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양자점 상용화...끝없는 질문에 답 찾는 과정

박종남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김소연 기자 2023. 10. 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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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운지 바웬디, 루이스 브루스, 알렉세이 아키모프(왼쪽부터). 노벨재단 제공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 중에는 ‘앤트맨’이란 캐릭터가 있다. 앤트맨은 몸을 자유자재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핌 입자’로 물체의 크기를 바꿔가며 악당을 물리친다. 2023년 개봉한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는 앤트맨 가족이 미지의 양자 영역 세계에 빠져버리고 무한한 우주를 다스리는 정복자를 만나는 모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만약 영화의 내용처럼 물질의 크기를 줄이면 바뀌는 건 단지 물리적인 크기 뿐일까. 예를 들어 순금을 계속 반으로 쪼개어 수 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크기로 만드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순금 덩어리는 여전히 금빛을 띠고 녹는점 등 금의 고유한 물리적인 특성을 유지할까

2023년 노벨 화학상은 ‘물질의 크기를 수 나노미터 수준으로 줄일 때, 그 물질의 특성은 우리 눈에 보이는 큰 물질과 어떻게 다를까?’란 질문에 천착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0월 4일 모운지 바웬디 미국 MIT 교수, 루이스 브루스 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 알렉세이 아키모프 전 나노크리스탈테크놀로지(NCT) 선임연구원에게 “양자점의 발견과 합성에 대한 공로”로 2023년 노벨 화학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수상자들은 여러 다양한 물질 중에서도 반도체에 집중했다. 반도체를 나노입자로 만들면 입자 크기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는 양자효과를 예측하고 이를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이 수상자들의 업적이다. 이렇게 입자 크기에 따라 색깔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작은 반도체 결정을 ‘양자점(QD∙Quantum Dot)’이라고 부른다.

 
● 입자 크기가 바뀌었을 뿐인데 색이 변하는 양자의 세계

‘양자’점이라고 하니 복잡한 양자역학이 떠오르고 앤트맨과 그의 가족들처럼 미지의 세계에 빠지는 느낌이 들 수 있다. 2023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따라가며 양자점의 의미를 이해해보자. 

양자점을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한 건 아키모프 전 선임연구원이었다. 그는 1981년 러시아 바빌로프 국립광학연구소에서 비정질(원자나 분자가 불규칙하게 배열된 고체) 유리 안에서 구리와 염소를 반응시켜 수 나노미터 크기의 염화구리 입자를 합성했다. 

그리고 염화구리 나노입자가 첨가된 비정질 유리가 그 입자의 크기에 따라 다른 색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양자점을 최초로 관찰한 것이다. 아키모프 전 선임연구원의 발견은 1981년 러시아의 학술지 ‘JETP 레터스’에 보고됐다. (Ekimov, Alexey I. "Quantum size effect in three-dimensional microscopic semiconductor crystals." Jetp Lett. 34 (1981): 345-349)

그 다음 해인 1982년에는 또다른 종류의 화학물질로 양자점을 합성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브루스 명예교수는 당시 근무하던 미국 벨 연구소에서 수용액 상에서 카드뮴 이온(Cd2+)과 황화 이온(S2-)을 반응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수용액 속에서 반지름이 20nm이고 초록색 형광을 보이는 황화 카드뮴(CdS) 화합물 반도체 나노입자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를 통해 브루스 명예교수는 나노입자 합성법으로 널리 이용되는 용액 공정법을 최초로 도입하고 콜로이드 상태로 수용액에 분산돼 있는 양자점을 구현해 나노과학 분야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Rossetti, R., and L. Brus. "Electron-hole recombination emission as a probe of surface chemistry in aqueous cadmium sulfide colloids." The Journal of Physical Chemistry 86.23 (1982): 4470-4472)

브루스 교수에게는 양자점이 크기에 따라 다양한 색을 나타내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설명한 공로도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반도체는 전압이나 열, 빛을 가하면 전기 전도도가 변하거나 빛을 발하는 성질이 있다. 

이 성질은 반도체 원자에 에너지가 가해지면 전자 하나가 그 에너지를 받고 원자에 묶여 있는 상태인 ‘가전자대’에서 원자를 벗어난 상태인 ‘전도대’로 이동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다시 말해 원자에 묶여 있던 전자가 외부에서 준 에너지를 받고 원자를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 가전자대에는 전자가 원래 있던 자리에 남은 구멍 ‘정공’이 생긴다. 그런데 반도체의 크기를 수 나노미터 수준으로 줄이면 전자와 정공이 움직일 공간이 제한되고, 이 둘이 전기적인 인력에 의해 좁은 공간에 묶이게 된다. 이를 양자구속효과라 부른다.

반도체 나노입자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전자와 정공이 움직일 공간은 더 줄어드니 양자구속효과가 더 강해진다. 양자구속효과가 강해질수록 전자가 원자를 벗어나는 데 필요한 에너지, 가전자대에서 전도대로 이동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점점 커진다. 

이에 따라 에너지를 흡수한 반도체 나노입자는 점점 더 큰 에너지에 해당하는 빛을 발광하게 된다. 가시광선 영역에서 빛은 에너지가 클수록 보라색, 작을수록 붉은 색을 띤다. 양자점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 크기를 조절해가며 다양한 색을 내는 소재다. 따라서 크기가 균일한 양자점을 합성할 수 있다면, 그 색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 펄펄 끓는 비누에 양자점 재료를 흩뿌리는 돌파구

크기가 균일한 양자점을 합성하는 건 양자점이 상용화되기 위한 핵심 과제였다. 이 과제를 해결한 사람이 바웬디 교수다. 

벨 연구소 재직 시절 브루스 교수의 박사후연구원 제자였던 바웬디 교수는 MIT 화학과에 부임한 이후로도 양자점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다. 당시 양자점을 합성하기 위해 사용하던 용액 공정법은 물을 용매로 사용한다. 물속에서 양자점을 키운다는 뜻이다. 

그런데 양자점을 만드는 과정에서 용액의 온도를 높여야 하는데, 물은 100℃에서 끓어 기체가 되니 올릴 수 있는 온도에 제약이 생긴다. 이 때문에 나노입자의 결정성이 떨어지고 양자점의 크기도 균일하지 않다. 발광 특성이 나쁜 양자점을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웬디 교수는 어떻게 하면 결정성이 우수하고 균일한 크기를 갖는 양자점을 합성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1993년 고온 주입법을 통한 열분해 반응을 고안해 냈다. 바웬디 교수의 고온주입법은 기존의 합성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새로운 합성법이었다. (doi: 10.1021/ja00072a025)

고온주입법이란 300℃ 이상의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계면활성제 용액을 고온으로 가열하고 여기에 주사기를 통해 매우 분해되기 쉬운 유기금속 전구체와 음이온 전구체 혼합용액을 빠르게 주입하는 방식이다. 

전구체는 화학반응에 참여해 최종 물질을 만드는 재료를 말한다. 이렇게 하면 고온으로 가열된 계면활성제 용액 속에서 전구체가 급격하게 분해되면서 용액 속에 과하게 녹은 과포화 상태가 된다. 이를 통해 양자점 결정의 핵을 만든 후 온도를 낮춰서 이 핵이 원하는 크기로 성장하도록 해 크기가 균일한 양자점을 만든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비누를 팔팔 끓이고 반도체 공정에서 자주 사용하는 전구체를 짧은 시간에 주입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열분해 돼 핵을 형성할 수 있는 전구체를 고온의 계면활성제 용액에 빠르게 주입하면 순간적으로 핵이 형성된다. 

핵을 형성하느라 소진된 전구체는 더 이상 새로운 핵을 형성하지 못한다. 대신 핵이 원하는 크기의 양자점으로 자라는 재료로만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계면활성제는 양자점 표면에 붙었다 떨어지는 반응을 반복하며, 양자점의 크기를 제어한다.

고온 주입법은 2001년 현택환 서울대 교수가 개발한 가열승온법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양자점 합성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바웬디 교수의 연구를 통해 결정성이 우수하고 균일한 크기를 갖는 나노입자를 합성할 수 있게 되면서 양자점은 상용화에 날개를 달았다.

● 코로나19 진단부터 QLED TV까지 양자점의 활약에는 한계가 없다

바웬디 교수의 연구 이후로도 양자점 연구는 여러 과학자에 의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1994년 미국 신재생에너지 연구소의 아서 노직 박사가 중금속이 포함되지 않은 양자점을 합성하는 등 다양한 양자점의 발견이 이어졌다. 

기요 시오네스트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1996년 개발한 코어/쉘 구조를 갖는 양자점은 양자점 발광 효율을 획기적으로 올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편 바웬디 교수의 도전도 이어졌다. 그는 1992년 양자점을 레이저로 응용할 가능성을 보여준 특허를 등록하기도 했다.

1994년 폴 알리비사토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양자점을 LED로 활용할 가능성을 보고했다. 이어 알리비사토스 교수는 생체 내의 변화를 알아내는 지표인 바이오 마커에 양자점을 연결해 몸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시각화할 새로운 도구로써 양자점의 응용법을 1998년 보고했다. 

양자점은  생물학적인 응용 연구도 활발히 진행됐다. 양자점이란 새로운 발광체로 디스플레이, 조명 등 광전소자를 만들거나 바이오 이미징에 활용할 길을 연 것이다.

한국의 과학자들도 양자점 연구에 많은 공헌을 했다. 대표적인 연구로 현택환 교수가 2004년 발표한 양자점 대량생산법 개발 연구와 삼성 종합기술원의 장은주 박사가 2019년 발표한 양자점 기반 고효율 LED 연구를 들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양자점은 새로운 발광 소재로서 기업에서도 큰 관심을 받게 됐다. 안정적이고 색순도가 높으며 총천연색을 나타내는 넓은 색 영역, 그리고 큰 연색지수(특정 광원에서 본 사물의 색이 태양광 아래서 볼 때와  얼마나 비슷한가를 수치화한 값)를 보이는 양자점은 유기물 형광체 기반의 OLED와 경쟁 내지는 상호보완적인 신소재로 여겨지고 있다. 

양자점을 활용한 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를 통해 상용화 됐다. 이는 나노기술을 성공적으로 상업화한 좋은 예이다.

최근엔 양자점을 통해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자의 특징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면적 유연소자 기술, 높은 해상도의 패터닝 기술, 높은 색순도의 구현 등 다양한 연구 테마들이 떠오르고 있다. 

관련 시장은 2023년 1200억 달러(약 162조 원)가 넘어서는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양자점을 이용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양자점이 특정 암 조직에 붙어 발광하도록 하는 바이오 이미징 기술을 개발하는 등 차세대 디지털 바이오 헬스케어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산학연의 선순환적인 연구 환경을 통해 양자점 기술이 다양한 응용기술로 계속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 끊임없는 질문과 과학에 대한 헌신이 노벨상을 만들다

필자는 바웬디 교수 연구실에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당시 필자는 양자점의 대량생산을 위한 연속공정 시스템을 개발하고 미국 하버드대 의대와 함께 양자점을 이용한 암 표적화 연구를 진행했다. 

바웬디 교수는 대부분의 학생 및 박사후연구원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만나면서 대화하는 것을 즐겨하며 출장도 잦은 편이 아니었다. 학생 하나하나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스승이었다.

바웬디 교수는 현재 삼성 종합기술원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 덕에 한국에 종종 방문한다. 최근에는 2023년 8월 정보디스플레이학회 QD&PV 연구회에서 주최하는 해외석학 초청 특별 심포지엄에 연사로 참석했다. 

학회가 끝나고 식사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여전히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양자점의 태동부터 양자 컴퓨팅 등 가장 최신의 응용 연구까지 양자점 외길을 걷고 있는 그의 모습에 경외감을 느꼈다.

바웬디 교수는 노벨상 소식을 들은 새벽 전화 인터뷰에서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상을 받게 돼 기쁘다”는 다소 담백한 수상 소감과 지도교수였던 또 다른 수상자 브루스 교수의 헌신적인 멘토링에 감사를 표했다. 

첫 학생이었던 머레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노리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교수에게 공을 돌렸다. 1993년 이들이 함께 미국화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은 1만 2000번 이상 인용된 나노화학 분야의 전설적인 논문이다. 이 논문으로 이들은 양자점 합성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바웬디 교수가 노벨상 수상 연락을 받은 당일에도 아침 9시에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과 함께 축하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과학에 헌신하는 태도가 결국 노벨상의 영광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소개
박종남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MIT의 모운지 바웬디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냈다. 2010년부터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에서 전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새로운 물성을 갖는 나노입자 합성 연구 및 합성된 양자점 기반 진단키트, 바이오이미징 등의 응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박종남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김소연 기자 jnpark@unist.ac.kr,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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