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마지막 무동’ 김천흥…악기·춤 대본 등 엮은 자료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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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고 기품을 갖춘 왕실의 음악과 춤에 두루 능했다.
1922년 13살에 조선 왕실 후신인 이왕직의 아악부 부원양성소에 들어가 해금과 양금을 배우면서 무악인생을 시작한 그는 1924년 마지막 황제 순종의 탄신일 잔치의 전통 연희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아이(무동)로 나간 것이 계기가 되어 '마지막 무동'이란 별칭으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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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동작 그린 친필 무보 등 1186건 갈무리
조선시대 최고 기품을 갖춘 왕실의 음악과 춤에 두루 능했다. 그는 누구도 따라붙을 수 없는 특별한 경지의 예인이었다.
계승자를 둘러싸고 암투와 구설이 끊일 사이 없는 전통 예능 분야에서 이론의 여지 없이 거장으로 추앙받는 고 김천흥 선생(1909~2007)의 면모다. 고인은 조선 왕조 역대 임금의 신위를 봉안한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제례악과 궁중잔치 때 악귀를 쫓고 북을 부르기 위해 추었던 처용춤을 정통 양식으로 온전히 실연할 수 있었던 실력자였다.
1922년 13살에 조선 왕실 후신인 이왕직의 아악부 부원양성소에 들어가 해금과 양금을 배우면서 무악인생을 시작한 그는 1924년 마지막 황제 순종의 탄신일 잔치의 전통 연희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아이(무동)로 나간 것이 계기가 되어 ‘마지막 무동’이란 별칭으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뒤에는 왕실 잔치에서 공연되는 연주곡·노래·춤으로 이루어진 궁중정재를 복원·재현해 명맥이 이어지게 했고, 각 지역 탈춤을 발굴조사해 공연장에 올렸으며, 창작무용극도 여러 편 짓는 등 조선시대 무악유산 전승과 대중화에 이바지했다.
국가무형유산 종묘제례악·처용무 보유자였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 만에 국가무형유산원이 유족한테서 기증받은 자료를 엮어 ‘무형유산 기증자료집’을 펴냈다. 1920~1930년대 이왕직아악부에서 배우며 일하던 시절의 성장기 모습과 해금과 양금 등 켰던 악기들을 담은 사진, 춤 동작 도판인 친필 무보(舞譜), 공연 때 입은 옷 등 그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자료 1186건을 실었다. 특히 직접 대본을 쓰고 안무를 꾸려 1959년 초연한 ‘처용랑’의 대본과 공연 사진 등은 왕실의 잔치 연희 성격이었던 기존 처용무를 대중 관객이 보는 무용극의 형식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로 보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누리집(www.iha.go.kr)에서 자료집 내용을 검색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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