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음악감독, 길을 개척한 피아니스트 송영민 [인터뷰]
기획·연주·해설로 고상지 등과 무대
드라마 ‘밀회’ 출연 이후 다방면 활동
살롱콘서트 등 클래식 대중화 앞장서
그래서 피아니스트 송영민(37)은 마이크를 잡는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하기 위해서다. 그가 대중에게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건 2014년 방영된 인기 드라마 ‘밀회’를 통해서였다. 남자 주인공 선재(배우 유아인)의 피아노 연주 대역, 오리지널 피아니스트가 바로 그다.
지금은 연주자이자 해설자, 기획자, 음악감독 등으로 전국을 누빈다. 7년째 최인아책방 콘서트 음악감독을 맡고 있고, 한 해에 소화하는 공연이 70여 회에 달한다. 그가 가을의 한복판, 18일 서울 마포문화재단 M클래식 축제 ‘수아레 콘서트’ 무대에서 기획, 연주, 진행 등 1인 다역으로 관객과 만난다.
‘수아레’는 프랑스어로 저녁 시간에 여는 파티라는 뜻. 이번 파티는 사랑과 세월을 노래하며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시간이다. 슈만이 아내에게 결혼식 전날 선물한 곡 ‘헌정’을 시작으로, 첼리스트 박건우가 드보르자크의 가곡 ‘날 홀로 내버려 두세요’ 등을 연주한다. 바리톤 안동영의 중후한 목소리로 듣는 김효근의 ‘첫사랑’ 등과 고상지의 반도네온 연주로 피아졸라의 ‘망각’ 등 탱고곡이 이어진다.
송영민은 이 모든 곡에 피아노 연주와 해설로 함께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주만으로도 진이 다 빠질 정도라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는데, 곧바로 마이크를 잡고 좌중을 휘어잡는다.
자신만의 해설로 관객 대접해야”
뛰어난 언변까지 갖췄으니 유튜브 구독자를 늘려봐도 좋을 텐데, 그는 현장을 고집한다.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스피커도 접해봤지만 현장 음향은 절대 따라올 수 없다. 클래식은 반드시 현장에서 들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장 관객을 위해 그가 준비하는 건 ‘잘 차린 코스 요리’다. 관객이 대접받고 간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설의 내용부터 곡의 흐름, 무대 위 연주자의 동선까지 신경을 쓴다.
물론 다양한 공연장과 전문 기획사에서도 이런 노력을 한다. 그러나 연주자 출신이 기획한 공연엔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그는 믿는다. 평생 음악을 공부하고 업으로 삼았으니 깊이와 진정성을 따로 비길 이유가 없다. “제 해설은 검색창에 쳐도, 팸플릿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예요. 제가 음악가로서 이 곡을 어떻게 보는지, 어떻게 해석했는지, 연주할 때 하는 생각을 얘기하죠. 그러면 관객들도 곡에 금방 이입해요.”
음악가 진로는 연주 외에도 다양해”
다시 그를 붙잡은 건 음악이었다. 당시 학교에 온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연주를 듣고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오히려 “나는 저 경지엔 도저히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다만 “이 좋은 피아노를 안 하면 평생 후회하겠다”는 생각도 함께였다. 이후 여러 대학원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으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는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으로 게랄드 파우트를 사사하면서 피아니스트 김다솔·원재연·김희재 등과 연을 쌓았다. 실력도 늘었다. “결국은 포기하지 않았기에 좋은 시간이 왔던 것 같아요. 각자 빛이 나는 시간은 다르죠. 저는 서른 넘어서 풀릴 운명이었나보다, 그 시간을 잘 견뎌냈구나 싶어요.”
송영민의 지금은 누군가의 미래다. 그가 개척한 길이 어느 음악 전공자의 진로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는 “모든 음악 전공자가 다 연주자가 될 순 없는 게 현실”이라며 “다양한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저와 비슷한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다면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당장 안 풀린다고 혹은 당장 성공을 거뒀다고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말해주고 싶어요.”
그에게 앞으로 기억되고 싶은 수식어가 있는지 물었다. 드라마 ‘밀회’가 9년 전 막을 내렸는데 여전히 그를 대표하는 게 타당할까. 그에게 인지도를 쌓게 해준 성공의 증거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될 수도 있진 않을까. 최근 활발히 새로운 연주·기획에 힘을 쏟는 그의 활동 내력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는 의연하다. “이젠 지겨운 단계도 넘어갔다”고 했다. “나라는 사람을 알리게 된 게 이 작품인데 뭐가 문제겠어요. 히트곡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가수가 될 수 있잖아요. 저에겐 감사한 작품이죠.”
앞으로도 송영민은 길을 멈출 생각이 없다. 그는 영원한 피아니스트를 꿈꾼다. 최근 공연 준비와 새로운 영상 콘텐츠, 최인아책방 콘서트 등 많은 작업 사이 틈틈이 피아노 레슨을 따로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해 제 자신도 실력이 느는 게 보인다”며 “피아노 치는 방법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단점은 다른 사람이 속속들이 알긴 어렵잖아요. 그걸 혼자 연습해서 메꾸고 덮는 게 아니라, 아예 도려내는 수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한편으론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내가 부족해서 좋아질 부분이 많으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그냥 ‘피아니스트’로 불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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