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안치소 모자라 아이스크림 트럭에 시신이 가득 …‘생지옥’ 된 가자지구

노정연 기자 2023. 10. 1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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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 9일째, 양측 사망자 4000명 넘어
시신 둘 곳 없어 냉동트럭과 텐트에 보관
지상군 투입 임박했지만 환자, 노약자들 떠나지 못해
16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후 팔레스타인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AP

물도, 전기도, 의약품도 없는 가자지구에서 지금 가장 부족한 것 중 하나는 시신을 안치할 공간이다.

가자지구 중부도시 데이르 알발라흐에 위치한 알아크사 순교자 병원은 시신 안치소가 가득 차 일부 시신을 아이스크림 냉동 트럭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5일(현지시간)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그려진 아이스크림 냉동트럭은 이제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파괴적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임시 영안실이 됐다”고 전했다. 알아크사 병원의 의사 야세르 알리는 “넘쳐나는 시신을 보관하기 위해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냉동고를 들여왔지만 이마저도 부족해 텐트에 수십구의 시신을 둔 상태”라고 말했다.

북부 가자시티에서 가장 큰 병원인 시파병원도 시신을 보관할 곳이 없어 100여구의 시신을 장례 절차 없이 집단 매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9일째를 맞이한 이날 양측의 사망자는 4000명을 넘어섰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저녁까지 누적 사망자는 2670명, 부상자는 9600명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집계한 사망자는 1500여명으로 양측의 사망자를 합하면 4100여명에 달한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대량 학살로 시작된 전쟁이지만, 이스라엘의 잔인한 보복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는 이미 이스라엘 사망자 숫자를 훌쩍 뛰어넘었다.

현재 상황이 계속될 경우 가자지구의 사망자는 앞으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경없는 의사회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지난 9일부터 가자지구의 전기와 식수, 식량, 가스 공급을 차단하면서 가자지구 주민 다수가 현재 심각한 탈수 증세를 겪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1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 인근 시자이야 지역에서 파괴된 건물 잔해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AP

병원 사정은 더 심각하다. 가자지구 도심 한복판이 전쟁터로 변하며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밀려들고 있지만 식량과 연료 등 보급품 부족으로 병원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연료와 보급품 고갈로 조만간 수천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피난민이 몰리고 있는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의 경우 중환자실이 공습으로 다친 3세 미만의 어린이 환자들로 가득 차 있지만 현재 남아있는 발전용 연료는 16일까지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병원의 고문 의사 모하메드 칸델은 연료가 바닥나면 “전체 보건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라면서 “전기가 끊기면 이곳의 환자들 모두가 죽음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들이다. 미국 CNN방송은 세계보건기구(WHO)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지난주 가자지구에서 사망한 사람의 60%가 여성과 어린이였다고 보도했다. 유엔아동기금에 따르면 충돌이 시작되고 일주일 만에 가자지구에서만 어린이 700명 이상이 사망하고 2450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피란민들이 몰려드는 남부 도시 라파에서 메스바흐 발라와이는 “아이들이 굶주린 채 잠을 청한다”며 “세계가 왜 우리를 방치하는가”라고 말했다. 이브라힘 베르베흐는 “동물들이 차라리 우리보다 더 나은 상황”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유엔조차 더 이상 구호활동이 불가능하다며 철수하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필립 라자리니 집행위원장은 이날 동예루살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늘부로 가자지구에 있는 UNRWA는 더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라자리니 집행위원장은 가자지구 내 UNRWA 직원 1만3000명 대부분이 떠났으며, 14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그는 “민간인 살해에 대한 답은 더 많은 민간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라며 “너무 늦기 전에 봉쇄 공격을 즉시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15일(현지시간) 가자 지구 중심부 데이르 엘 발라에 있는 알 아크사 병원 밖에서 팔레스타인 여성이 이스라엘 공습 중 사망한 아이의 시신에 입을 맞추고 있다.

문제는 이스라엘 지상군의 공격이 시작될 경우 민간인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 13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예고하며 가자지구 주민 110만 명에게 24시간 이내에 남쪽으로 이동하라고 통보한 바 있다. 이에 절반 이상의 주민들이 피란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동이 어려운 환자나 노인, 임신부, 장애인 등은 여전히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는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세계에서 가장 비좁고 빈곤한 곳 중 하나인 가자지구에 전례 없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내 인도적 위기에 대한 비난이 커지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남부에 물 공급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물을 퍼 올리는 데 필요한 전력이 복구되지 않아 주민들이 물을 사용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스라엘 측 관계자는 가자지구에 식량, 물 등에 접근할 수 있는 인도주의 구역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CNN에 밝혔다.

16일 한때 휴전 소식이 전해졌지만, 이스라엘·하마스 모두 휴전 합의를 부인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집트가 이날 오전 오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에서 이집트와 연결된 라파 통로를 일시 휴전과 함께 재개방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30분 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실은 “현재 가자지구에는 외국인들을 내보내기 위한 휴전과 인도적 지원이 없다”면서 로이터 보도를 공식 부인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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