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공백 해소" "미용의사만 늘 것"…의대 정원 확대 시각차

정심교 기자, 박정렬 기자 2023. 10. 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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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당 의사 수, OECD 평균보다 1명 적어
하지만 현직 의사 수는 급증…과잉 우려까지
심장·폐 응급수술 담당할 의사 부족은 '심각'
해외는 흉부외과 등 '고된 과' 의사 보수 5~6배

정부가 필수의료 붕괴 상황을 막기 위해 2025학년도 대입 의대 입학 정원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등 의료계의 반발이 예고된다. 의대 정원을 늘려 필수의료 인력의 구멍을 막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달리, 의료계는 정원을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란 입장이다.

16일 대통령실과 정부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는 조만간 의대 정원 확대 방침 등 필수 의료 인력 확보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따라 최소한 1년 1000명 이상의 '천 단위' 정원 확대 방안이 유력시된다.

정부의 공식적인 의대 정원 확대안이 발표되기 전이지만, 대규모 정원 확대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자 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발표 예정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개최했다고 16일 밝혔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가 임박했다는 보도가 '가짜 뉴스'가 아닌 정권 차원의 결정이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며 "의대 정원에 대한 논의는 정부가 의협과 합의한 수순·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결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사 수 부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건 통계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상 의사(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평균(3.7명)보다 적다. 이대로라면 2035년엔 약 2만7000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50년엔 약 2만2000명(한국개발연구원)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하지만 의협 등 의료계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지 않아도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의사 면허 소지자 중 현재 의사로 근무하는 사람) 수는 오히려 점차 증가할 것이란 점을 지적한다. 이필수 의협회장은 "현재 우리나라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OECD 평균보다 더 빠른 증가율을 보이고, 급격한 고령화와 저출산 사회로 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20년 후엔 의사 수가 남아돌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0∼2020년 국내 활동의사의 연평균 증가율은 2.84%로 OECD 평균(2.19%)보다 높고,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 연평균 증가율도 2.4%로 OECD 평균(1.7%)보다 1.41배 높다. 또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아 지난 6월 9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전체 활동의사 수는 2013년 9만710명에서 2022년11만 2321명으로 총 2만1611명 늘었다. 지역별로 따져봐도 지난 10년 동안(2013~2022년) 인구 1000명 당 활동의사 수는 '감소한 지역 없이' 전국적으로 증가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현재의 의대 정원을 유지하더라도 의사 배출과 인구구조 변화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 수치를 빠르게 따라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40년 우리나라는 4.6명(1000명당 의사 수), OECD 평균 5.09명으로 격차가 0.49명 줄고, 2047년에는 우리나라 5.87명, OECD 평균 5.82명으로 OECD 평균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25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증원하면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OECD 평균을 따라잡을 것이란 해석도 더해진다.

흉부외과 미달 행진 속 10년 내 현직의 37% 은퇴
문제는 기피 과의 기피 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는 것. 지난 10년간 폐암, 심장 수술은 각각 33.8%, 70% 정도 늘었고 인구 고령화로 환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지만 심장혈관흉부외과 의사는 향후 10년 안에 현직의 37%, 15년 안에 60%가 은퇴해 모자라게 된다. 이를 감안하면 적정 인원은 지금보다 한 해 15~20명은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기피 과'의 정원이 채워질까?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의대 정원 늘리는 건 미래의 문제, 필수의료 인력난은 당장 현재의 문제"라며 "현재의 문제엔 지금 해결할 대책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2025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증원해 기피 과의 정원까지 채워진다 가정해도 의사를 배출하기까지는 6년 후인 2031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른바 '기피 과'인 심장혈관흉부외과·산부인과·외과 등도 의대 정원 증가 방안에 대한 반응이 싸늘하다. 그 예로 수술 시간에 따른 수가가 차등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의석(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은 "똑같은 질환에 대해 수술하더라도 환자 상태에 따라 5시간이 걸리기도, 20시간이 걸리기도 하는데 수술비가 같다"고 지적했다. 수술 시간이 길수록 수술장 점유 시간이 늘어나 '회전율'이 떨어지는데 수술비가 같아 병원도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것.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의대생들이 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심혈관조영실에서 보건복지부 필수의료 의대생 실습지원 사업 관련 심혈관조형실 시술 실습 참관을 하고 있다. 2023.08.03.

김승진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의사회장은 "의대 정원을 늘린다면 아마도 미용성형외과나 미용피부과 의사만 더 증가할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그는 200병상 이상의 병원에 대해 '흉부외과 전문의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규정을 만들면 인력 공백을 메우는 데 도움 될 것이라 제언했다. 김승진 회장은 "이 정도 규모의 병원은 흉부외과 관련 다양한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질환 특성상 3분 내로 조치하지 못하면 사망하거나 영구적 뇌 손상이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부인과 기피 현상은 저출산 현상과도 맞물렸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 2월 특별·광역시 등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의 분만 수가를 최대 300%까지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출생아 수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을 고려할 때, 최소한 분만비 400%는 인상해야 분만실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10년 전엔 지금보다 의사 수가 3만 명이 적었지만, 필수 의료의 혼란이 없었던 건 의사 수가 문제가 아니라는 방증"이라며 "의사 수가 늘면 의료비가 증가하고, 병원이 늘어 건강보험 청구액이 많아지고 의료계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미국 등 해외 선진국의 경우 흉부외과·외과 등은 기피 과가 아니다. 이들 과처럼 수술이 많아 '고되고 힘든 진료과'의 경우 그렇지 않은 진료과보다 의사 보수가 5~6배 더 많다. 박은철 교수는 "우리나라도 기피 과를 포함, 필수의료에 한해 수가를 더 올리면 수도권 병원의 의사 공백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그런데도 지방 병원의 의사 수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지방정부에서 인건비 등 재정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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