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이웃을 '따라 배우고 싶은 사람'으로 대하자
<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을 읽으면 신중한 언어생활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아울러 세상에 왜 이렇게 나쁜 사람이 많은지 화가 나고, 그런 사람에게 속수무책 당하는 사람들이 답답하고, 자신의 이득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훈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만 할 뿐 실천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따라 하기 힘들지만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김예원 변호사는 ‘자기 스스로 권리 옹호가 불가능한 피해자’들을 10년 넘게 무료로 대리해왔다. 그는 의료사고로 한쪽 눈이 없이 자랐다. 부모님의 응원으로 기죽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변호사가 됐고, 피해자를 더 잘 돕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성폭력전문상담원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누구보다 바쁘게 법정을 오가지만 무료 변론이다 보니 강의나 집필, 연구용역, 자문을 통해 수입을 보전한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분주하지만 피해를 당하고도 대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바로 출동해 시위도 하고, 철저한 준비로 재판에 임한다. 세 아이의 엄마인 김예원 변호사는 갓난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아이를 안은 채 법정에서 변호하기도 했다.
세심한 언어 사용 필요
<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에는 여러 유형의 사람이 등장한다. 아직 사회를 잘 모르는 청소년,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 지체장애인,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 등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을 속이고 괴롭히고 등쳐먹는 악한 인간들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김예원 변호사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보호해야 할 사람과 멀리해야 할 악한 사람을 구분해 보여준다. 지적장애가 있거나 사회를 잘 모르는 청소년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대응을 못 해 어려움에 처하곤 한다. 성폭행을 하고 돈을 빼앗아 달아난 남자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갖는 지적장애 여성도 있을 정도다. 지적장애인을 수십 년간 부려먹고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악덕 업주의 사례를 접하면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상식과 다른 통계를 제시해 올바른 판단을 돕기도 한다. 아동학대 가운데 친부에 의해 발생한 사례가 42%, 친모는 30%, 계부와 계모는 각각 2% 이하라고 한다. 비장애인이 100건의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정신적 장애인은 1건을 일으키는데, 정신적 장애인에 의한 범죄가 발생하면 가혹한 평이 돌아오는 게 현실이다.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는 이유 중 하나가 우리 사회의 비전문성이다. 일례로 가해자의 말만 듣고 제대로 확인하지 않거나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는 일이 많다고 한다.
김예원 변호사는 세심한 언어 사용을 당부한다. 이 책의 부제인 ‘무심히 저지른 폭력에 대하여’처럼, 생각 없이 말을 던져놓고 “상처가 될 줄 몰랐다”라고 한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자.
한 구청장이 “결혼을 늦게까지 못한 특급 장애인이었다”라고 말해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결정장애’ ‘선택장애’ ‘성격장애’ 같은 말을 생각 없이 쓰기도 한다. 칭찬한답시고 “정상인보다 잘한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정상인이 아닌 비장애인이라고 해야 하는데 말이다.
장애인이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에 대해 김예원 변호사는 약자가 아니라 소수자이며,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 아닌 ‘감탄하고 배우고 싶은’ 한 사람으로 대하라고 말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자
늘 분주한 김예원 변호사에게 “너같이 공짜로 퍼주는 변호사들 때문에 변호사의 법률 서비스가 싼값에 매도되는 것”이라는 비난이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앞으로도 ‘목소리 크고 할 말을 참지 않는 성격’대로 앞만 보고 달릴 예정이다.
중학교 때 짝꿍의 준비물을 빼앗는 일진에게 “야, 얘한테 준비물 맡겨놨냐?”라고 소리쳤던 김예원 변호사는 어른이 된 지금 ‘아닌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를 피해자의 옆에서 대신 내줄 때, 같은 곳을 함께 째려봐줄 때, 사건을 마주한 한 사람이 조금씩 본래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은 세상에 대한 판단력을 길러주는 동시에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사항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혹시 내 이웃의 권리를 짓밟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점검하면서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은 만큼 그들을 존중하며 살아갈 각오를 다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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