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반국가세력 활개” 이념 발언 급증… 통합 메시지는 약했다 [심층기획-국민 두 쪽 낸 ‘정치인의 입’]
취임 후 이념·안보 앞세워 국정운영
자유 71회 언급… 연설 핵심 키워드로
평화 54회·북한 53회… 위협도 38회
“공산전체주의 맹종하며 여론왜곡” 등
국민 향한 연설서도 야권 겨냥 공세
“정치 양극화 부추겨 통합 저해” 지적
강경한 대통령 언어, 野 비협조도 한몫
여권서도 강서구청장보선 참패 계기
‘경제·민생 중심으로 바뀌어야’ 목소리
대통령의 말에는 국정 철학과 정책 방향성이 담겨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꾸준히 대국민 연설에서 ‘자유’를 강조해왔다. 이념이나 안보를 강조할 때도, 독립과 민주화 과정에서 국가에 헌신한 이들을 기릴 때도 자유는 늘 따라붙는 단어다.
세계일보는 16일 엠포스 데이터전략실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5월10일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이날까지 대통령이 한 대국민 연설문 23개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윤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에는 국민·여러분이 92회로 가장 많이 언급됐고, 자유(71회), 지원(45회), 국가(36회), 세계·정부·평화(28회), 경제(27회), 북한(25회) 등이 뒤를 이었다. 국민과 여러분이 연설문에 관행적으로 자주 쓰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의 대중연설 핵심 키워드는 ‘자유’다.
이념을 앞세운 국정운영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온 윤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도 이념을 강조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는 반국가세력들이 활개 치고 있다”는 등의 발언이 나온 올해 광복절 경축사가 대표적이다. 이념 관련 단어로는 자유민주주의(44회), 보편적 가치(24회), 공산(12회), 전체주의(8회), 공산전체주의(7회) 등이 주로 사용됐다. “공산세력”, “반국가세력” 등과 같이 세력(19회)이라는 단어로 상대 진영을 적대시하는 표현도 눈에 띄었다. 통합은 총 4회 언급되는 데 그쳤다.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연설 키워드. 엠포스 데이터전략실 제공 |
윤 대통령의 발언 전반을 들여다보면 최근 윤 대통령의 말이 강해지고 있음이 더 확연히 드러난다. 특히 야권을 겨냥해 수위 높은 발언이 이어졌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부위원과의 통일대화에서는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은 여소야대라는 정치환경 속에서 국정운영에 비협조적인 야당의 존재를 간과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성이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윤 대통령에게는 절대다수 의석을 갖고 있고, 전혀 협조하지 않는 야당의 벽이 매우 크게 느껴질 것”이라면서 “그런 상황을 뚫고 나가야 하는 윤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강경한 언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사회에 쌓인 개혁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때론 인기 영합적이지 않은 행보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여권 내에서도 윤 대통령의 이념 중심적 메시지가 경제와 민생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수도권 의원은 통화에서 “수도권 필패를 막기 위해 중도·무당층의 민심을 가져오려면 정책 기조와 방향을 바꿔야 한다”면서 “그건 당 지도부가 아니라 용산(대통령실)이 바뀌어야 한다. 국정운영 방향을 바꾸고 경제와 민생에 올인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념과 가치를 얘기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실제 대통령실의 기류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경제나 민생 일정, 메시지를 안 한 게 아닌데 많은 분들이 그것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더 많은 분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내부에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지난 추석을 전후로 ‘민생 안정대책’을 마련하며 물가 안정과 내수 활성화에 국정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북한의 공산세력, 그 추종세력의 가짜 평화 속임수에 결코 현혹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한 메시지를 냈지만, 보선 결과가 나온 지난 12일 장진호전투 기념식 기념사에서는 ‘세력’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이념 발언에 대한 수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유지혜·김병관·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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