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 의사 수·임금 규제 완화 추진… '의료계 달래기' 나선 정부 [정부 '의대 증원' 추진]

송민섭 2023. 10. 1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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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 앞두고 의료계 달래기
수도권 인력 쏠림·민간 유출 해소 기대
대통령실 “구체 규모 안 정해져”
세종·전남엔 의대 단 1곳도 없어
1000명 증원 땐 의대 신설도 가능
카이스트·포항공대에 의전 신설
‘의사과학자’ 양성 관측도 나와
공공의대 설립방안은 제외된 듯
의협, 17일 긴급회의서 대응 논의
정부가 17년째 동결 중인 의과대학 정원(3058명)을 2025학년도부터 1000명 이상 확대하는 파격적인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의사 증원과 관련한 의사단체의 ‘파업 불사’ 예봉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역 국립대병원 인력·임금 규제부터 풀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법령상 ‘기타 공공기관’으로 묶여 있는 지역 국립대병원에 정원 규모 및 총액 인건비 관련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의협 강력 반발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방침에 의사단체 등이 반발하는 가운데,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16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건물에서 나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정부가 의대 정원을 단독으로 발표할 경우 의료계와의 신뢰를 깨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뉴스1
16일 보건복지부와 국립대병원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역 국립의대에 대한 정원 규모 및 총액 인건비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국립의대 병원은 교육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으로 묶여 있다. 그간 국립의대 병원을 중심으로 소속 의사들에게 민간병원에 비해 낮은 보수를 지급할 수밖에 없어 민간으로의 인력 유출을 막을 수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많았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국립대병원 의사 인력의 정원·임금 규제가 없어지면 의료인력의 수도권 쏠림과 민간부문으로의 유출 심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의료분야 규제 완화 방안으로는 국립대병원을 아예 기타공공기관에서 제외, 기획재정부 경영평가 대상에서 빼거나 정부 내 정원·임금 규모 협의 과정에서 의사 인력은 예외로 두는 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최근 사회문제화한 필수의료 분야 공백 사태와 관련해 지역 국립의대가 ‘지역 완결형 의료 체계 구축’ 방안에서 핵심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실 등은 2025학년도 대학입시부터 40개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전임 정부의 설익은 정책 추진 발표,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들의 집단 반발, 전공의 등 의사들의 실력행사로 국민 여론은 의료계 파업 2∼3일 만에 정부로부터 등을 돌렸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우리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당위성과 절박함을 갖고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안이 마련되거나 발표 시점이 정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책 관련 로드맵이 나오지 않은 건 아직 구체적 방안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번 주에 의대 정원 확대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발표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말씀하신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의대 입학정원 확대가 윤석열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라며 임기 내 추진을 현실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의사단체 등이 반대 투쟁을 하더라도 개혁 과제 추진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전날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통화에서 “기본적인 방향에 대해서만 얘기했고 증원 규모라든가 구체적인 얘기는 없었다”며 “구체적인 증원 규모 등은 추후 복지부·교육부와 논의해 정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야당 내에서도 정부 방침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야당 내에서도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검토를 반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친명(친이재명)계 좌장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의대 정원 확충, 말이나 검토가 아니라 진짜 실행한다면 역대 정권이 눈치나 보다가 겁먹고 손도 못 댔던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의대 정원은 복지부로부터 적정 정원에 대해 통보를 받는 교육부가 전국 의대들의 증감 신청과 지역·대학별 여건을 고려해 배정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각 대학이 통상 전년도 4월까지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해야 하는 까닭에 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의대 정원 확대 관련한 정부 내 조율이 끝나야 한다. 정원 증원 규모가 300명 정도이면 의대 신설 없이 기존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되지만, 보도되는 것처럼 1000명 이상일 경우 새로운 의대 신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부가 40개 의대 정원 확대뿐 아니라 연구중심 의학전문대학원 신설 쪽으로 의사 증원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국 40개 의대와 1개 의전원을 따져보면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하지만 의대·의전원 정원이 수도권에 쏠려 있는 게 문제다. 총 13개교, 1035명이 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다. 세종, 전남에는 의대가 1곳도 없다. 이런 까닭에 의사과학자 양성을 강조해온 정부가 이공계특성화대학인 카이스트(KAIST)와 포항공대(POSTECH)에 연구중심 의전원 신설안을 내주는 쪽으로 중장기적 의사 증원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연합뉴스
정부의 이 같은 의사 증원 움직임에 의사단체는 파업 등 총력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협 대의원회는 이날 성명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기정사실로 한 보도가 의료계에 경악과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며 “보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의협은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총력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복지부와 의협이 의대 정원 증원에 관한 불신 해결을 위해 절차에 따라 적극적으로 협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협은 17일 전국 의사대표자회의를 열고 대한전공의협의회, 공중보건의사협의회 등과 함께 의대 정원 확대 움직임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정부는 의료계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수의료에 국한해 수가(의료행위의 대가) 인상과 신설 등의 대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복지위의 국정감사에서 “지역 간 의료 불균형에는 의료 수가, 인프라, 정주 여건 등이 문제”라며 “복지부가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의료 수가부터 손보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 대책으로 공공정책수가 도입 및 사후 보상 제도 확대 등을 고려 중이다.

다만 문재인정부가 2020년 의사 증원을 위해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제시했던 공공의대 설립 방안은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의대 입학 후 일정 기간 공공의사로 근무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공공의대 설립안은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부에서 계속해 요구하고 있는 사안이다. 조 장관은 지난 11일 국감에서 “공공의대 신설도 검토는 하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송민섭·이현미·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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