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9일째…"확전은 안 돼, 민간인 보호해야"

김하늬 기자 2023. 10. 1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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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전쟁]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공격으로 촉발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보복 공습이 9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파괴를 내걸고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지상전'을 예고하는 가운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은 중동의 '화약고'가 폭발하지 않도록 외교전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특히 거주인구가 230만명에 달하는 밀집 지역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이 벌어질 경우, 막대한 민간인 피해가 우려된다며 인도주의적 접근론이 우세해지는 상황이다. 피해자 수는 현재도 계속 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각) 백악관 인디언 트리티룸에서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들과 간담회 중 발언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안보와 유대인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은 흔들리지 않는다"라며 이스라엘 인근에 항공모함 전단과 전투기를 보냈다고 밝혔다. 2023.10.12.

15일(현지시간) AFP 및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저녁 기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사망자는 4000명을 넘어섰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저녁까지 집계된 누적 사망자가 2670명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측 사망자도 1500여명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연일 폭격을 맞고 있는 가자지구 부상자는 9600여명에 달한다. 전기 공급이 끊긴 가자지구의 병원은 의약품과 병상도 부족해 추가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가 길어지면서 주민들의 추가 피해도 우려된다. 이스라엘은 가자 북부 민간인들(약 110만명)의 남부 지역 이동을 촉구하고 있다. 외신을 종합하면 가자지구 전체 주민 중 100만명 이상은 위기감에 집을 떠났다. 하지만 가자지구가 물과 연료 공급이 단절된 상태라 이들은 또 다른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가자지구 '지상전'보다 민간인 '인도주의적 지원'에 초점
가자지구 남쪽과 이집트 국경이 접해있는 라파(Rafah) 국경검문소/AFPBBNews=뉴스1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한 현재 상태를 유지해도, 지상군으로 가자지구 점령을 시도해도 처참한 인명피해는 피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안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주변 중동 국가 방문 뒤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2차 회담을 잡은 것도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라는 분석이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주말 이집트 대통령과 만나 가자지구 남측 국경과 맞닿은 라파(Rafah) 국경소를 임시 개방해 민간인의 입국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요청하며 이스라엘, 이집트 3국 간 남부 일시 휴전 협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스라엘은 휴전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의 강경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분쟁에서 명명백백히 이스라엘 편이라고 발언해왔지만, 이날은 미국 CBS 인터뷰에서 "(하마스는) 완전히 제거돼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을 구분한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CBS의 다른 프로그램에서 "이스라엘은 민간인의 안전은 물론 안전한 곳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식음료, 의약품, 피난처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중동 확전 방지
[카이로=AP/뉴시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5일(현지시각) 이집트 카이로를 떠나 요르단으로 향하기 전 기자회견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회담 후 가자지구를 빠져나갈 유일한 육상 통로인 라파 검문소가 개방될 것이며 "유엔, 이집트, 이스라엘 등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메커니즘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2023.10.16.
미국의 이같은 행보는 더 넓은 중동 전쟁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으로 보여진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국교 정상화로 중동 지역 평화를 이끌어내려던 미국의 구상은 이미 위기를 맞았다. 1년 뒤 재선에 도전할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나 시리아, 이란까지 참전할 경우 해법은 더 복잡해진다. 미국이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헤즈볼라까지 전쟁에 참여하면 미국 입장에서는 동맹국인 이스라엘에 군사적으로 더 깊이 관여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뿐만 아니라 지상군을 투입한 전면전이 가자지구에서 일어날 경우,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주요 아랍 국가들에 기대했던 마지막 '중재'의 여지도 사라진다. 이번 사태에 대한 중동의 반응은 미국에 유리하지 않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블링컨 장관과 만나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은 자위권 행사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고 비판했고, 아랍연맹(AU)은 아프리카 전체 55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는 아프리카연합(AL)과 공동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지상전 계획 철회를 촉구한 바 있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을 대표해 중동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지난 12일 이스라엘 방문을 시작으로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 이집트, 바레인 등 중동 주요 국가를 다니며 확전 방지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인 15일 블링컨 장관은 이집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하마스 공격이 더 큰 지역 전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겠다"고 한 발언이 공개되기도 했다.

중동의 일촉즉발 상황에 다른 국가들도 발벗도 나섰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은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레바논에 분쟁이 파급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사령탑인 왕이 외교부장(장관)은 "이스라엘의 행동이 정당방위의 범위를 넘었다"고 지적하면서도 조만간 중동 특사를 파견해 휴전과 민간인보호, 평화회담 추진을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김하늬 기자 hone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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