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유죄 임옥상의 전태일 동상 ‘교체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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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동상 존치·교체 숙의위원회(숙의위원회)가 성추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민중미술가 임옥상씨가 만든 전태일 동상을 교체하라고 권고했다.
전태일재단은 12일 숙의위원회에서 '현재 전태일 동상은 전태일 정신을 담은 새로운 상징물로 교체하라'는 권고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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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동상 존치·교체 숙의위원회(숙의위원회)가 성추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민중미술가 임옥상씨가 만든 전태일 동상을 교체하라고 권고했다.
전태일재단은 12일 숙의위원회에서 ‘현재 전태일 동상은 전태일 정신을 담은 새로운 상징물로 교체하라’는 권고문을 받았다고 16일 밝혔다. 전태일재단은 이사회를 열고 권고문에 대한 후속 조처를 논의할 계획인데, 사실상 숙의위원회 권고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전태일재단은 지난 8월 임씨의 유죄 판결이 나온 뒤, 전태일 동상의 존치·교체를 논의하기 위해 숙의위원회를 구성했다. 숙의위원회에는 노동·여성·비정규·법조·종교계 인사 11명이 참여했고, 4차례 회의를 열었다.
숙의위원회는 권고문에서 “현재의 동상을 바라보면서 예전처럼 차별에 맞서 투쟁을 다짐할 수는 없게 되었다”고 교체를 권고한 배경을 설명했다. 또 “작가의 성추행은 약자에 대한,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창작 노동자에 대한 폭력이자 착취”라며 “약자를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을 바친 전태일 열사의 정신에 반하는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라고도 했다.
교체될 상징물과 현재 동상의 처리에 대해 숙의위원회는 “새로운 상징물의 건립은 노동시민사회가 폭넓게 의견을 모아서 추진하기를 권고한다”며 “현 동상 또한 역사이므로 새로운 상징물이 건립될 때까지 현재의 장소에 유지하며 교체한 이후 전태일재단이 보관하기를 권고한다”고 했다.
전태일 동상은 전태일 분신 35주기인 2005년 서울 중구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 설치됐다. 평화시장은 1970년 11월13일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 장소다. 건립을 위한 국민 모금에 4억원이 모였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전태일 동상 교체를 권고한 ‘전태일 동상 존치·교체 숙의 위원회’의 권고문 전문.
전태일동상 존치·교체 숙의위원회 권고문
1.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는 동대문 평화시장 앞길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만 스물두 살 젊은 육신을 불살랐습니다. 아동노동이 용인되던 시대에 어린 여성 노동자의 인권을 위하여 고군분투하다 산화한 아름다운 전태일 열사의 뜻은 결코 지울 수 없고 53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정신입니다.
전태일 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아는 노동자·시민들은 2005년 온 마음과 정성을 모아서 전태일다리에 동상을 건립했습니다. 그로부터 18년 동안 동상은 전태일 정신을 상징하며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학생들은 평화시장 분신 현장을 둘러보고 동상 앞에서 전태일 정신과 노동의 의미를 학습했습니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동상 앞에서 전태일 정신을 되새기며 불평등과 양극화, 차별과 억압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풀어갈 것을 다짐하며 결의하고는 했습니다.
2. 그런데 소중한 역사의 상징이었던 전태일 동상은 상징성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전태일 동상을 제작한 작가가 최근 성추행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범행으로 인해 그가 제작한 전태일 동상마저도 위상이 실추됐습니다. 이에 동상의 소유 및 관리 주체인 전태일재단은 “충격과 실망을 느끼고, 심각성을 인식”했습니다. 전태일재단은 고문단, 운영위, 이사회 등의 논의를 거쳐서 “노동계를 포함해서 문화, 여성, 청년, 등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전태일동상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전태일재단의 제안을 받은 노동·여성·인권·청년·비정규·법조·종교계 활동가들은 ‘전태일동상 존치·교체 숙의위원회’(이하 숙의위원회)로 변경·구성했고, 9월 1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다양한 의견을 놓고 토론하고 숙고하는 과정을 가졌습니다.
3. 먼저 숙의위원회는 18년 전 전태일동상의 건립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동상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 모든 과정은 감동이었습니다. 노동자·시민들의 의견과 정성을 모아내고, 전태일다리에 동상을 건립하는 과정에 책임을 지셨던 분들의 ‘동상 존치 입장’도 경청했습니다. 아울러 현재의 동상 철거를 반대하시는 시민들의 의견도 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동상을 아끼는 마음과 정성 그리고 염려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숙의위원들은 ‘성범죄를 저지른 작가가 제작한 현재의 동상만이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상징할 수 있는가? 다른 동상으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4. 작가의 성추행은 약자에 대한,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위치한 창작 노동자에 대한 폭력이자 착취였습니다. 이는 약자를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을 바친 전태일 열사의 정신에 반하는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입니다.
전태일 열사는 ‘시다’로 불리던 어린 여성 노동자의 인격과 정당한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삶을 바쳤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마저 내놓았습니다. 53년이 지난 지금도 전태일의 이름을 부르고 정신을 끊임없이 되살리려는 것은 약자의 지위에 있는 노동자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이신 이소선 어머니 또한 약자들을 보듬고 일으켜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전태일 정신은 약자에 대한 공감과 살핌, 돌봄, 그리고 존중에 있습니다. 숙의위원회는 결정 기준을 전태일 정신에 두기로 판단했습니다. 범죄의 경중이나 작품성에 대해 논하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고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현 시대정신입니다. 무엇보다도 당대의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사회적 합의의 도출이 우리 모두의 의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5. 전태일동상은 이전까지는 연대와 해방을 외치는 단결의 장소였습니다. 노동인권 교육의 현장이었습니다. 노동자 차별에 맞서 투쟁을 다짐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의미를 크게 훼손당했습니다. 현재의 동상을 바라보면서 예전처럼 차별에 맞서 투쟁을 다짐할 수는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동상을 찾는 사람들은 약자의 위치에 있던 여성 노동자에게 고통을 주었던 작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아가 불평등한 고용관계, 플랫폼 노동의 일상화, 성별·나이·국적 등으로 인한 차별에 맞서 연대를 다짐하기에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이에 숙의위원들은 “인간”과 “노동”의 존엄을 일깨워준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서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6. 숙의위원회는 전태일재단과 노동시민사회에 다음과 같이 권고드립니다.
● 현재의 동상은 전태일 정신을 상징하는 새로운 상징물로 교체하기를 권고드립니다.
● 새로운 상징물의 건립은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의 사랑과 연대의 정신을 이어가는 노동시민사회가 폭넓게 의견을 모아서 추진하기를 권고드립니다.
● 현 동상 또한 역사이므로 새로운 상징물이 건립될 때까지 현재의 장소에 유지하며 교체한 이후 전태일재단이 보관하기를 권고드립니다.
7. 이번 사건을 계기로 노동시민사회는 전태일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갈등이 있더라도 문제를 지혜롭게 논의하여 의견을 모으는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맞이할 세상에 전태일 정신을 어떻게 펼쳐나갈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 과정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노동시민사회가 숙의하고 합의해 나가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2023년 10월 12일
전태일동상 존치·교체 숙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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