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관리사무소장 동의 없이 아파트에 걸린 현수막, 관리사무소장이 철거할 수 있나

허남이 기자 2023. 10. 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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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리모델링을 하려는 아파트가 많이 늘었다. 과거에는 아파트를 모두 부수고 새로 짓는 재건축이 대부분이었으나, 건설 폐기물 처리와 같은 환경적인 관점에서 리모델링을 권장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 같다. 아파트 입주민 입장에서 리모델링과 재건축 중 무엇이 유리한지 묻는다면, 답이 간단하지 않다. 아파트마다의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김택종 변호사/사진제공=법무법인 센트로

이렇다 보니, 하나의 아파트 내에서 리모델링파와 재건축파가 나뉘어 다투는 경우가 왕왕 있다. 리모델링이 진행 중인 아파트 단지에 재건축을 옹호하고 리모델링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반대로 재건축이 진행 중인 아파트에 재건축을 반대하고 리모델링을 옹호하는 현수막이 걸리는 것이다. 현수막이 우후죽순으로 걸리다 보니 입주민들에게 미관상 등의 이유로 피해를 끼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대파의 것이든, 우후죽순으로 걸린 것이든 눈에 거슬리는 현수막 때문에 입주민들은 관리사무소장에게 현수막을 철거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때 아파트 관리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있는 관리사무소장에게 무단으로 설치된 현수막을 철거해달라고 하면 당연히 철거될 것 같지만, 의외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공동주택관리법령에 따르면, 아파트에 현수막을 설치하려면 관리사무소장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관리사무소장에게 동의가 없이 무단으로 설치된 현수막을 철거할 권한도 있을까?

당연히 그럴 것도 같지만, 공동주택관리법령은 이에 대해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대개의 아파트 관리규약이 동의 없이 설치된 현수막에 대해 관리사무소장이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이 아파트 관리규약 제정의 표준이 되는 공동주택관리규약의 준칙을 시ㆍ도지사가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공동주택관리규약의 준칙에서 대부분 위 내용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서울특별시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과 경기도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의 경우가 그러한데, 관리사무소장은 위반자에 대한 조치로서 '원상복구 등의 시정을 요구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조치'에 무단으로 설치된 현수막 철거가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사무소장들이 무단으로 설치된 현수막을 방치하는 이유는 일단 입주민들의 다툼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손괴죄로 처벌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손괴죄를 우려해 무단 설치 현수막을 방치하는 것이 몇몇 아파트관리회사들의 방침이기도 하다.

현수막을 단순히 철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철거 후 버리거나 현수막 자체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실제로 손괴죄 처벌의 대상이 된다. 어찌됐든 현수막 자체는 타인 소유의 물건이기 때문에 이를 훼손하는 것은 손괴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리사무소장은 손괴죄를 피하기 위해 무단으로 설치된 현수막일지라도 얌전히 철거만 하여 잘 보관해두어야 한다. 노동쟁의에 따라 설치된 현수막을 회사측에서 철거하여 손괴죄가 문제된 많은 경우에, 현수막 자체가 훼손된 경우에는 손괴죄로 처벌이 되었으나, 현수막 철거에 그친 사안에서는 손괴죄가 대부분 부정되었다.

그런데 최근 하급심 판결례 중에서, 관리사무소장이 무단으로 게시된 현수막을 단순히 철거만 한 것을 손괴죄로 처벌하는, 다소 의외의 경우가 있었다. 주된 이유는 게시를 목적으로 하는 현수막을 철거하는 것은 그 자체로 현수막의 효능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손괴에 해당하고, 공동주택관리법령에 관리사무소장이 무단으로 설치된 현수막을 철거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파트 관리규약만을 근거로는 무단으로 설치된 현수막을 철거할 수 없다는 듯한 취지의 판시도 하면서, 원칙적으로 소송과 같이 법이 정한 절차를 통해 구제를 받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와 같은 판시를 있는 그대로 따르게 된다면, 옆집 사람이 우리 집에 말도 없이 현수막을 걸어두고 자진철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송과 같은 법이 정한 절차를 거쳐 법원의 집행을 통하지 않고는 그 현수막을 철거할 수 없다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위 하급심 판결례에서, 주거에 대한 관리 권한이 있더라도, 현수막을 철거하여 현수막의 게시 효능을 침해하는 것은 손괴죄가 된다고 판시하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파트 관리규약이 동의 없이 설치된 현수막에 관해 서울특별시나 경기도의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면, 관리사무소장이 이를 철거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관리에 관하여 권한이 있는 자라면 아파트 관리를 방해하는 행위를 배제하는 권한도 갖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파트 관리규약에 '필요한 조치'라는 규정이 명시적이지 않아, 별도로 입주자대표회의가 동의 없이 설치된 현수막을 관리사무소장이 철거할 수 있도록 명시적인 규정을 제정하는 경우도 있다.

결론적으로, 아파트 관리규약의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동의 없이 설치된 현수막을 철거할 수 있는지 일괄적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으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현수막의 내용이 허위라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재건축조합 또는 리모델링조합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불법현수막에 해당하여 철거의 대상이 된다. 관리사무소장이 이마저도 방치한다면 아파트관리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므로 그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글 법무법인 센트로 김택종 변호사

허남이 기자 nyhe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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