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돋보기] 기억이 간직해 온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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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방송사의 TV 프로그램에서 아주 특별한 사연이 소개되었다.
정신과 전문의의 설명에 따르면, 치매에 걸리면 단기기억이 먼저 사라지고 장기기억이 점차 사라진다고 한다.
노래를 부르면 신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기 치매 환자 이옥재 할머니가 30여 곡의 가요 가사를 완벽하게 불러내시는 사연에는 6남매를 함께 키우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남편에 대한 사랑과 추억이 깊이 배어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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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방송사의 TV 프로그램에서 아주 특별한 사연이 소개되었다. 중증 치매 판정을 받은 93세 이옥재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였다. 할머니는 이미 15년 전 치매 판정을 받고, 지금은 치매 말기 상태에 접어든 상태다. 단순히 옛날 노래를 기억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노래의 음조를 상당히 정확하게 부르실 뿐만 아니라 여러 곡의 가사들을 아주 상세히 구사하시는 모습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님아 ~'를 구성지게 불러내시고는 곡 제목을 묻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하신다. 제목도 기억 못 하는 노래의 가사와 음조는 모조리 기억해 내고 있는 치매 말기의 할머니이신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의 설명에 따르면, 치매에 걸리면 단기기억이 먼저 사라지고 장기기억이 점차 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것을 치매의 거의 마지막 단계로 본다는데, 지금 이옥재 할머니는 아들을 못 알아보고 손자라고 말하면서도, 젊은 시절 부르는 노래들을 그 가사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과 기억은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음악을 감상하는 과정은 마치 요즘 우리 생활을 돕고 있는 로봇청소기가 각 방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지나가며 결국은 집 전체의 청소를 완료하게 되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림을 매우 근접한 시야에서 관찰하면서 조금씩 전체를 파악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관찰한 데이터가 축적됨에 따라 그림 전체의 구조와 형태, 색감, 그것들을 펼쳐가는 패턴 등의 요소가 조금씩 파악되고 그 유사성과 통일성을 느끼게 되는 한편, 이질적이거나 대조적 요소들의 등장에 의한 변화를 감지하게 될 것이다. 경로 탐색을 모두 마친 후, 결국 균형 잡힌 하나의 유기체적 구조를 인지하고 결국에는 그 작품성 및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시각예술을 감상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방법이다. 그래서, 미술 작품들은 대부분 한눈에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된다. 작품 전체를 직관적으로 바라본 후, 세세히 면면을 파악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예술의 감상 패턴일 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한순간에 그 작품의 모든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최소한 만들어진 음악의 길이만큼은 연주를 들어야 한다. 연주를 듣는 중에도 맹목적으로 들려지는 것만 듣는 것이 아니라, 앞부분에 들었던 내용을 기억하고 새롭게 전개되는 요소들과 함께 연상하고 비교하며 듣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어느새 그 음악의 전체구조가 파악되고 익숙해져서, 마침내 음미하며 따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음악은 감상하거나 체득하는 과정에 있어 '기억'이라는 두뇌의 작업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그래서일까? 노인들이 노래교실을 통해 함께 손뼉 치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치매를 늦추고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음악치료 역시 기억력과 인지능력을 향상시킴으로서 치매 환자를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래를 부르면 신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기 치매 환자 이옥재 할머니가 30여 곡의 가요 가사를 완벽하게 불러내시는 사연에는 6남매를 함께 키우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남편에 대한 사랑과 추억이 깊이 배어들어 있었다. 음악 본유의 '기억' 과정에 그 노래를 함께 나누며 지낸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함께 저장한 것이다. 기억을 지우는 질병, 치매도 그 추억이 담긴 노래를 지우지 못했다. 음악은 소중한 추억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존할 수 있는 너무도 경이로운 또 하나의 클라우드인 셈이다. 김민표 목원대 음악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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