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신 담을 가방도 부족"… 유엔 난민기구마저 떠날 위기
공습에 유엔 직원 14명 사망
구테흐스 "깊은 구렁텅이로"
봉쇄 국면에 물·전기 곧 바닥
이집트, 국경 개방여부 논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10일째에 접어들면서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위기가 극에 달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부터 단행된 이스라엘의 '완전 봉쇄'로 인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식수조차 제대로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하마스는 7일 이후 지금까지 인질들을 억류하고 있다.
미국 ABC방송에 따르면 필리페 라자리니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은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가자지구는 교살당하고 있다"며 "세계는 인간성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날까지 가자지구에서는 UNRWA 직원 14명이 이스라엘의 공습에 의해 사망했다. 라자리니 집행위원장은 이어 "가자지구에는 이제 시신을 담을 가방도 부족하다"며 "전례없는 인도주의적 재앙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중동이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기 직전이라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향해 인도주의적 조치를 요청했다. 그는 먼저 하마스를 향해 "인질들을 조건 없이 석방하라"고 촉구했고, 이스라엘에는 "가자지구 민간인을 위해 인도주의적 지원 물품과 인력이 신속하고 방해 없이 가자지구에 접근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스라엘의 봉쇄로 인해 가자지구에는 물과 식품, 전기, 의료품 등이 곧 바닥난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병원에는 현재 진통제가 바닥났으며 다수의 가자지구 주민이 식수 부족으로 심각한 탈수 증세를 보이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16일 가자지구 전역의 병원에서 연료가 24시간 정도 내에 고갈된다고 밝혔다. 도미닉 앨런 유엔인구기금(UNFPA) 대표는 CNN과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 임신부가 5만명 있으며, 임신부 가운데 5000명은 다음 달에 출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CIA 자료를 보면 가자지구 인구의 40% 가까이가 15세 미만 미성년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한 주 가자지구 사망자 중 60%가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제사회에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내에 인도주의 구역을 설정하는 방안을 유엔과 논의하고 있다. 미할 헤르초그 주미 이스라엘 대사는 15일 CNN과 인터뷰에서 "가자지구 남부에 대규모 인도주의 구역을 설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물과 식량, 의약품 등 모든 필수품을 공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헤르초그 대사에 따르면 인도주의 구역은 수십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집트는 미국, 이스라엘과 함께 가자지구 남부에 접한 라파 국경을 개방할지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5일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에게 국경을 열어 미국인들을 대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도 같은 날 라파 국경이 곧 열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라파 국경 재개방 소식이 전해지기 전 국경이 이날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면서 "이집트는 미국 국적자를 가장 먼저 수용한 뒤 미국 이중 국적자, 기타 서구 국적자, 유엔 등 구호 활동가, 마지막에는 글로벌 기업 직원의 입국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가자지구에 현재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은 500~600명으로 추산된다. 블링컨 장관은 "가자지구 주민을 지원하기 위한 물품들이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김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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