표를 제시해야 하고, 자살의 원인을 분명하게 파악하며, 효과적으로 개입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 평가를 계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연합(UN)과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살문제에 대처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국가 자살예방 전략의 중요성을 WHO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자살예방 국가전략은 자살문제를 명확히 인식시킴. 둘째, 정부가 자살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음을 나타냄. 셋째, 자살예방의 다양한 측면을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시킴. 넷째, 자살예방과 관련된 관계자를 파악하고 각 부분에 적절한 책임을 부여하며 협력할 수 있도록 함. 다섯째,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국민의 인식 개선을 도모함. 여섯째, 문제를 모니터링하고 평가할 수 있는 체계를 제시하며 관계자의 책임성을 증진시킴. 일곱째, 자살행동을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

◆한국에 필요한 패러다임: 인식의 전환과 포괄적 접근

1차 국가정책이 시작되던 2004년의 자살률이 인구 10만명당 23.7명이었던데 비교해, 최신의 통계인 2021년 자살률이 26.0명으로 오히려 증가한 점을 볼 때, 지난 약 20년간의 자살예방 국가정책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점검하여 새로운 방향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가장 핵심적인 점은 자살예방 국가전략이 직접적인 자살예방 정책만이 아닌, 근본적인 관련 정책에 스며들어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자살예방 사업 중심의 구분된 직접 정책에서 확대하여, 빈곤, 보건의료, 노동, 교육 등의 사회정책과 맥락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연계하여야 한다.

자살의 원인으로 파악되는 다양한 영역을 통합시킨 범국가적 통합 자살예방 목표같은 포괄적 정책이 필요하다. 다양한 자살 관련 분야를 연계하여 전분야에 걸친 지속가능한 국가차원의 국가 자살예방 정책이 추진되어야 하며, 각 영역별 목표 설정 및 체계적인 단기 중기 장기 목표설정과 국가 차원의 모니터링과 평가 체계가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자살문제는 단순하게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일이다. 그 복잡성을 해결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통합하며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 역할이 정부에 있으며, 정부가 자살문제 해결을 위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표명해야 한다.

자살예방 국가정책은 단시간에 효과성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국가정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 정파와 이념을 넘어 전 국가적 지원과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국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다.

본 기고의 원문 출처는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203호'임을 밝히며, 원문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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