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이스라엘 딜레마’…“함께 격분하되 확전은 막는다”

김진명 기자 2023. 10. 1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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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 시각) 미 CBS 와 인터뷰를 통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occupy)한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이날 “현 시점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을 지지하는가”란 질문을 받고 “하마스의 극단적 분자들이 팔레스타인 사람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본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바이든의 입장은 지난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 후 전쟁이 발발하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을 예고한 가운데 나왔다. 이 같은 발언은 “가자지구는 (초토화돼) 천막만 남게될 것”이라고 보복을 천명한 우방 이스라엘을 무턱대고 지지할 수만은 없는 미국의 미묘한 입장을 드러낸다. CNN은 “바이든은 이스라엘과 함께 격분하는 동시에 확전은 막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라고 전했다.

바이든은 수많은 민간인을 죽이고 150여명은 인질로 납치한 하마스를 “순수 악”으로 부르며 이스라엘을 지지해 왔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북쪽의 (레바논 친이란 무장세력) 헤즈볼라, 남쪽의 하마스 극단주의자를 제거해야 한다”고 밝혀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있어야 한다. 팔레스타인 국가로 이어지는 길이 필요하다”라며 과도한 확전은 경계했다.

15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경계선을 따라 이스라엘 방위군 소속 육군 병력이 이동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이런 바이든의 발언 배경에 대해 CBS는 “수십년 간 미국의 기조로 유지해온 ‘두 국가 해법’에 따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격화하고 이란 등 이슬람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참전해 중동 전쟁으로 번질 경우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과 공존하도록 공을 들여온 미국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 민간인·군인 사상자가 크게 불어나고 인도주의적 비극이 심화할 위험이 커지는 것도 미국에겐 부담이다. 케네스 맥켄지 전 미 중부사령관은 워싱턴포스트 기고에 “가자지구의 복잡한 지형을 감안할 때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진입하면 모두가 피바다를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2009년과 2014년에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했을 땐 사망자 중 60% 이상이 민간인이었다. 하마스가 납치한 이스라엘 인질을 ‘인간 방패’로 쓸 경우 이스라엘 쪽에서도 민간인 희생자가 더 나올 우려가 있다.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 위기가 커진 가운데 이스라엘은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의 요구에 가자지구 남부에 수도 공급을 15일 재개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이집트 카이로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회담 후 지금 상황에 가자지구를 외부와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라파 관문’을 일시적으로 개방한다고 밝혔다.

한편 바이든은 이날 “이 새로운 중동 전쟁에 미군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하나”란 질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스라엘은 가장 전투력이 좋은 병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고 보장한다”고 말했다. “중동 상황 때문에 미국 내 테러 위협이 증가했나?”란 질문에 바이든은 “그렇다”면서 “오늘 아침에도 국토안보부, 연방수사국(FBI)과 상황실에서 어떻게 유대교 회당이나 거리의 유대인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일을 막을지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날 일리노이주(州) 시카고 근교에서는 70대 집주인이 중동 관련 뉴스를 보다가 화가 나서 팔레스타인계 세입자 모자를 흉기로 폭행해 6세 아들을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14일(현지 시각) 미국 시카고 근교에서 이슬람교도를 향한 증오범죄가 발생해 팔레스타인계 6세 소년이 숨졌다. 이에 미 당국은 자국 내 유대인과 이슬람교도를 향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 경계를 강화했다. 사진은 소년의 생전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바이든의 이날 인터뷰는 미국과 이스라엘 양국이 바이든의 이스라엘 방문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 이스라엘 채널12의 보도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최근 바이든과의 통화에서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해 줄 것을 초청했다. 미국 정부에서는 블링컨 장관이 이미 지난 12일과 16일 두 차례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그후 바이든이 직접 이스라엘을 찾으면 “중동 지역의 최대 동맹에 대한 지지를 보이는 것이 된다”고 로이터는 평했다. 바이든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도 지난 2월 깜짝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물·식량·연료·의약품 지원을 끊은 채 완전 봉쇄를 하고 지상군 투입을 준비하면서 인도주의적 위기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 방문 때와 다른 부담이다. NBC 뉴스는 “가자 지구에서 1900명 이상이 사망했고 7600명이 부상당했다”며 “유엔 당국자들은 200만명의 주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려면 당장 연료가 공급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무부는 봉쇄된 가자 지구에 최대 600명의 미국 국적자가 체류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16일(현지 시각) 가자지구에서 이집트로 이어지는 유일한 관문인 ‘라파 통로’의 검문소에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이 모여 있다. 라파 통로는 가자지구 민간인을 위한 구호 물품이 들어가는 진입로이자, 전쟁이 임박한 가자 지구를 떠나려는 피란민들의 탈출로이기도 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난민이 대거 유입되는 것을 꺼리는 이집트가 국경 통제를 강화해 이를 봉쇄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전쟁 발발 전까지 바이든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등을 중재해 중동에 ‘새로운 안보 구조’ 구축을 추진해 왔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아랍권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도록 해온 미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2006년 헤즈볼라(레바논의 이슬람 무장 정파)가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넘어 민간인 세 명을 죽이고 두 명을 납치해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하고 전쟁이 벌어졌을 당시에도 아랍권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바이든의 중재로) 아랍 세계, 그 무엇보다 이슬람의 발상지인 사우디와 가까워지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소외받는 것을 두려워해 이스라엘을 공습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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