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성한용 칼럼]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종교인에게는 신념 윤리가 있다. 정치인에게는 책임 윤리가 있다. 정치인은 책임지는 사람이다.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은 형용 모순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9일 뒤인 2022년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 이상한 논리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을 유임시켰다. 지금도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상민 장관이다. 대한민국 경찰청장은 윤희근 청장이다. 그들의 얼굴을 계속 봐야 하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어떤 심정일까?
그랬던 윤석열 대통령이 또다시 책임 논란에 휩싸였다. 10월11일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졌기 때문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5월18일 대법원 확정판결로 김태우 전 구청장이 구청장직을 잃는 바람에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8·15 광복절 특사로 김태우 전 구청장을 사면 복권시켰다. 사면만 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복권까지 시켜서 보궐선거 출마 자격을 줬다.
국민의힘에서 보궐선거에 후보를 낼 것인지 말 것인지 논쟁이 벌어졌다.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불가론에 명분이 더 있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직후보자 추천 규정 39조(재·보궐선거 특례) 3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인하여 재·보궐선거가 발생한 경우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최고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당해 선거구의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김기현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뜻을 관철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짐짓 모르는 척했다. 선거 기간 내내 대통령실은 “당이 치르는 선거”라고 거리를 뒀다. 선거에서 진 다음날 “정부는 어떠한 선거 결과든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틀 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참모들에게 말했다. 누가 봐도 ‘변화’보다는 ‘차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사고는 자신이 쳐놓고 수습은 참모들과 당에 슬그머니 떠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는 국민의힘에서 분출하던 책임 공방에 제동을 걸었다. 김기현 대표 사퇴론은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이철규 사무총장을 비롯한 임명직 당직자들만 억울하게 물러났다.
일요일인 15일 저녁 국민의힘 의원총회가 열렸다. 발언자 중에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의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 김기현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소수 의견이었다. 그것도 에둘러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의원총회의 결론은 “김기현 대표를 중심으로 변화와 쇄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기로 한다”는 것이었다. 김기현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세운 사람이다. 김기현 대표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쇄신하겠다는 것은 변화하지 않고 쇄신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의원총회 도중에 김웅 의원이 밖으로 나와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강서구청장 선거를 단결 안 해서 졌나? 단결을 너무 잘해서 진 것 같은데? 그런데 또 단결하자고 하면 또 지겠다는 뜻이겠지. 국민은 바꾸라고 하는데 바꾸지는 않고 단결만 하자, 우리는 다 잘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의총은 뭐 하려 하나? 우린 잘하고 있는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명확하다. 평소 윤석열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언론들조차 선거 패배의 원인을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정권심판론으로 짚었다. ‘일방통행’ ‘독단’이란 지적을 받는 국정운영 기조 전반을 재점검하고 과감한 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석열 대통령 표현대로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한다면,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의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정치인이 책임지는 방법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임기 때문에 사퇴할 수 없다. 대통령 대신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대기 비서실장을 교체해야 한다. 대통령의 대리인들이기 때문이다.
그게 선거에서 패배한 대통령이 국민에게 취해야 하는 최소한의 도리다. 민심을 수용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또 패배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제 좀 겸손해질 때도 됐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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