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석의 들춰보기-사라진 ‘국민’과 핵개인의 시대[문화칼럼]
“무빙 몰아서 볼거야”
친구가 연휴 때 뭐할 거냐고 물어보길래 위와 같이 답변했다. 질문을 한 친구는 오랜만에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났다.
무빙은 디즈니 플러스에 공개된 드라마다.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차태현, 류승범, 양동근 등 각자 한 명씩 영화 주인공으로도 나올 수 있는 화려한 배우진이 등장하고 이들은 각자의 초능력이 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비행 능력, 아무리 맞아도 신체가 무한 재생되는 능력, 전기를 사용하는 능력, 오감이 누구보다 발달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펼치는 드라마로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그리고 유독 이 드라마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웹툰 원작자인 강풀 작가 특유의 감성과 서로가 조금씩이라도 돕고 연대하려는 모습이 물씬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올해 최고의 드라마는 여전히 <더 글로리>라고 생각하지만 그 드라마의 캐릭터를 애정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배우 박성훈이 잘생겼어도 그가 연기한 전재준 캐릭터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무빙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무빙은 배우가 아닌 극중 캐릭터에게도 마음껏 애정을 표할 수 있다. 디즈니 플러스는 무빙 덕분에 9월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전월 대비 125만명이나 증가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유난히 길었던 이번 추석 연휴, 중요한 건 집에서 나 혼자 무빙을 보았다는 것이다.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명절 연휴 아침부터 연예인들이 나오는 체육대회나 예능 프로그램 또는 명절 특선 영화를 다 함께 둘러앉아서 보았다. 심지어 특선 영화 중에는 최근 개봉했다가 영화관에서 내려간지 얼마되지 않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다들 ‘공짜’로 한번 더 본다는 느낌도 받았다. 신문을 펼쳐 명절 TV 편성표를 오려두고 기억했다가 시간에 맞춰 TV를 틀었던 경험이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하지만 이번 추석에 우리 가족은 차례를 마치고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연휴를 보냈다. 어머니는 지나간 드라마를 재방송으로 보고 있었고 아버지는 안방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고 있었다. 동생은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명절 특선 영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면, 이번 추석 명절에 방송된 특선 영화들이 소개 되어 있다. 여전히 명절 특선 영화를 지상파에서 만날 수는 있었지만 그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취향의 세분화이자, 매체의 다양화가 가져온 결과다.
과거에는 흔히 말하는 ‘국민’의 시대였다. 특정 가수가 이른바 국민 가수로 활동했다. 국민 가수들은 어김없이 명절에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나와 추석 특집 가요 프로그램에서 즐거운 한가위를 보내라며 인사를 했고 온가족이 그 ‘한 가지’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TV 앞에 둘러 앉아 있었다. 국민 배우가 나온 영화나 국민 MC가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 고작 4명의 가족도 서로 다른 컨텐츠를 소비하며 쪼개어졌다. 모든 국민이 딱 한명을 연호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빅 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박사는 그의 신간을 통해 이러한 형태의 시대를 ‘핵개인’의 시대라 정의했다. 3대가 걸쳐서 살아가는 대가족이 일반적이었던 시대가 어느 순간 분화되어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핵의 상태로 구성되었다하여 핵가족(nuclear family)이라 불렀듯이 이제는 그 개념이 개인까지 내려와 핵개인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온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리모컨 하나를 두고 채널 선택 전쟁을 벌이는 풍경은 사라졌지만 과거 단일한 취향만을 강요받거나 보고 싶지 않은 프로그램을 억지로 보는 인내의 시간은 이젠 없다. 취향 선택의 자유로움은 곧 취향의 존중 시대다. 명절도 이젠 예외가 없다.
▲오창석 ▲작가 ▲대중문화칼럼니스트
정리: 이선명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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