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미국 내 K 배터리-자동차 벨트의 발전을 기대하며!
우리나라에서 호박은 상류층의 비녀, 가락지, 마고자 단추 등의 재료였을 뿐만 아니라, 한의학에서는 기의 순환을 좋게 하는 경혈치료에 쓰인다. 한편, 서양에서 호박은 전기문명을 발달시킨 원초적 상상력과 탐구의 대상이었다.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Thales)는 만물의 기본 구성 요소는 물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으로는 설명 안되는 벽에 부딪혔다. 호박을 모피에 문지르면 보이지 않는 힘이 생겨 깃털 등 가벼운 물체를 끌어당기는 묘한 현상을 본 것이다. 탈레스는 그 보이지 않는 힘을 기록으로 남겼다. 당시 그리스어로 호박은 ‘일렉트론(Electron)’이었으니, 호박의 정전기를 최초로 기록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2,000년이 지난 16세기 말, 영국의 길버트(William Gilbert)는 호박 뿐만 아니라 많은 소재가 마찰하면 호박의 힘과 같은 정전기가 생기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그는 정전기를 ‘호박의 힘’’이라는 의미로 일렉트리쿠스(Electricus)라 이름하였으니 그것이 오늘날 전기를 뜻하는 Electricity의 어원이다. 그 후 유럽의 많은 과학자들은 전기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를 위해 많은 정전기가 필요했다. 그 필요에 따라 1660년 무렵 독일의 한 과학자가 황을 이용하여 정전기 발생 장치를 발명하였다. 또 발생된 정전기를 필요시 쉽게 사용하려면 그것을 저장하는 기구가 필요했다. 그것이 라이덴 병(Leyden Jar)이다. 마찰에 의해 발생된 정전기를 라이덴 병에 저장하였다가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으니 그것이 배터리로 발전되는 상상력의 획기적 현실화였다.
유럽에서 발명된 라이덴 병은 미국의 정치가이자 발명가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번개는 신이 내리는 벌이라고 두려운 하던 시절인 1752년, 그는 번개도 전기라고 상상하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연에 열쇠같이 뾰족한 금속을 매달아 비 오는 날 하늘로 높이 날렸다. 예상대로 번개가 연의 금속을 때리면 번쩍거리는 것을 보고 피뢰침을 발명하였고, 번개를 라이덴 병에 담아 전기라는 점을 증명하였다. 그는 서너 개의 라이덴 병을 연결하여 저장 용량을 증가시켰고, 그렇게 연결된 라이덴 병의 묶음을 배터리(Battery)라 불렀다. 배터리는 불어 ‘Batterie’에서 나온 것으로, 포대(砲臺) 또는 포병중대를 의미한다. 따라서 영어의 Battery는 포병중대처럼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다수의 사람 또는 물건을 지칭한다. 같은 맥락에서 투수와 포수를 함께 지칭하는 야구 용어이기도 하다.
비록 벤자민이 번개도 전기라고 입증했지만 여전히 전기의 진면목은 밝혀지지 않았다. 1800년, 이탈리아 과학자 볼타(Alessandro Volta)는 서로 다른 금속의 접촉만으로 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아연판, 구리판 그리고 전해질로 식염수를 사용한 전지(電池)를 발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발명품을 ‘인공 전기기관’이라 불렀지만, 이미 프랭클린이 라이덴 병을 연결하면서 명명한 ‘배터리’가 그의 발명품에 대한 일반적 이름으로 인식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볼타는 1801년 나폴레옹 앞에서 배터리 작동 시연을 했다. 나폴레옹은 경탄을 금치 못하며 그에게 금과 백작의 칭호를 하사하였다. 전압의 단위인 볼트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의 한 전기차 브랜드가 그의 이름을 땄다. 볼타의 배터리는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낸 위대한 것으로서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 올랐다. 볼타는 물리학자 뿐만 아니라 철학자들의 극찬도 받았다. 물리학자 패러데이(Michael Faraday)는 “자연철학 연구의 위대한 업적”이라 했고, 실증주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또한 볼트를 ”불멸의 인물”이라 추켜 세웠다. 그때까지도 철학은 수학 및 과학을 다 아우르는 학문으로 받아들여졌기에 나온 한 목소리였다.
그 후 물의 전기분해 등 배터리는 과학의 기초가 되는 여러 발명과 발견을 가능하게 했고 지금도 꾸준히 개량되고 발전되고 있다. 전신기, 전구, 축음기, 영화 등 1,100개가 넘는 발명특허로써 부를 축적한 에디슨은 20세기 초부터 배터리로 움직이는 전기자동차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했다. 자동차의 동력원은 초기에는 증기기관이었으나, 내연기관의 발명 후에는 전기와 내연기관이 서로 경쟁하였다. 1903년, 에디슨은 기존의 납 배터리보다 2.5배 성능을 향상시킨 니켈-철 배터리를 개발하여 전기자동차에 탑재하였다. 그러나 배터리 액의 누수 문제가 생겼고, 곧 이어1907년에 값싼 가솔린을 먹는 6기통 엔진과 저렴한 엔진의 출시로 전기자동차와 가솔린자동차의 대결은, 에디슨의 부단한 배터리 성능 개선에도 불구하고, 가솔린의 압도적 승리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소득은 있었다. 1907년 에디슨은 배터리 성능향상을 위해 전해액에 수산화리튬을 혼합했다. 오늘날의 리튬 배터리와는 다르지만 배터리의 성능 향상에 리튬이 최고라는 힌트를 일찌감치 준 것이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승리와 급격한 증가는 결국, 배기가스에 의한 대기오염 문제를 가져왔다. 1960년 대 말, 타임 지는 가솔린 대신 전기차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1980년 초 석유 파동으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결과는 몇 십년 동안 꾸준히 성능이 개선된 내연기관차에 비해 전기자동차는 그 주행거리나 등판능력에서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해 다시 패배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2050 탄소중립(Net Zero)이라는 전 지구적 목표달성을 위해, 그리고 자율주행차의 대중화를 위해 전기자동차가 권토중래(捲土重來)하여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 바탕에는 급격히 향상된 배터리 성능이 있다.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된다는 IOT(사물인터넷; Internet of Things)는 4차산업혁명의 한 원동력이며 결과이다. 이제 자동차 포함 모든 사물이 배터리로 움직인다는 ‘BOT시대’ 라고 IOT에 빗대 말한다. 미국의 바이든 정권은 북미 자유무역협정(USMCA) 국가인 북미 3국에서 채굴, 제련한 원료(리튬, 니켈, 알루미늄 등)의 비중이 40% 이상인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자동차에게만 보조금의 절반(3,750달러)을 주겠다는 내용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나머지 절반도 3국에서 생산한 부품을 50% 이상 사용한 전기차여야만 받을 수 있다. 이 역내 생산비율 조건은 2027년부터는 80% 이상으로 더 강화된다.
이런 바이든 정부의 천문학적 보조금 정책에 대응하고자 한국(K)의 배터리 3사는 기존 자동차 메이커들과 손잡고 미국에서의 배터리 개발과 생산공장 건설을 급속으로 추진하고 있다. 요즘 언론에선 동부 지역인 미시건, 오하이오, 테네시, 켄터키 그리고 조지아에 이르는 지역을 신흥 ‘K-배터리 벨트’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벨트에 배터리 공장이 완성되면 K-배터리 3사의 시장 점유율은 70% 이상일 것이라 보도되고 있다. 특히 조지아는 K-배터리 벨트와 한국 자동차 메이커 및 그 부품협력사들이 85번 고속도로(I-85)을 따라 형성한 K-자동차 벨트가 만나는 접점이다. 전통 미국 제조업 지대였던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등 북동부는 쇠락하여 Rust Belt라고 불리우고 있으니, 신흥 K-배터리 및 K-자동차 벨트와 대조된다.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재 대결에서 기후위기 때문에 전기차가 앞으로는 계속 우세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도 반발은 강하다. 미국은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 올리려 노력하지만,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는 자동차노조(UAW)가 반발하고 있다. 영국은 내연기관차의 판매 가능 시한을 2030년에서 2035년으로 연장했으며, 내연기관 강국인 독일도 ‘중국 업체에게만 유리한 내연기관 퇴출 시한’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Rust Belt 지역은 타 지역의 부상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만일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K-배터리 벨트와 K-자동차 벨트에 어떤 부정적 영향이 오지나 않을지 은근히 걱정되는 요즘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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