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영의 이제 좀] 쿠팡 노동자의 죽음과 책임 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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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3일 새벽, 경기도 군포시의 한 빌라에서 배송 중이던 쿠팡 기사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고인은 왜 심장이 정상보다 두 배 이상 커져 있는 위중한 상황에서 1년 넘게 밤새 새벽배송을 해야 했을까? 기업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고 노동 과정에서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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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황두영 작가]
10월13일 새벽, 경기도 군포시의 한 빌라에서 배송 중이던 쿠팡 기사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고인은 쿠팡에 직접 고용된 직원이 아니라, 쿠팡의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하청업체인 물류업체에서 재하청을 받는 개인사업자 신분이었다. 쿠팡은 이들을 퀵 플렉스라고 불렀다. 이번 사건은 서류상으로 복잡한 다단계 하청 구조와 다르게, 그들의 업무는 쿠팡 본사의 물류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쿠팡은 사건 발생 직후 '고인은 쿠팡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고 산재 책임을 회피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15일 경찰 발로 질병에 의한 사망으로 내사 종결할 것이란 보도가 이어졌다. 고인이 비정상적으로 심장이 비대한 상황이라고 국과수로부터 구두 소견을 받았다면서 말이다. 단기간의 집중적인 과로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는 행간이다. 사건 발생 2일 밖에 되지 않은 일요일 저녁에 나온 '구두 소견'만으로 내사 종결을 '예정'하고 있다는 보도는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 마냥 다급해 보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 사건에 대해 노조와 정치권이 발언하길 원치 않는다는 유족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되었다. 유족이 사측에 15일 12시7분에 보냈다는 그 문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 70분 만인 13시17분에 조선비즈 기사로 나올 수 있었을까(조선비즈 <60대 택배기사 과로사 논란… 유족 “노조·정치인은 말하지 말라”>). 죽음에 대한 책임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발신 번호가 진짜 유족인지 정도는 취재가 이루어졌을까. 이해관계자인 하청사가 보낸 사진 하나만 달랑 들고 기사를 쓴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일요일 점심시간에도 전광석화처럼 일하는 일부 언론인들의 성실함에 놀랄 뿐이다.
이번 사건은 만연하는 특수고용형태 노동과 플랫폼 노동에서 '산업재해'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택배기사는 2012년부터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이지만 여전히 보험 가입도, 산재 신청도 사각지대가 허다하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4월 발표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노동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한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의 30.2%가 산재가입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가입자 중에도 “비용을 기사가 모두 부담한다”는 응답이 14.4%이었다. 이번 사건이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을지, 인정되어야 하는지, 고인의 산재보험 가입여부는 어떤지 등은 사건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도 심도 있는 보도가 많지 않았다.
다단계의 하청 구조 속에서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도 따져봐야 할 쟁점이다. 산재보험법 상 일차적인 책임은 고인의 소속 물류회사에 있다. 그런데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는 '클렌징' 제도를 통해, 쿠팡이 원하는 물량을 원하는 시간 내에 배송하지 못하면 대리점의 배달 구역 할당을 회수해버린다. 기사의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해고다. 게다가 어떤 평가항목을 통해 '클렌징'되는지도 명확하게 공개되어 있지 않다. 쿠팡은 야근, 특근하라고 지시하진 않는다. 다만 플랫폼 연결을 끊을 뿐이다. 쿠팡은 과로의 책임이 얼마나 있을까.
질병사라는 경찰의 잠정적 결론은 산재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확인되어야 할 더 많은 쟁점들을 남긴다. 돌연사가 아닌 질병산재는 원래도 산업재해 사건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복잡한 영역이다. 사망자의 장기적인 근무 형태, 근로조건, 유무형적인 압박 요인 등이 종합적으로 질병을 유발했는지를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고인의 죽음이 쿠팡의 책임이 아니라면 더 큰 문제다. 고인은 왜 심장이 정상보다 두 배 이상 커져 있는 위중한 상황에서 1년 넘게 밤새 새벽배송을 해야 했을까? 기업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고 노동 과정에서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고인이 산재보험과 단체 실손보험, 병가와 질병휴직, 직장 건강검진이 보장되는 정규직 노동자였다면 고인은 진즉 휴식과 치료를 받았을 수도 있다. 그걸 보장하지 못했다면 쿠팡은 법으로 정한 책임을 져야 하니 말이다. 점차 위험해지는 고인의 몸을 이용해 쿠팡은 돈을 계속 벌었다. 쿠팡이 이 죽음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이런 위험과 질병들은 노동자 개인과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돈은 기업이 벌고, 책임은 사회 전체에 전가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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