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설익은 스마트 배구?' 시간이 더 필요한 페퍼저축은행
새 감독은 새 선수단에 '스마트 배구'를 안착시킬 수 있을까.
지난 2시즌 동안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던 V-리그 여자부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이하 페퍼)는 새 시즌을 앞두고 통크게 변화를 모색했다. 공격에 큰 힘을 보탤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 주장 박정아(30·187cm), 파워풀한 외국인 주포 야스민 베다르트가니(27·196cm)가 새로 팀에 합류했다. 베테랑 리베로 오지영(35·170cm)은 팀에 남아 새 시즌에도 함께 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감독이 합류했다. 배구 전략가로 평가받는 미국 출신 조 트린지(36·미국) 감독이다. 조 트린지 감독은 부임 후 줄곧 '스마트 배구'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새 시즌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지난 주말 시즌 첫 경기에서 패배하며 1패를 안은 채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조 트린지 감독이 이끄는 페퍼는 지난 15일 경기도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1라운드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1 대 3(9-25 25-18 15-25 18-25)으로 패배했다.
호흡이 맞지 않아 보였던 1세트에 비해 2세트에서 분전하며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3·4세트에서 현대건설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페퍼는 21-22시즌 3승 28패, 22-23시즌 5승 31패로 지난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번 시즌 최하위 탈출을 위해 전력을 크게 보강해 시즌 초반부터 반전을 모색했지만 아쉬운 결과를 안고 출발하게 됐다.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조 트린지 감독은 이날 경기 전부터 서브와 리시브를 강조했다. 기본적인 배구 스킬에 중점을 두고, 이를 실전에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 그가 분석한 패인은 다름 아닌 서브와 리시브였다. 조 트린지 감독의 말대로 이날 페퍼는 총 68번의 서브를 시도해 성공은 4차례뿐이었다. 성공률은 5.9%. 범실을 16개나 기록했다. 상대였던 현대건설도 92번의 서브 시도 중 페퍼와 같이 4개 성공했지만, 범실이 9개밖에 되지 않았다.
공격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는 리시브도 흔들렸다. 리시브가 불안정하니 이어지는 공격이 매끄러울 수가 없었다. 이날 페퍼가 기록한 리시브 효율은 22.89%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4세트 동안 시도한 총 125차례 공격에서 성공 횟수는 고작 41번뿐이었다. 성공률이 32.8%밖에 되지 않았다.
분위기가 이어질 만하면 서브와 공격에서 범실이 나와버렸다. 이날 페퍼가 기록한 범실은 총 31회. 서브 범실 16개, 공격 범실 15개였다. 조 트린지 감독이 가장 강조했던 부분에서 연속해서 실수가 나와 경기를 내주고 만 것이다. 반면 현대건설의 범실은 15개로, 페퍼의 절반도 안 됐다.
사실상 잔 실수에서 경기 결과가 갈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조 트린지 감독도 이를 알고 있었다. "2세트에 잃어버린 흐름을 찾았지만 끝까지 이어 가질 못했다"는 것이다.
부임하기 전 미국 스포츠 과학 분석 학회 '슬론 스포츠 애널리틱스 컨퍼런스' 멤버로, 뛰어난 전략가라는 평가를 받아 온 조 트린지 감독. 그가 추구하는 '스마트 배구'는 어떤 것일까.
조 트린지 감독은 지난 7월 구단 미디어 데이에서 스마트 배구에 대해 "다른 팀에 부담이 되고, 우리 팀에겐 가장 편한 시스템"이라며 "코트에서 빠르게 공을 돌려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구단의 모토인 스마트한 배구가 내 목표와 일치하다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지난 12일 V-리그 미디어 데이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자신의 배구를 설명했다. 조 트린지 감독은 "데이터는 전체적인 구조에 대한 수치일 뿐이다. 사실 경기 중에는 그런 숫자가 말해주는 정보도 중요하지만 순간 느끼는 감정들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잘 조화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계에 입각해 선수 교체, 라인업의 변화가 있을 것이냐는 질문엔 "아무도 경기 중에 교체 없이 들어가는 게 가장 좋은 것이다. 경기가 잘 풀려가고 있다는 뜻"이라면서도 "그러나 경기 중엔 분명히 잘 풀리지 않는 순간이 발생하고, 그럼 당연히 교체를 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듣는 이에 따라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도 있지만, 조 트린지 감독은 특히 "세터들이 기존 공격 시스템과 많이 달라진 시스템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잘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다만 조 트린지 감독은 이날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트린지 감독은 "시즌이 시작될 때 완벽한 팀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아직 발전할 부분이 많이 남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잘 습득했지만 아직 좀 부족한 부분도 있어서, 조금 더 시간을 투자를 해야 될 것 같다"고 첨언했다.
선수들이 새로운 판에서 호흡을 맞추기엔 아직 짧은 시간이긴 했다. 에이스 박정아도 미디어 데이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제(11일) 처음으로 훈련해 봤다"고 말할 만큼, 전체 선수단이 다 같이 호흡을 시간 맞춘 시간은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흡을 맞춰나갈 선수단에도 변화가 컸다. 비시즌 기간에 페퍼는 새로운 팀으로 거듭난 수준으로 선수를 보강했다. 공격력 보강을 위해 박정아, 채선아(31·175cm) 등을 FA(자유계약선수)로 영입했고, 팀내 FA였던 리베로 오지영과 아웃사이드 히터 이한비(27·177cm)와 재계약했다.
또 아시아 쿼터로는 필리핀에서 건너온 엠제이 필립스(28·182cm)가, 신인 드래프트에선 박수빈(18·174cm), 이주현(18·163cm), 이채은(20·170cm) 등이 팀에 새로 합류했다.
뼈아픈 패배를 가진 채 시즌을 시작하긴 했지만 아직 첫 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새 감독, 새 선수단으로 새 시즌에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는 페퍼에 '스마트 배구'라는 새로운 배구가 정착해, 이번 시즌 V-리그 여자 배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할 점이다.
CBS노컷뉴스 이우섭 기자 woosubwaysandwiche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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