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이 백인을 부리던 시절, 마틴 스코시즈가 그려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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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의 파괴와 학살로 점철된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현대사에서 원주민이 진짜 주인 노릇을 하며 백인을 하인과 일꾼으로 부렸던 시기가 있었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려 러닝타임 3시간25분에 달하는 이 영화는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고자 했던 부유한 원주민 사회를 백인들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파괴했는지,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신뢰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스코시즈의 유장하고 묵직한 연출력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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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의 파괴와 학살로 점철된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현대사에서 원주민이 진짜 주인 노릇을 하며 백인을 하인과 일꾼으로 부렸던 시기가 있었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8세기 말 오클라호마주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석유가 나오며 벌어졌던 실제 이야기다.
내년 3월 열리는 제9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요 부문 석권이 미리 점쳐지고 있는 마틴 스코시즈의 ‘플라우 킬링 문’이 19일 개봉한다. 무려 러닝타임 3시간25분에 달하는 이 영화는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고자 했던 부유한 원주민 사회를 백인들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파괴했는지,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신뢰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스코시즈의 유장하고 묵직한 연출력으로 보여준다.
본래 미시시피와 오하이오에서 살던 오세이지족은 미국 정부의 원주민 재배치 정책에 따라 오클라호마의 척박한 땅으로 밀려나 살던 중 거주지에서 석유가 채굴되며 돈방석에 앉는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오세이지족이 유일하게 미국 정부에 땅을 사는 식으로 거주지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차별적인 신탁 정책을 도입해 이들이 버는 돈을 직접 관리하면서 지급했고 돈 냄새를 맡은 백인들이 마을에 몰려들면서 1920년대 오세이지족 마을에는 수십 건의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물론 이는 살인으로 분류되지 않고 조사도 하지 않은 수많은 실종 사건이 빠진 기록이다.
당시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자 오세이지족은 거금을 뿌리며 연방 정부에 조사를 요청해 연방 정부가 수사원들을 투입했고 이는 지금은 미연방수사국(FBI)의 탄생 계기가 됐다. 작가 데이비드 그랜은 이를 취재해 2017년 ‘플라워 문: 거대한 부패와 비열한 폭력 그리고 에프비아이(FBI)의 탄생’이라는 논픽션 대작을 썼고 책은 나오자마자 500만달러의 판권료로 영화화가 준비되기 시작했다.
‘포레스트 검프’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에릭 로스는 이 영화의 각본을 쓰면서 본래 스토리의 시점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마을에 온 연방 수사관 톰 화이트에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톰 화이트 역에 내정됐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스코시즈 등은 오세이지족 후손과 만나면서 작품의 무게중심이 원주민들로 맞춰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영화는 철저히 원주민의 시선에서 백인들의 끝 모를 탐욕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파괴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영화는 실제로 오세이지 후손들과의 협업 형식으로 진행됐다. 오세이지족 후손들이 등장인물 40여 명을 연기했고 이밖에도 여자 주인공 몰리를 비롯해 주요 배역들이 모두 아메리칸 원주민 배우들로 채워졌다.
디캐프리오가 연기한 몰리의 남편 어니스트 버크하트와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빌 헤일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핵심을 담고 있다. 실제 기록에서 가져온 두 인물은 기본적으로 원주민의 재산을 뺏으려고 하지만 그들과 진짜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어니스트는 삼촌의 지시에 따라 몰리에게 접근해 결혼을 하고 몰리의 가족들을 죽이는 데 가담하지만 몰리에 대한 사랑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한마디로 무능하고 수동적인, 그래서 악에 동참하게 되는 평범한 백인을 대변한다.
반면 원주민을 도우면서 큰돈을 벌었지만 기본적으로 원주민은 보호받고 지배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우월감을 지닌 농장 주인 빌 헤일은 원주민들의 재산을 자기가 가져오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선량함으로 포장된 백인들의 우월의식과 제어되지 않는 탐욕이 어떻게 아메리칸 원주민들을 유린하고 지금의 미국사회에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는지 통렬하게 보여준다.
제작비가 2억달러까지 치솟으며 워너브러더스가 중도하차한 프로젝트를 오티티(OTT) 애플티브이플러스가 받아 완성해 내년 아카데미 석권을 정조준하고 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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