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선거제도 개혁의 마지막 퍼즐, 공천권
지도부 개혁 요구는 '미풍'
공천 몇달 안남아 '눈치보기'
美공화 강경파는 2인자 탄핵
'상향식 공천'으로 개혁해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국민의힘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이 교체됐다. 김태우 후보를 사면하고 공천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기현 당대표를 대신해 임명직 당직자들이 보선 패배 책임을 진 셈이다. 강서구는 야당 성향이 강한 지역인 데다 득표율 격차도 21대 총선과 비슷하게 나왔기 때문에 여당이 애써 정치적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 쳐도 '총력전' 선거 패배치곤 후폭풍이 너무 잠잠한 거 아닌가. 당내에서 대표와 대통령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입바른 소리 잘하는 원외 인사들과 몇몇 의원을 제외하고 대다수 현역 의원들은 감히 입 밖에 내질 않는다. 내년 총선이 6개월여, 공천 확정은 그보다 더 짧게 남았는데 공연히 나섰다가 미운털이 박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 당내에선 이 대표 사퇴론보다는 '옥중 공천권 행사'류의 목소리가 더 컸다. 가결표를 던진 의원을 색출해 징계하자는 얘기는 분풀이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이 대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뒤 가결파 의원들에 대한 징계 청원이 제기됐고, 일부 친명계 의원들은 윤리심판원에 정식 회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6일엔 이 대표가 본회의장에 나타나자 민주당 의원들이 이 대표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촌극이 빚어졌다. 딱 보기에도 민망한 광경이지만 총선 공천을 앞두고 이 대표와 찍은 투샷 사진이 절박하게 필요했겠거니 이해가 간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일어난 하원의장 탄핵 사태는 한국 정치와 전혀 다른 차원의 충격을 던져줬다. 공화당 2인자인 케빈 매카시 의장을 민주당도 아닌 공화당 강경파그룹이 공격해 몰아낸 것이다. 소수 강경파 권력이 너무 커져 의회정치가 통제 불능이 돼버렸다거나 연방정부 셧다운조차 개의치 않고 막무가내로 정국을 마비시켰다는 비난이 쇄도했지만, 관전하는 입장에서는 당 지도부에 대놓고 반기를 들 수 있는 시스템이 신선한 충격이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정당정치에서 보스정치도, 공천권 줄 세우기도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총선에 나가려는 후보는 공화당 또는 민주당에 당원으로 등록한 뒤 프라이머리(Primary)라 불리는 예비선거를 통해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평가받는다. 수없이 많은 인터뷰와 연설, 토론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당원들과 주민 투표에 의해 공천이 이뤄진다. 당연히 당 지도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고, 우리와 달리 당대표라는 자리조차 없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당대표가 공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경선을 치를 때는 당원투표와 국민 여론조사로 결정되지만 공천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경선 후보를 추리고, 전략공천 지역을 정하는 등 공천 관련 핵심 의사결정은 당대표가 좌우한다. 여야 차이가 있다면 대통령의 입김 여부다.
민주화 이후 30년이 넘어가면서 우리나라는 절차적인 면에서 민주주의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특히 선거와 관련해선 대규모 인력 동원이 사라지고, 불법 선거자금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정당보조금이 크게 늘어 굳이 불법을 감수할 동기도 작아졌다. 그런데 여전히 낙후된 분야가 공천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권을 막론하고 공천 파동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은덕'을 입어 하향식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유권자가 아닌 보스에게 충성하고 다시 하향식 의사결정을 옹호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어려운 이유다. 기득권이 걸린 이런 문제는 국회의원 손에 맡겨선 답이 없다. 국민청원이든 헌법소원이든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충격이 가해져야 한다.
[박만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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