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충?...'응급실 뺑뺑이' 해결 vs 특정 진료과 기피가 더 문제
정부가 2025학년도 대입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최소 1000명 이상 증원하는 방향으로 의대 규모를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정부는 19일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를 열고 의대 정원 확충안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의대 정원은 지난 2006년부터 18년째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확충안이 확정되면 4000명 이상으로 정원이 크게 늘게 된다.
● 초고령화·응급실 뺑뺑이...의료인력 증원 필요성 제기돼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연간 400명씩 10년간 4000명의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의료계는 의사 수가 늘면 의료비가 증가하고 의료의 질은 떨어져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파업을 강행했다.
의사 집단의 거센 반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코로나19)이라는 시급한 사안으로 인해, 당시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되는 시점 재논의하기로 하고 이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일상을 회복한 해다. 올해 초 정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열고 그동안 미뤄온 의료 현안들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의대 정원 확대도 논의했으나 정부와 의료계는 좀처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의료계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발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가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정원 확대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인구 고령화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5년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현재 의료인력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증가하는 의료 수요에 대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3 보건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임상 의사 수가 적다. OECD 평균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3.7명이며, 한국은 2.6명이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주장할 때 이를 항상 통계적인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은 정원 확대 논의에 불씨를 키웠다. 국내 최대 규모 병원의 직원이 수술해줄 의사가 없어 뇌출혈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내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간호사가 쓰러질 당시 개두술이 가능한 교수 2명 중 한 명은 해외 학회, 다른 한 명은 지방 출장으로 응급환자에 대응할 수 없었다.
이후 ‘응급실 뺑뺑이’를 하다가 구급차에서 숨을 거두는 환자들이 잇따라 발생하며 의대 정원 증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2023 대국민 의료현안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6.3%가 현재 의대 정원에서 10% 이상 증원해야 한다고 답했고, 24%는 1000명 이상 늘려야 한다고 답해 80%가 의대 정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의료계 반대 여전...과학계 입장 반영도 해결해야
하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국은 의료 접근성이 좋고 국민 건강 지표가 우수한 편이라는 점에서 의사 수가 부족한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의대 정원보다는 특정 진료과로 쏠릴 수밖에 없는 의료환경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 필수 진료과 의사나 지방 의료인력이 낮은 보수 대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으며 의료사고 시 형사처벌 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피과 및 기피지역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양질의 의료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우선이라고도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엄격한 교육과정, 실습, 숙련된 경험 축적이 필요하다”며 “국가 의료 체계 확보는 고도로 치밀한 교육 체계와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고 장기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안정화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의료계 달래기 방안 중 하나로 국립대병원 의사 인력 정원과 임금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국립대병원은 낮은 보수와 한정된 인력으로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다.
하지만 이밖에도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들이 남아있다. 늘어난 의대 정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문제다. 정부는 지역 간 의료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늘어난 의대 정원을 지역 의대에 집중 배치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해지나, 수도권 내에서도 인기과와 기피과 간의 격차가 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해결책이 제시돼야 한다.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의전원 설립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KAIST, 포스텍 등 과학계와의 논의도 필요하다. 상위권 이공계 학생들이 의대 지원을 위해 대거 이탈할 경우, 과학기술을 육성하고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정부의 목표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지 다방면으로 검토해야 할 숙제들이 남아있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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