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로켓배송과 여성 임원
여성 임원은 아직 소수다. 여성할당제, 평가 가점 등 별별 수를 다 써보지만 여전히 드물다. 국내 30대 그룹사 여성 임원 비중은 6.9%라는데 중견·중소기업까지 따져 보면 그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육아를 포함한 가사 부담이라고 한다.
외부 손님과의 저녁 자리에 동행한 최 부장이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쇼핑 앱을 켠다. 이것저것 눌러 담고 결제 버튼을 누른다. 나름 숨긴다고 애썼지만 다 보였다. 내일 딸아이가 학교에 가져갈 준비물을 사야 한단다. 미리미리 좀 하지 굳이 지금. 내 표정을 읽었는지 한마디 보탠다. 좀 전에야 아이에게 연락이 왔는데 내일 가져가려면 지금 주문해야 겨우 가능하다는 것이다. 새벽배송이 되는 품목으로 골라야 해서 시간이 좀 걸렸단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는 직원들이 종종 있었다. 주말에 미리미리 사두지, 굳이. 평일, 회사에 출근해서 점심시간에까지 그래야 할까. 뭐가 필요할지 미리 알 수 없을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아이들은 늘 잠들기 전에 다음 날 준비물을 떠올린다. 게다가 집이 좁아서 쌓아둘 곳도 마땅치 않고.
미리 알 수 없다, 쌓아둘 곳이 없다는 건 납득이 갔다. 우리나라 가정들의 경우 집 면적의 3분의 1가량은 1년에 한 번 찾을까 말까 하는 잡동사니로 채워둔다는 조사도 있었다. 그렇게 비싼 집에서 살면서 3분의 1은 버려두는 셈인데 사실 이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남편은 잘 안 한단다. 퇴근할 때 뭐 좀 사오라고 하면 투덜거리고, 알았다고 해놓고도 빈손으로 온단다. 자기 아이는 배송기사가 키웠다는 말까지 나왔다. 클릭하면 군말 없이 가져다줬다는. 심지어 아이가 배송기사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는단다.
그런데 물건만으로 아이가 크는 건 아니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정신을 온전히 쏟아야 한다. 그래서 회사에 바라는 게 있단다. 오후 늦게, 퇴근 무렵에 새로운 일이 생기는 건 없었으면 한다는 거다. 상사는 꼭 늦게 새로운 일을 준다. 상사들도 하루 종일 이런저런 회의에 시달리다가, 늦은 오후부터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왜 하필 나에게 줄까.
퇴근 전 대면으로 업무 지시를 받는 건 그나마 낫다. 메시지로, 메일로 날린다. 이미 퇴근했으면 신경 쓰지 말라고 내일 해도 좋다는 메모가 붙어 있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다음 날 출근해서 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어 보지만 한번 입력된 태스크는 머리 속에 뱅뱅 돈다. 그래서는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기 어렵다. 수전 램버트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예측 불가능한 작업 스케줄이 노동자의 일상과 가족 관계, 심지어 자녀 취침 시간까지 교란시킨다고 했다.
통계청 발표(저출산과 우리 사회 변화)에 따르면 맞벌이 기혼 여성의 가사 분담 시간이 남편보다 세 배 이상 많다고 한다. 여전히 남편은 '남의 집안일을 돕는 사람'이지 '자기 집안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입사 3년 만에 떠났다가 6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다는 인사명령에 결재했다. 이 늙은 신참이 어떻게 지낼지, 임원까지 승진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로켓배송 기사 덕분에 예전보다는 확률이 높아졌을까.
[김영태 코레일유통(주)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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