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나, 당신은 자유다” [양형모의 만터뷰]

양형모 기자 2023. 10. 1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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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다!” 이사를 한 번 할 때마다 더벅머리 총각 비듬 떨구듯 책들을 버리고 다녔지만, 이 책은 책장 한 구석에 고이 꽂혀 있었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 2006년 1쇄를 찍은 책인데, 내가 갖고 있는 것은 2010년 판으로 54쇄였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였다. 당시 아나운서에서 여행가이자 작가로 변신한 손미나씨가 서울대 강연을 할 때 인터뷰를 하면서 선물 받았다.

손미나 작가가 최근 이 책을 재출간(코알라컴퍼니 출간)했다. 17년 만에 새로운 표지를 입고, 업그레이드되어 다시 독자의 곁으로 돌아왔다. 스포츠동아 충정로 사옥 1층 카페에서 손 작가와 긴 시간 인터뷰를 했다. 여전히 그는 활달하고, 많은 말을 했으며, 더 없이 건강해 보였다. 무선 마이크 두 개를 꺼내 한 개를 건네고, 다른 한 개를 내 옷깃에 달았다. 인터뷰, 아니다. 만터뷰 시작!

-2006년 출간됐으니 17년 만의 재출간입니다. 앞서 14권의 책을 내셨는데요. 아무래도 독자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책은 역시 ‘스페인, 너는 자유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몇 부나 나갔는지 알고 계시나요? “한 40만 부 가까이 나간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손 작가께 받았던 책이 2010년 54쇄판이더라고요. ”저도 한 70쇄까지는 세다가 그 다음은 모르겠어요(웃음). 당시에는 독자 분들께 사인해 드리다가 손목 인대가 나갔을 정도였으니.“

-17년 전까지만 해도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일단 나가자“하고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손 작가께서는 이 방면의 선두주자, 1세대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요즘은 여행객뿐만 아니라 유튜버, 블로거 등 너도나도 엄청 해외로 나가고 있는데요. 이런 세태를 보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런 선택을 했는데 세상이 오히려 반대로 바뀌어 있으면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나’ 이럴 텐데요. 다행히 ‘어차피 가야 되는 길을 좀 빨리 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저는 늘 후배들한테 하는 말이 있어요. ‘손미나가 특이하지 않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꼭 남들을 따라서, 같은 길을 가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제가 튀는 활동을 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왔어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기 주체적으로 인생의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데에 대해 나도 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했는데 그래도 조금은 그런 방향대로 세상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좋아요. 너무 보기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안정적인 직장에서 평생 몸 담고 일하시는 분들에 대해 저는 무한한 리스펙트를 갖고 있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세상이 변화하는데 ‘나만 안 변할 거야’ 하는 건 제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사회적인 구조라든가 과학기술의 발전, 교통의 발전, 일터의 패턴 등 여러 가지 환경이 바뀌고. 우리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느냐.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이런 게 다 바뀌고 있잖아요. 그 속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은 젊은 친구들 만나서 얘기도 더 해보고 싶고. 저는 굉장히 반기고 있어요.“

-젊은 친구들하고 얘기하실 기회는 많지 않나요? 강연도 있고. ”일반적인 회사를 다니시는 분들보다는 훨씬 많지만, 그래도 강연장에서 만나는 거 말고 좀 더 친밀하게 대화를 해보고 싶은데요. 그런 기회는 아직까지 많진 않아요. 그래서 좀 만들어보려고 해요. 궁금해요.“

-인스타그램을 보면 해외, 특히 스페인은 우리가 캠핑이나 국내 여행 가는 느낌으로 가시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맞아요. 거의 대전, 대구, 제주도 가듯이 다녀오죠. 집 같아요. 진짜로“

-책의 후기들이나 사연들을 많이 접하실 텐데요. ‘이 책을 보고, 또 작가님의 삶을 보고 이렇게 용기를 얻었어요’. ‘저도 뭐 이런 힘을 얻었어요’. 이런 것은 엄청나게 많을 것 같습니다. ‘저도 용기를 내서 이렇게 해서, 정말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요’라는 것도 있겠죠? ”굉장히 많죠.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은 스페인 출장 갔을 때에요. 인스타그램으로 현지에서 번개를 했어요. 아무래도 여행을 오신 분들이고, 본인들 계획도 있을 테니 어렵겠지만 그래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자고 한 거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독자 분들이 오셔서 그날 제가 저녁을 쐈거든요. 바르셀로나 식당에서 맥주 한잔, 치킨 시켜놓고 재미있게 놀다가 책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시간처럼 되어 버렸죠(웃음).“

-진실 게임 분위기가 되어버린 거군요. ”처음 얘기를 하신 분께서 ‘저는 20번밖에 안 읽었거든요’ 이러면서 울기 시작하셨어요. 자신이 너무 힘들었을 때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내서 지금 유학을 와 있는 분이었죠. 스페인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분이었는데 유학을 와서 박사 학위 취득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 여성 정치학도셨습니다.“

”또 다른 분은 중학교 때 이 책을 읽었다고 해요. 스페인이라는 곳을 전혀 모르다가 이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외고를 가고,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해 지금은 스페인에 있는 구글에서 일하고 계시는 중이라고 했어요. 또 어떤 친구는 스페인에 와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스페인 사람이랑 결혼해서 살고 있다고 했고요. 그러니까 정말 많아요.“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훈장을 받으실 만하셨군요(손 작가는 올해 3월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수여하는 시민십자훈장을 받았다. 이 훈장은 민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라고 한다). ”하하하! 아참, 제가 진짜 감동 받았던 사연이 하나 있어요. 얼마 전에 서울역에서 커피를 사려고 들어갔는데 오십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 분이 다가오시더라고요. ‘사적인 시간을 보내고 계신데 방해를 하고 싶진 않았지만 꼭 할 얘기가 있다’고 하셨죠. 그래서 들어보니, 본인의 중학생 아들이 방황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완전히 달라졌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하시면서 ‘우리 아들을 꿈꾸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셨죠.“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렇죠. 너무 감동인 거예요. 그러면서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을 테니 계속해서 이 일을 해주셔야 된다’고. 그 분은 소프트웨어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님이셨어요. 명함을 주시면서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뭐든지 돕고 싶다’고 하셨죠. 저도 책에 사인을 해서 아드님께 선물로 보내드렸어요.“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에서 댓글 이벤트를 했거든요. 정말 책에 모두 싣고 싶을 정도였어요. 사연들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겨우 골라야 했으니까요. 너무 감사하죠.“

-2006년도에 세상에 나온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17년 만에 다시 출간하신 거잖아요. 이건 어떤 의미인가요? ”작년에 산티아고길을 다녀오고, 제 스스로 내면의 변화도 많았고, 나이도 이제 뭔가 좀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기분도 들고. 코로나 끝나고 요즘 스페인으로 여행 가는 사람들도 많고. 이 책은 스페인 여행기가 아니라 사실 ‘용기’에 관한 책이거든요. 손미나의 성장기이기도 하지만 손미나 개인의 성장기라기보다는 대한민국에서 30대를 살아가고 있던 한 여성이 어떻게 용기를 얻어 갔는가에 대한 이야기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변화가 생겼다면, 핵심은 제가 볼 때는 용기인 것 같아요. ‘엘 카미노(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직접 감독을 맡아 제작한 영화)’가 위로였다면 이건 용기에 관한 책이거든요. 지금이 그런 게 필요한 시기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새단장해 보고 싶었어요.“

-17년 전의 책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봐도 전혀 낡은 느낌이 없더라고요. ”이 책을 같이 만들었던 편집자가 읽고 나서 ‘희한하다. 옛날 책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너무 가슴이 설렌다’는 거예요. 지금 읽어도 너무 좋대요. 이런 책은 이 모습 그대로 젊은 사람들이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고. 주변에 선물하고 싶다는 얘기들도 많이 해주셨고요. 지금도 다른 책 사인회를 할 때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덤으로 가져오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하도 읽으셔서 너덜너덜해진 책도 많이 ¤고요. ‘우리 딸도 읽었으면 좋겠다’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고. 심지어 ‘부적으로 소장하고있다’는 분도 … (웃음).“

-아예 ‘스페인, 너는 자유다’ 2편을 쓰실 생각은 안 하셨나요? ”했죠. 그건 어쩌면 몇 년 후. 가우디 성당이 완공될 때쯤 해서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가우디 성당이 2026년에 다 지어진대요. 한 세 권쯤이 세트로 되지 않을까요?“

-2006년도에 나온 이 책을 기점으로 손미나라는 사람의 전과 후가 나누어지는 것 같습니다. ‘인간 손미나’의 측면에서 본다면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요? ”개인적인 희망사항은 그때와 지금의 저는 많이 안 달라진, 그 어떤 핵심적인 저의 면모가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17년 전의 저는 확실히 풋풋하지만 그래도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은 솔직히 들어요. 철이 안 들었단 얘기죠(웃음). 그 사이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인생의 희노애락이랄까 이런 것도 좀 더 알게 되고. 그리고 좀 더 어른이 됐겠죠. 그럼에도 저는 개인적으로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이신 것 같기도 하고요. ”뭐가 달라졌냐고 막상 물어보시니까 잘 모르겠어요(웃음). 여전히 그냥 철없고 정신 없고 실수 많이 하고.“

”어쩌면 한 가지가 있다면 그때보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좀 더 많아졌겠죠. 나이를 먹으면 아는 것이 많아져서 겁도 많아지고 용기가 사라지죠. 그래서 어쩌면 아까부터 제가 용기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이 책을 다시 한 번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에 내놓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근저에는 저에게 지금 이게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뭔가 한번 지금쯤 연료를 다시 주입해주고 싶은 나이이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어찌 보면 30대 딸과 50대 엄마가 같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네요. 30대 때 이 책을 읽었던 여성이 엄마가 돼서 30대가 된 딸에게 선물로 줄 수 있는 …. ”둘 다 필요할 때인 것 같거든요. 여자의 나이가 30대 넘어갈 무렵에는 사회적으로 많이 부딪히는 것도 있고, 한국에서 살다 보면 커리어적으로도 고민을 하게 되고. 현실과 꿈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사실 큰 문제잖아요. 요즘 뭐 그런 고민 안 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있을까요? 남자 분들도 마찬가지로 고민이겠지만. 그런 시점을 한 번 거치고 그 다음에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애 엄마가 되든 안 되든, 이제 쭉 막 열심히 살았는데, 또 한 번 고민하는 시점 중 하나인 것 같거든요.“

”그런 시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제 스스로에게 들었고, 저에게도 용기 한 점이 필요해서 이 책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고, 편집자랑 읽으면서 ‘우리끼리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읽어도 좋구나’ 싶어서(웃음).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이유가 있구나’,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 데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이 책의 미덕이라면 아무래도 손미나라고 하는 유명인이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30대 초반의 나이에 스페인으로 날아가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는 것이 가장 크겠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가치가 없으니 다 때려치고 떠나세요’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죠. 절대 아니죠! 이 책의 에필로그 그러니까 맨 마지막 챕터를 보면 그런 얘기가 나오거든요. 1년 있다가 스페인에서 돌아와서 이 책을 쓰고 있는데, 제가 여기서 고백을 해요. ‘내 삶은 변한 게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저는 지금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좀 다른 삶을 살게 됐지만, 처음 스페인에서 돌아와서 바로 회사를 그만둔 것도 아니고. 우연히 책이 이렇게 이제 다른 길을 열어준 결과가 됐지만 저는 오히려 제 자리에서의 행복을 찾아서 왔거든요. 그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만두고 떠나라가 아니고 오히려 반대되는 이야기에요. 현실에서 뭔가 행복과 자유를 찾을 수 있는 힘을 주는. 그 역할을 했던 것 같고, 그것이 독자에게 전해진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이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독자에게 뭘 전달해야지 하고 저랑은 상관없는 일을 전달한 게 아니라, 그냥 이 얘기가 결국은 저이기 때문에 저의 변화가 다른 분들에게 전이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7년 전 독자들과 지금 독자들이 다른 점은 이제 스페인을 다녀온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거겠죠. 스페인을 다녀 온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도 다를 것 같습니다. ”다른 필터로 찍은 사진을 보는 기분으로, 스페인을 또 다른 모습으로 관찰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똑같은 경험은 안 했지만 ‘이 사람이 이랬는데’, ‘아! 나는 이런 경험을 했었지’ 하며 추억을 쌓을 수도 있는 거고.“

-17년 전에도 이런 질문을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에이, 손미니니까 그게 가능한 거지“라는 것 말이죠. ”많이 받았죠(웃음). 전 다른 재주는 없는데 사람 친구 사귀는 재주는 있는 것 같거든요. 얼마 전에 사적인 모임에서 윤종신씨를 만났는데요. 저한테 “너는 네가 가진 최고의 재능이 뭔지를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는 거예요.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였죠… 그래서 그게 뭐냐고 했더니 ‘누구든지 보면 사람을 끄는 어떤 게 있다“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사업을 크게 하셨어야 하는 건데 말이죠(웃음). “말씀하신 대로 ’손미나니까 그렇지‘라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누구나 갑자기 길에서 누굴 만났는데 그 사람이 평생 베프가 되고, 집에 초대를 받고. 이렇게 막 이어지지는 않죠. 근데 또 어떻게 보면 그게 저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엄청난 매력이 있다기보다는 제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좀 더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편이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해요.”

“좋든 나쁘든 그냥 저는 이렇게 열려 있는 사람인 거고, 그랬을 때 더 많은 기회가 쏟아져 들어오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들보다 상처받는 일도 많지만 또 그중에 좋은 일도 있는 거고. 뭐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런 부분을 캐치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뭐 이 사람이니까 그렇겠지‘라는 시각이 아니라 좀 더 마음의 변화가 일지 않을까요?”

-그렇죠. 책에도 나오지만 당시 만났던 스페인 사람들은 한국의 유명인이 자기들과 떠들고 밥 먹고 놀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잖아요. 그러다가 한국 사람들이 와 가지고 사인 받는 걸 보고 눈치 챘다는 얘기. “그렇죠. 맞아요.”

-일반인 ’손씨‘로 그냥 갔던 거 아닙니까? “그걸 원해서 간 것도 있었죠. 당시 국내에서는 파파라치가 따라다닐 정도였기 때문에 좀 피곤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스페인은 편안한 곳이긴 했어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뭐 아나운서라고 하면 굉장히 바른 생활만 해야 되고 ….”

-확실히 그런 이미지가 있었죠. “방송에서 뉴스할 때 팩트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에서 파생돼 가지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어야 될 것 같은. 기대치가 너무 높으니까 저희는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거든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정해진 시간에 쌩쌩한 모습으로 시청자를 만난다는 것도 계속 반복되는 일이니까. 제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면서 조금은 익명의 삶이 그리웠었기 때문에 저의 그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생활을 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그걸 알게 된 거죠.”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확실히 그런 면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선배, 조직에서도 그런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였나요?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들도 많았어요(웃음). 예능 같은 데 관심 많고 튀는 후배들이 들어오면 혼나기도 하고. 옷차림 단속도 많았어요.”

-손 작가님은 아나운서이면서도 연예면에 기사가 늘 나오는, 사실상 연예인 같은 존재셨죠. “맞아요. 예능 프로를 많이 했죠. 개콘에도 나왔으니까.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기억이 하나 있어요. 이 책이 나왔을 때 제 지인 PD가 있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친구죠. 동네 친구. 동네 동아리 밴드도 했었고. 근데 이 책이 나오고 만났을 때 그 친구가 ’야! 나는 이 책을 읽고 너무 기쁘다‘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네가 방송국 아나운서가 됐다고 해서 축하할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팔딱팔딱 막 살아있는 물고기 같던 네가 박제가 되는 것 같아서 좀 속상했다‘는 거였죠. 그런데 책을 읽어봤더니 그대로더라는 거예요. ’네가 책 안에 있었고, 그게 너무 반가웠다‘라면서 ’어릴 적 친구로서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어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17년 전이니까 가능했던 거 같아요. 지금은 한국의 유명 방송인이 스페인에 가면 다 알아볼 거 같습니다. “그러게요. 지금은 스페인에 한국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하긴 거의 매일 직항으로 한국인들을 실어 나르니까.”

-이 책을 재출간하기 위해 다시 읽어보시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무엇일까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 인간적으로 제가 나이를 더 많이 먹고 말하자면 어른이 되어서 조심스럽고 더 두려운 것도 생긴 반면 한편으로는 저는 제가 많이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냥 30대 또 다른 버전의 제가 이 안에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뭘 보고도 감동하는. 감정이 풍부한 거죠. 지금은 그게 안 돼요(웃음).”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그때의 풋풋했던 마음을 다시 찾게 된 것. 가수 이적 씨가 추천사를 써줬어요. 여기 보면 여자 아이가 있다고. ’손미나‘라는 여자 아이가 이 안에 있다고 하는 건데, 스스로도 자기를 30대 그러니까 ’어린 손미나 여자아이‘라고 부르는데, 왜 그런지 알겠다. 순수한 동심이 글 속을 활보한다. 이런 얘기였거든요.”

“아직 다 익지 않은 과일 같은 그런 모습의 제가 이 글 속에 있더라고요. 반가웠어요. 저는 읽으면서 반갑고, ’아 이럴 때도 있었구나‘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신선한 에너지를 재충전한 거죠. 예를 들면 제가 오렌지 주스라면 좀 짜놓은 지 돼서 뭔가 시원한 느낌이 덜하게 된 거죠. 근데 거기다 새로운 오렌지를 하나 짜서 집어넣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 책을 단순하게 여행 정보서나 여행 안내서라고 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러고 보면 손 작가께서는 자기 안으로의, 내면으로의 여행에 대한 책도 쓰셨죠.(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2020). “그렇죠. 관심이 많았죠. 우리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식도 잘 먹어야 되고, 좋은 피부를 갖고 싶다면 선블록도 열심히 바르고 뭐 이런 과정들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여행도 마찬가지인 거죠.”

“이를테면 여행이라는 거야말로 우리를 성장시키기 때문에 그 자극을 받으러 가는 거죠. 편안한 데 가서 좋은 호텔에서 잘 먹고 뭐 이런 여행. 사실 그건 관광이겠죠. 그게 아니라 진짜로 내가 여행을 가서 뭔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만나고, 무슨 사건이 생겨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것도 있었어‘ 이렇게 좀 신선한 자극을 받았을 때, 나도 몰랐던 혹은 잠자고 있던 내 자아가 다시 나에게 활기를 주고 변화를 시켜주고 터닝 포인트도 만나게 되는 거죠. 이렇게 되는 게 실제 여행이라면 이것은 밖에서의 자극이고, 내 마음이 그걸 잘 따라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동반되지 않는 그런 여행은 다녀와서 다시 원점으로 …. “우리가 늘 여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이 뭐냐 그러면 저 같은 경우는 적어도 가서 돈을 쓰고 재미있게 놀고 파티를 하고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물론 그것도 여행의 일부지만) 그렇게 자극을 받고 돌아와서 그게 어떻게 내 인생에 내 삶에 내 일상에 변화를 줄 것인가. 어떻게 내 주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할 것인가. 이런 데 도움이 돼야 되잖아요.”

“그렇게 되려면 밖에서 가져 온 것을 김치 묵히듯이 내 안에서 소화시킬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이 두 가지가 병행이 됐을 때 정말로 여행의 시너지가 난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내 자신을 만나고 내가 성장하고. 근데 외부에서 자극을 딱 받고 ’띵‘하고 왔을 때는 몰라요.”

“마치 산티아고길의 끝에 도착하는 그 순간에 시작된다고 하는 것처럼 여행의 진짜 시작은 돌아왔을 때인 것 같거든요. 가서 보고, 자극 받고, 재미있고. 그때도 감동일 수 있지만 돌아와서 이것을 잘 곱씹고, 이것이 내 일상과 어떻게 버무려지느냐에 따라서 이게 진짜 여행을 간 가치가 있는 건지 돈만 쓰고 다니는 건지. 그렇기에 돌아와서 내면적인 성찰과 내 일상과의 접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그런 묵히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거죠.”

-말씀을 듣고 보니까 이 두 여행이 다른 게 아니네요. “그렇죠. 결국은 같은 거예요.”

-또는 여행을 가더라도 동시에 두 개의 여행을 떠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저한테는 그래요.”

-대표적인 게 산티아고길이었겠군요. 겉과 안. 두 여행이 합쳐진 여행. “그래서 너무 좋았던 거죠. 근데 저에게 있어서의 여행은 그렇게 관광만 했던 적은 사실 없어요. 제 책을 보면 여러 나라를 다니고 있는 것 같지만 여러 나라의 여행기를 썼다고 표현하긴 좀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어느 곳으로 가든 그것이 제 내면의 성장과 동반된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뭐 스페인은 바르셀로나에 가서 석사를 하면서 ’30살 여자도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어‘ 이런 자신감을 얻어왔다면, 페루 책(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2015)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어떻게 하면 인간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잘 극복하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성찰이 있었고, 프랑스 책(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2013) 같은 경우는 소설가로서 ’내가 만약에 마이크를 놓고 펜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하면 한 번 더 여기서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예술적인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것 때문에 사실 날씨도 별로 안 좋고 러프한 도시에 일부러 저를 던져놓고, 수행하듯이 살았거든요. (제 여행과 책에는) 그런 과정들이 하나하나 다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코로나 기간에도 책을 2권 썼는데 그런 책들이나 마음에 대한 에세이도 저에게는 여행이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인생의 어떤 계기나 턴이 있을 때마다 책이 한 권씩 나왔네요. “맞아요. 저한테는 메디테이션 같은 과정이었던 거니까요.”

-책을 한 권씩 남김으로써 경험을 그냥 갖고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던 거군요. 손 작가께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게 바로 이런 능력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일기 같은 걸 쓰세요? “씁니다. 기록하는 게 습관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매일 뭔가를 써놓는 걸 하셨던 거예요? “네. 저희 집은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사각형으로 된 좌식 테이블을 놓고 네 식구가 각각 모서리에 앉았어요. 그렇게 앉아서 같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이런 게 집안의 문화였어요. 가족끼리 편지도 많이 쓰고. 일기장을 서로 선물하기도 하고.”

-독특하면서도 어쩐지 부러운 가족문화입니다. “부모님께서 저희에게 좋은 습관을 들여 주셨죠.”

-작가로서 여행가로서 사업가로서, 또 먼저 용기를 낸 선배로서 요즘 MZ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너무 많은데요. 근데 이거 약간 잘못하면 꼰대 같은 소리가 될 수도 있어서(웃음). 지금은 뭔가 보이는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더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보이는 건 많은데 진짜 롤모델은 없어요. 정보도 너무 많고 모든 사람이 다 인플루언서고 모든 사람이 다 저널리스트고 모든 사람이 다 뭐 …. 도대체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는 건지. 근데 막 세상은 굉장히 혼란스럽고.”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안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내가 누구지도 모르겠는 거예요. 오히려 너무 많이 펼쳐져 있다 보니까 꽉 막혀가지고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어디로 나가야 될지를 모르는 거죠. 그냥 멈춰져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저는 갖고 있어요.”

-메뉴가 너무 많은 메뉴판을 놓고 고민하는 결정장애 같은 걸까요. “그러니깐요. 우리가 그 안에서 어쨌든 살긴 살아야 되잖아요.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거 아니니까. 저는 우리 친구들이 너무 당장의 결과물 같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조금 멀리 보고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겠다라는 것을 좀 잡아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른바 ’멀리보기‘ 키워드라고 해야 할까요? “옛날에 우리 때는 ’20년 후를 상상해 봐야 돼‘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건 아니죠. 왜냐하면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예전에 강연을 가면 20년, 10년 후를 바라보고 이런 걸 계획해라 같은 얘기를 대학생들이 해줬는데 사실 저도 그렇게 안 하는데요.”

“이제는 단기 계획이 맞아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게 당장 내일만 생각하는 삶을 사는 거는 아니거든요. 나라고 하는 배가 자유롭게 항해하는 거는 좋다 이거예요. 근데 등대가 어디 있는지는 그래도 봐야 침몰하지 않으니까. 그걸 잘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요즘 시대가 어렵다고는 해도 정신 바짝 차리면 호랑이 굴에 끌려가도 산다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빛이 잘 보이는 것이거든요. 자기의 관점이나 생각에 반전을 하다 보면 지금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희망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런 걸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

-손 작가께서도 17년 전 멀리 보셨기 때문에 갈 수 있었던 거겠죠. ”그렇죠. 저도 사실 모두가 가지 말라고 그랬죠. 무조건 저를 지지하는 가족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였어요. 뭐 저의 라이벌들은 좋아했겠지만(웃음). 제가 사라지니까 좋았겠죠.“

-가족이 가장 크게 반대했을 것 같은데, 아니었군요. ”저희 가족은 좀 특이해서 그냥 ’뭐 네가 고민한 게 맞겠지‘ 약간 이런 분위기. 근데 그런 치어리딩은 중요한 것 같아요. 남들이 아니라고 해서 너무 거기에 끌려가지도 말고 자기의 어떤 주관을 갖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좀 멀리 보고.“

이후에도 인터뷰는 좀 더 이어졌지만, 책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기에 이곳에 게재하지는 않기로 한다. ’1만자 인터뷰‘를 콘셉트로 하고 있는 ’양형모의 만터뷰‘는 인터뷰이의 육성을 가급적 최대한 살리고, 기사량의 제한이 없는 온라인의 장점을 살려 ’기~인 인터뷰‘로 정리하는 것이 특징이지만 손미나 작가와의 인터뷰는 정말로 1만자가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손 작가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재능이라고 했다. 물론 그의 외모가 출중하고, 그의 이야기가 넷플릭스 시리즈만큼이나 재미있어 절로 빨려 들게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직접 만나 대화를 하다보면 그만의 독특한 ’향기‘에 오감이 들뜨게 된다.

그 향기의 정체는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유의 향기. 그가 지금 자유하든 그렇지 않든, 그 향기는 온전히 살아 그와 함께 하는 순간과 공간을 차곡차곡 채운다. 사람들은 그 자유의 향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씩 그에게 다가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그것은 자유의 향기. 손미나, 당신은 자유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사진제공 | 코알라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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