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물결과 폭풍우를 넘나들며 그려낸 라흐마니노프의 큰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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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에겐 '음악 인생의 동반자' 같은 작곡가가 꼭 한 명씩 있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가 극찬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4·사진)에겐 러시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그런 인물이다.
2017년 미국 밴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그에게 한국인 최초의 우승을 안겨준 작품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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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바흐·2부 라흐마니노프 연주
강한 추진력·정제된 음색 돋보여
여린 선율부터 거대한 울림까지
고음-저음 대비도 확실히 드러내
연주자에겐 ‘음악 인생의 동반자’ 같은 작곡가가 꼭 한 명씩 있다. 악보만 봐도 그의 생애가 그려지고, 손이 부르트게 연습해서라도 그의 작품만은 제일 잘 연주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끓는 그런 작곡가 말이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가 극찬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4·사진)에겐 러시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그런 인물이다. 2017년 미국 밴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그에게 한국인 최초의 우승을 안겨준 작품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 그가 라흐마니노프 음악으로 주요 레퍼토리를 채운 전국 리사이틀 투어를 여는데 클래식 애호가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지난 15일 경기 평촌아트홀은 그의 연주를 기다리는 인파로 북적였다.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보다 사흘 앞선 무대였다.
1부는 클래식 음악의 뿌리라고 여겨지는 바흐 음악으로 채워졌다. 라흐마니노프와의 구조적 밀접성을 보여주겠다는 선우예권의 뜻이 반영된 결과였다. 첫 곡은 브람스가 왼손을 위한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바흐의 ‘샤콘’이었다. 선우예권은 오른손을 등 뒤에 올린 채 오로지 한 손으로 건반을 간결히 끊어치면서 바흐의 선율을 명료하게 그려냈다. 왼손만으로 섬세하게 밀도를 조율하다가도 돌연 강한 터치로 뼈대가 되는 음을 소리의 표면 위로 튀어 올리는 그의 연주는 바흐의 견고한 구조와 짜임새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뒤로 이어진 곡은 바흐의 건반을 위한 파르티타 2번. 선우예권은 유연한 손 움직임으로 쉼 없이 변하는 리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작품에 담긴 생동감을 펼쳐냈다. 피아노 음색은 우아하면서도 따뜻했고, 소리의 울림은 선명하면서도 조화로웠다. 뚜렷한 방향성과 강한 추진력으로 모든 음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면서도 연주 속도가 급해지거나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연주하는 것)이 흔들리는 순간은 없었다.
드디어 라흐마니노프. 그가 스페인 무곡 ‘라 폴리아’ 선율을 토대로 작곡한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연주됐다. 처연한 음색과 건반을 스치는 듯한 유려한 터치로 작품 특유의 애달픈 감정을 읊어낸 선우예권은 점차 건반을 내려치는 강도와 소리의 밀도를 높여가며 라흐마니노프의 화려한 색채를 전면에 펼쳐냈다.
그의 손은 시종 예민하게 움직였다. 모든 소절의 셈여림과 음색에 미묘한 차이를 두고 자연스러운 악상의 변화를 이끌면서도 고음과 저음의 대비는 명징하게 드러내 긴장감을 키웠다. 날카로우면서 무게감 있는 터치로 맹렬한 악상을 표현하다가도 일순간 힘을 빼고 애처로운 선율을 속삭이며 끝을 맺는 연주는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 작품은 라흐마니노프가 쇼팽 프렐류드 작품번호 28-20을 토대로 쓴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었다. 선우예권은 건반을 누르는 깊이와 무게, 피아노의 배음과 잔향의 효과를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라흐마니노프의 화성적 색채를 풍부하게 살려냈다. 역동적인 입체감은 일관성 있게 나타났다.
정제된 음색과 제한된 음량으로 음향의 움직임을 잡아두다가도 금세 몸에 반동이 생길 정도로 세게 건반을 내려치면서 공연장 천장까지 거대한 울림을 퍼뜨리는 솜씨는 인상적이었다. 마치 잔잔한 물결처럼 움직이는 쇼팽의 서정과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라흐마니노프의 격정을 그만의 피아노로 채색한 듯했다.
“라흐마니노프는 가슴을 끓게 만드는 작곡가입니다. 광활한 대양 위를 저공 비행하는 느낌이랄까, 대자연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죠.”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선우예권이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이 느낀 그대로의 라흐마니노프를 명료하게 들려줬다. 어떤 때는 용암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어떤 때는 바다처럼 깊은 애수로.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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