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의 삶과 자연을 작품으로" 고성에 이주한 30대 부부 작가의 '꿈'
절반은 외지인 시선으로 지역의 삶, 자연 바라봐
"주민과 공감하며 작업이 삶과 예술에 본질적으로 다가가길"
강원도 고성으로 이주해 절반은 외지인 시선으로, 나머지는 주민의 시선으로 어부들의 삶과 애환을 작품으로 연출하고 있는 30대 젊은 부부 작가가 이목을 끌고 있다.
이들은 고성의 자연과 삶을 바라보며 남겨져 있는 것들의 흔적과 더불어 사라진 것들이 남기고 간 흔적의 중첩을 통해 언젠가 사라질 존재인 우리의 삶의 의미를 더 큰 자연의 생명 속으로 연결하고, 시간의 연속성 위에 서있는 현재의 우리 모습을 그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부부이자 한 팀으로서 동양화를 기반으로 지역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김소정(서울대 동양화과 졸업)·엄경환 작가(강원대 정치외교학부 졸업)를 강원영동CBS가 만나봤다.
Q.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동해안 최북단 지역인 고성으로 이주하게 된 계기는?
A. 안녕하세요. 김소정, 엄경환 작가입니다. 저희는 부부가 함께 팀으로 작가활동을 하고 있고 지난 2022년 강원도 고성으로 이주했습니다. 남편의 고향이 고성인데 고향이라서 이주한 것은 아니구요. 꽤 오랜 기간 연애를 하면서 데이트를 할 때마다 서울을 벗어나 파주, 남양주, 양평 등 자연의 한적한 곳들만 찾아다녔어요. 특히 남편은 발끝이라도 물에 담그고 있어야 속에서 열불이 사그라드는 그런 사람이라 바닷가 앞으로 이주하게 된건 운명일지도 모르겠네요.
2021년은 저희가 결혼하고 물론 행복한 신혼생활이었지만, 동시에 남편이 서울에서의 40대, 50대, 그 이후에도 이어질 반복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무척 갑갑해하고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어요. 그해 겨울 고성에 하나 뿐인 영화관이 개관하게 되면서 일자리가 생겼고, 이와 맞물려 이주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Q: 고성에 대한 느낌과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지?
A. 아내의 경우 수도권에서만 30년 평생을 보냈던 '서울' 사람이에요. 그래서인지 첫 해 고성에 이주하고 나서는 정말 고성 곳곳 바닷가는 물론이고 여름에 사람이 오지 않는 깊숙한 계곡과 가을 억새 핀 습지, 눈 쌓인 둔덕에서 썰매도 타고 하면서 정말 살이 쭉쭉 빠지고 하루하루가 바쁠 정도로 들로 산으로 놀러다녔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연에서의 시간이 저희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죠.
매일 다른 바람, 냄새와 햇볕의 세기에 살아내느라 잃어버린 것 같았던 사색하는 세포들이 깨어날 수 있었고 작품에도 그 시간들이 녹아들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에 '탁본'이라는 방법을 녹여내게 되었고 자연 속 나무, 바위, 모든 것에 깃든 '시간의 흔적'이라는 단서들이 이야기 하듯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 우리는 언젠가 죽어 사라지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존중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어코 삶을 사랑하게 된다. 이런 감상을 작품에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부부가 함께하고 있는 작품의 특징이 있다면? 그리고 전시회 작품에 대한 소개도 부탁…
A. 저희는 하나의 바탕 종이에 우리 두명이 같이 그림을 그려요. 회화라는 장르에서 캔버스는 굉장히 사적인 공간이고, 여러 사람이 함께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는 것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보통 상상하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저희는 부부라서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대화를 바탕으로 주제와 작업의 방향을 하나로 일치한 상태에서, 작업 과정 중 서로의 영역을 드나들며 서로의 붓질로 함께 한 화면을 같이 완성해 나가고 있어요.
이런 점을 신기하고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지난 9월에는 강릉의 대추무파인아트에서 '연결된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었어요. 바닷가에 인접한 고성에 사는 환경 덕분에 그리고 남편의 개인적인 배경과 함께 이번에는 어업에 사용되는 '그물'을 소재로 저희 작업의 주제인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탁본을 통해 그물의 흔적을 종이에 남겨서 평생의 노곤함과 성실함이 녹아있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 또한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있음을 공유하고자 했어요.
이번 네 번째 함께하는 저희 개인전에서 새로운 시도라면 그물의 탁본을 비단 위에 새기는 작업을 시도해 봤어요. 전시 제목처럼 '연결된 풍경' 이라는 작품은 먹으로 그물을 탁본한 비단이 겹겹이 걸린 설치 작업과 전시공간의 통창 밖으로 보이는 밧줄에 그물과 비단을 빨래 널 듯 걸어 놓은 설치 작업으로 이뤄졌지요.
먹과 분채 등 전통 재료를 사용해 탁본과 같은 전통 방법을 기반으로 그 위에 채색하는 방식의 작업들은 주로 한지 위에 표현했어요. 한지를 주요 매체로 활용한 이유는 탁본을 통해 관심 주제인 시간과 자연의 흔적을 남기기에 적합한 매체라는 생각과 함께 한지의 예민하고 얇은 질감이 소나무의 거친 표면은 물론이고 나뭇잎의 섬세한 선까지 작품에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자연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고 과거에도 존재했던 자연의 흔적을 작품 위에 현상학적으로 드러내고 그 위에 다시 작가들의 심상을 생과 형상으로 추상적인 풍경으로 재구성했어요.
비단은 값비싼 고급 천이지만 그물코가 아주 작으면 곧 비단처럼 고운 천과 다름없지 않을까. 남편은 어부인 아버지를 보며 삶의 가치를 생각했고 그물과 비단이 다르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쳤어요. 넉넉한 한편 막막한 자연 속에서 인간이 살아낸 흔적을 소중히 여기고, 그 소중한 흔적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저희의 공동 작업을 이끄는 동력인 것 같아요.
Q: 어민들의 삶이 깃들어 있는 항구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곳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이유와 어떤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했는지?
A. '고성에서만 할 수 있는' 전시를 고민하는 것에서 기획이 시작됐어요. 고성은 봄과 가을에 부는 양간지풍이 대단한데요. "바람 때문에 불편하고, 바람 때문에 야외에서 뭘 못해"가 아니라 그런 바람이 있기 때문에만 할 수 있는 무언가는 없을까라는 상상하게 됐어요. 여러 장소들을 물색하던 중 맨 처음 눈여겨 봤던 곳은 대진리 광어 양식장이었어요. 동그랗고 커다란 수조가 여럿 있는 버려진 공간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지만 개인 사유지여서 전시 진행에는 어려움이 있었죠.
차선책으로 발견한 곳은 항구의 옥상이에요. 새벽녘부터 아침나절까지 어부들의 하루 일과가 끝나면 오후부터 항구는 조용히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이런 항구의 특성을 이용해 항구 건물 자체를 이용해 고성의 바람과 자연을 그대로 전시에 끌어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고성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남편의 고향 항구이자 작은 미항인 '초도항'에서 전시를 열게 됐죠.
고성에서 만난 작가 친구 부부와 함께 기획팀을 꾸려 '바람에 맞서서'라는 주제로 예술 프로젝트를 만들게 됐어요. 항구에 놓여진 사물들을 보니 밧줄로 묶고, 돌과 다라이로 누르고 불어오는 바람에 적응하고 때론 저항하면서 살아온 어민들의 삶의 방식이 느껴졌어요. 삶이란 것도 결국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에 때론 적응하고 때론 저항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예술가들이 세상에 질문하고 작업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5명의 작가 팀을 섭외해 '바람에 맞서서'라는 주제로 초도항과 고성의 주민들의 삶과 환경을 녹여낸 작업을 부탁했고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결과물을 항구 옥상에 전시했습니다.
Q: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A. 작품 활동은 기본적으로 혼자 탐구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또한 동료들과 나누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역에는 일단 젊은이들이 많이 없고, 특히 저희와 뜻이 맞는 작업 하는 동료들을 지역에서 만날 기회가 많이 없어 이런 부분이 어려운 점인 것 같긴 해요.
Q: 앞으로 부부 작가로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A: 부부 작가라는 명함이 초라해지지 않게 감각을 깨워서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고성의 자연속에서 삶과 자연을 충실하게 느끼고 꾸준히 작업하는 것이 가장 당연하지만, 가장 이루고 싶은 일이에요. 여기서 살게 된 만큼 이곳의 환경과 이곳의 문화와 이곳의 사람들과 충분히 교감하고 공감하며 작업이 삶과 예술에 본질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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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영동CBS 전영래 기자 jgamj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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