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토그램’ ‘이모티콘’을 선사시대에도 썼다고요?
설명 팻말 내용 친절했지만
순화어로 쉬운 표현 찾아야
긴글주의…소통방식 다양해
정보그림으로 의사표현하기도
지난달 26일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하 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은 고대 문자부터 미래의 문자까지 문자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곳으로, 프랑스 샹폴리옹 세계문자박물관, 중국 문자박물관에 이은 세계 3번째 문자 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상설 전시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을 비롯해 어린이 전시 ‘깨비와 함께 떠나는 문자 여행’, 특별 전시 ‘긴글주의-문자의 미래는?’, 야외 전시 ‘공명’ 등 다양한 전시가 마련돼 있다. 최근에 문을 연 박물관답게 곳곳에 놓인 설명 팻말 내용이 친절했다.
이날 현장체험에 나선 인천 서구의 한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체험실에 들어가봤다. 어린이체험실답게 그림이 알록달록, 글씨가 큼직큼직해 보기 편했다. 아이들은 다양한 문자를 놀이로 경험하면서 ‘문자나라 놀이터’ ‘알록달록 문자정글’ ‘춤추며 말해요’ ‘돌려라 마야’ 등 체험실에 입장하면서부터 펼쳐지는 문자 여행의 매력에 행복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문자의 생성 과정을 쉽게 표현해둔 점이 좋았다. 박물관 공식 블로그에선 어린이체험실을 ‘아바타를 직접 만들어보고 아바타와 함께 문자 여행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곳’으로 소개했다. 아바타는 가상현실에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캐릭터로 본래 산스크리트어로 인도 신화에서 인간이나 동물 형상을 한 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같은 이름의 영화도 개봉돼 ‘아바타’라는 용어가 익숙하지만 우리말로는 ‘분신’ ‘가상인물’ ‘화신’이라고 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바뀌는 소통 방식
먼저 체험실 한편 피라미드 속으로 들어가면 이집트 상형문자를 찾아 탐험하는 게임이 마련돼 있다. 이곳엔 아이들이 직접 손을 대면서 이집트·수메르·중국 상형문자 등 다양한 문자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터치 ‘인터랙티브 월’(Interactive Wall)이 있다.
여기서 인터랙티브 월은 사용자 동작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하나로 주로 벽면(Wall)에 구현한다. 쉬운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미디어 월은 ‘벽면 전광판’이나 ‘벽면 영상’으로, 인터랙티브는 ‘쌍방향’ ‘양방향’ ‘대화형’으로 바꿀 수 있으므로 인터랙티브 월은 ‘양방향 벽면 영상’이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체험실 곳곳에 놓인 도구를 이리저리 만지며 눈을 반짝이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싱그러웠다.
서은아 교수(상명대 계당교양교육원)는 “‘인터랙티브 월’은 아직 순화어가 없지만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반응하는 매체인 점을 고려하면 ‘대화형 벽면 영상’이나 ‘상호작용 벽면 영상’으로 바꿔 쓰는 것이 좋겠다”며 “여러 개의 순화어를 제시하는 까닭은 문맥에 어울리는 표현을 선택해 쓸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더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찾아서 쓰면 된다”고 밝혔다.
어린이체험실을 나오니 바로 옆으로 특별 전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긴글주의-문자의 미래는?’을 주제로 미래의 문자에 관해 전시 중이다. 여기에서 ‘긴글주의’는 주로 인터넷 게시판에서 사용하는 말로, 게시글이 길어서 읽기 힘들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의미로 쓰인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소통 방식도 바뀐다. 최근에는 이미지, 영상 등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긴 글은 읽기 힘들고 지루하다는 사람이 많다. 박물관은 개관 기념 첫 특별전으로 이러한 소통 방식의 변화와 문자의 역할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를 마련했다.
전시회를 둘러보고 나면 우리가 요즘 문자를 사용하는 방식이 선사시대와 비슷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문자가 없었던 시절 옛 사람들은 바위나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려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오늘날 선사시대와 마찬가지로 그림도 문자처럼 쉽게 다룰 수 있게 됐다. 그림은 어떻게 문자를 대신해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을까? 이번 특별전에서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픽토그램’과 ‘이모티콘’ 같은 그림이 문자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픽토그램(Pictogram)은 그림을 뜻하는 ‘픽처’(Picture)와 전보를 뜻하는 ‘텔레그램’(Telegram)의 합성어로 우리말로 ‘그림문자’라고 불린다. 픽토그램은 글 대신 그림으로 의미를 표현하기 때문에 글을 못 읽거나 언어가 달라도 쉽게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비상구나 금연 표시, 교통표지판 등이 대표적인 예다. 교통표지판의 빨간색은 ‘금지’, 파란색은 ‘지시’, 노란색은 ‘경고’란 뜻으로 그림과 함께 한눈에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감정을 표현할 때 쓰는 ‘그림말’
휴대전화 문자서비스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감정을 간단하게 표현할 때 쓰는 이모티콘(Emoticon)은 그림을 말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말로 ‘그림말’로 불린다. 픽토그램이 공적인 의사소통을 돕는다면 이모티콘은 사적인 의사소통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신나는 표정, 미안한 표정, 익살스러운 동작 등 이모티콘은 글로 전하기 힘든 느낌을 전해줄 수 있다.
또한 이번 특별전시를 통해 갈수록 이미지와 영상을 다루기 쉬워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포그래픽, 카드뉴스 등 보고 듣는 자료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인포그래픽은 ‘디자인 요소를 활용하여 정보를 시각적인 이미지로 전달하는 그래픽’으로 ‘정보그림’이라고 풀어쓰면 좋겠다. 2020년 한글문화연대가 실시한 ‘외국어의 국민 이해도 조사’에 따르면 인포그래픽은 국민 평균 이해도가 22%에 불과했다. 7살 아이와 박물관을 찾은 김선형씨는 “정보그림은 그림이라 보기도 쉽고 내용이 한눈에 정리되는 느낌”이라며 “큰 사진과 글씨, 잘 정리된 요점으로만 이뤄진 카드뉴스 형식도 정보를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시대가 변하면서 소통의 수단도 바뀌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문자가 점점 사라질 수도 있고 앞으로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한번쯤 박물관 특별전시를 찾아 여러분의 생각은 어느 쪽에 가까운지 가늠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글·사진 나윤정 객원기자
감수: 서은아 상명대 계당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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