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자위권 수준 넘었다"…美 만나 비판한 이집트·사우디

김종훈 기자 2023. 10. 1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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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전쟁] 워싱턴포스트 "블링컨, 아랍 강자들의 강력한 저항 부딪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이집트 카이로를 떠나기 전 언론을 상대로 발언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주요 아랍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수반과 연달아 회담했으나 여전히 냉랭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WP는 블링컨 장관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연달아 회담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블링컨 장관이 아랍계 강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고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이 하루 만에 두 국가 정상과 회담한 것은 빈살만 왕세자의 '늑장' 때문. 당초 회담은 전날 저녁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빈살만 왕세자가 나타나지 않아 다음날 아침 이뤄졌다. 블링컨 장관은 몇 시간이나 빈살만 왕세자를 기다렸다고 한다.

아침 회담에서 빈살만 왕세자는 이스라엘을 에둘러 비판했다고 한다. 그는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군사작전을 즉시 중지해야 한다", "가자 지구 봉쇄를 즉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WP는 빈살만 왕세자가 언급한 군사작전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을 뜻하는 것이며, 이스라엘의 봉쇄 조치로 가자 지구가 식수, 식량, 전력 부족에 빠졌음을 비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미국을 향해서도 부정적 메시지를 냈다. 그는 "긴장이 고조되는 현 상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며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을 비판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따르는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이다. 지난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빈살만 왕세자는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국교 정상화 작업도 난항을 겪게 됐다. 다만 사우디가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하마스를 직접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WP는 "사우디에게 하마스는 중동 지역 통합을 방해하는 골칫덩이"라며 "이스라엘 국교 정상화에 관심을 갖던 빈살만 왕세자도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WP는 "그럼에도 사우디는 외교부를 통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을 공개 비난했다"며 "사우디에서 하마스 비판 성명을 끌어내려던 미국의 노력은 지금으로서는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고 평했다.

가자 지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의 분위기는 더 경직돼 있었다고 WP는 전했다. 이집트는 구호단체들과 협력해 가자 지구에 원조물자를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이 원조물자 수송차량까지 가리지 않고 폭격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

엘 시시 대통령은 블링컨 장관과 회담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은 자위권 행사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내 230만 인구를 상대로 연좌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40년간 해결책도 없이 팔레스타인에 쌓여온 증오의 결과"라고 했다.

다만 엘 시시 대통령도 중동 전쟁으로의 확전은 막아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그는 "사태가 악화돼 중동 지역 전체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해야 한다"며 "갈등이 번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했다.

회담 후 블링컨 장관은 이집트가 라파 지역을 통해 가자 지구 내 미국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국경을 임시 개방하기로 했다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많은 아이디어를 들을 수 있었다"고 취재진에 밝혔다.

당분간 아랍국가들과 미국 사이에 계속 냉랭한 기류가 흐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슬람 양대 종파의 종주국이자 아랍국가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란과 사우디 모두 팔레스타인의 편에 섰기 때문. 미국도 확전되지 않는 선에서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을 계속 지지하겠다는 분위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5일 미국 CBS 인터뷰에서 하마스에 대해 "완전히 제거돼야 한다"면서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 등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 방문을 고려하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보도했다.

한편 WP에 따르면 미국 외교당국은 일선 외교관들에게 "긴장 완화", "휴전", "폭력, 유혈사태 종식", "안정 회복" 등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마스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미 정부의 공식 입장과 상충된다는 이유에서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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