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 `상처뿐인 12년`-상] 결론없는 공청회·책임회피 소송까지… 지워진 피해자들
피해인정자가 5000명이 넘는 가습기살균제 대참사 문제가 12년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가해기업과 피해자단체 간 갈등에 뒷짐을 지고 있고, 기업들은 우여곡절 끝에 피해자들과 마주한 공청회에서조차 책임공방만 이어갔다.
이 와중에 주요 가해기업 중 한 곳인 애경산업은 환경부가 내라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추가분담금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풀리지 않는 갈등과 책임공방 속에 피해자들은 지쳐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지난 2011년 원인 미상 폐 질환에 걸린 임산부들이 대거 발생하며 수면 위로 드러난 화학 재해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자는 총 7870명이며, 이 가운데 피해지원 대상자수는 5212명(피해자 5176명), 확인된 사망자 수는 1827명이다.
◇상처만 헤집은 공청회…"분담금 못내" 공판 임박
지난달 26일 3시간여 동안 진행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 공청회'는 결론없이 끝났다.
피해자단체들과 가해기업 대표들, 환경부 관계자를 한자리에 불러모아 종합적인 의견을 듣고 피해구제 관련 절차의 진전을 모색한다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추진해 우여곡절 끝에 열렸지만, 서로 상처만 헤집어 놓은 채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애경산업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추가분담금을 못 내겠다며 행정소송을 낸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애경산업은 내달 해당 행정소송에 대한 공판에 돌입하게 된다.
지난 5월 이 회사가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을 상대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추가분담금 부과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데에 따른 것이다.
분담금은 환경부가 피해 구제 재원 마련을 위해 가해기업들에게 부과한 것이다. 지난 2월 가습기살균제 구제자금 운영위원회는 2017년 1월 제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에 명시된 추가 분담금 상한에 따라 1차 분담금 규모와 같은 총 1250억원을 가해기업(특별법에 의거한 18개 사업자)에 부과한 바 있다.
특별법에 따르면 분담금의 75% 이상이 사용됐을 경우, 정부가 가해기업들에게 추가로 분담금을 징수할 수 있다. 2차 분담금 가운데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의 분담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4%, 7% 정도였다.
전체 분담금의 17%를 부담하는 SK케미칼은 이의신청 없이 추가 분담금을 납부했지만, 옥시는 이의신청을 냈다가 기한이 임박해서야 뒤늦게 납부했다.
애경산업 측은 이번 공판에서 분담금이 과하게 책정됐다는 입장을 주로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애경산업 관계자는 "어떤 주장을 펼칠지 등은 재판이 열리기 전이라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동안 가해기업들은 꾸준히 분담금 비율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 왔다. 피해자들과 대면한 공청회에서조차 강한 불만을 드러냈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의 경우 추가분담금이 또 다시 부과될 경우 이를 납부하기 위한 본사의 재정지원을 더 이상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사실상의 엄포를 놓기도 했다.
◇민간조정위 활동기한 연장했으나…후속 논의 기약 없어
환경산업기술원이 부과하는 분담금과 더불어 피해구제의 또 다른 축인 민간 조정위원회의 피해조정안도 오리무중이다. 2021년 출범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조정위원회는 지난해 조정안 초안을 도출했으나, 옥시와 애경산업 등이 조정안에 거부하면서 이후 논의가 올스톱됐다.
조정위는 피해자 구제와 배·보상 문제를 다루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해 만든 것으로, 피해자 단체들과 가습기살균제 피해분담금을 납부한 가해기업 18곳 중 9곳이 참여했다. 9개 기업 중 7개 기업이 조정안에 동의했으나, 옥시와 애경은 피해보상금의 60% 정도를 부담하는 점, 종국성(조정이 이뤄지면 기업에 더이상의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뜻) 확보 조항이 조정안이 아닌 권고안에 담긴 점 등을 문제 삼아 동의하지 않았다.
현재 조정위는 공식적인 활동 기간이 지난 5월로 끝났지만 "조정위마저 없어지면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없던 1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는 피해자 단체들의 요구를 반영해 잠정 유지 중인 상태다.
결론없이 끝난 공청회 역시 이후 후속 논의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정위 관계자는 "공청회 이후 바로 국정감사가 진행되면서 환노위 의원들이 정신없이 바빠졌다"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건은 국감이 끝나고 나서 후속 논의를 해야 한다는데 환노위 위원장이 공감하고 있지만, 구체적 논의 시점은 아직 언급되지 않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시간이 지체될수록 피해자단체 간 이해관계는 복잡해지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도 커지고 있다"면서 "결국 피해자, 피해자들의 유가족의 일상회복만 늦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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