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깃든 55년 땀과 눈물…"문화유산 장인 인정 받는 세상되길"
문화유산 복원 돕는 석장 父子…"전통 맥 잇기 위한 지원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임동조(68) 경기도 무형문화재 석장(石匠·돌을 다루는 장인) 보유자는 누군가와 만나 인사를 나눌 때 명함의 뒷면을 먼저 보여준다.
서울 광화문 앞에서 환히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이 담긴 면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광화문을 지탱하는 육축(陸築·성문을 축조하기 위해 큰 돌로 만든 구조물)을 이전·복원하는 데 힘쏟았던 그의 이력을 보여주는 자료다.
1969년 7월 처음 돌과 인연을 맺어 올해로 55년째. 광화문 복원을 자신의 작업 중 제일로 여겨온 그는 최근 또 한 번 광화문 복원에 힘을 보탰다.
1920년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월대(越臺, 月臺·중요한 건물 앞에 넓게 설치한 대)를 통해서다.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월대 복원 기념행사에서 만난 임 석장은 "지난여름 월대만 생각하면서 보냈는데 마침내 국민들께 보여주는 날이 왔다"며 환히 웃었다.
광화문 월대가 약 100년 만에 제 모습을 찾는 데는 돌을 깎고 다듬는 석공들의 역할이 많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올해 6월부터 도석수(우두머리 석공)인 임 석장을 포함해 약 30명의 장인이 현장에 투입돼 월대 주변을 울타리처럼 두른 난간석을 배열하고 각종 석조 부재를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임 석장의 노련한 경험과 눈썰미는 특히 진가를 발휘했다.
당초 문화재청은 경기 구리 동구릉에서 찾아낸 난간석이 100년 전 월대에 쓰인 원형 부재라는 점에서 앞쪽에 모아 배치하려 했으나, 19점의 난간석이 미세하게 다른 점을 확인했다.
임 석장을 비롯한 장인들이 난간석 뿌리와 모양 하나하나를 살펴본 데 따른 것이다. 이를 통해 각 난간석은 원래 있던 자리에 제대로 놓일 수 있었다고 한다.
임 석장은 "광화문 월대는 '서 푼(3푼·1푼을 약 0.3㎝로 보면 약 0.9㎝)의 기교가 들어있는 구조물"이라며 "난간석 칸마다 미세하게 높이가 다른데 굉장히 정교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왕이 걷는 어도(御道)에서 신하들이 다닌 길로, 또 광화문 바로 아래에서 월대 앞쪽으로 정교하게 계산된 듯한 높이 차가 난다. 이런 점은 배수에도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복궁 근정전 월대, 덕수궁 대한문 월대 등 다양한 월대를 작업한 그로서도 광화문 월대는 의미가 남다르다.
임 석장은 "작업할 때는 정말 힘들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복원하면서 보니 월대 없는 광화문은 일부분이었다"며 "완전한 모습이 된 광화문이 만남의 광장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어느덧 '선생님', '장인'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진 그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아들인 임경묵(42) 석장 이수자 겸 미성석재 대표는 2006년 보물 '나주 금성관' 복원 공사를 시작으로 경복궁, 덕수궁 등 주요 문화유산 복원 작업을 함께하며 그의 길을 따르고 있다.
임 대표는 "우리나라 석 구조물 문화유산 가운데 해체·복원 작업이 어렵기로 손꼽히는 광화문 육축을 작업하고 미륵사지 석탑을 복원한 아버지 곁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평소 장인 정신의 첫째는 준비라고 하신다. 철두철미하게 준비하시다 보니 일하면서 생기는 작은 실수에도 엄히 야단치셔서 간혹 섭섭할 때도 있었다"며 웃었다.
"처음에는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석공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한 명의 석공 장인으로서 아버지의 전통 기법을 이어받아 우리 문화유산 보수·복원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웃음)
문화유산 수리·복원의 '산증인'이기도 한 임 석장은 최근 현장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수리·복원을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20∼30대 젊은 작업자가 찬찬히 경험을 쌓고 일해야 활력이 도는데 최근에는 일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최근 현장에서 일하는 석공 다수가 60∼70대라고 그는 전했다. 실제 광화문 월대 작업을 위해 장인 30명을 구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임 석장은 "장인 중에서도 무거운 돌을 나르고, 망치질하는 석공은 가장 기피하는 분야"라며 "전통 기술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장인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인들의 기술을 그저 '공사' 또는 '작업'으로만 여기는 경우도 많다"며 "문화유산 현장의 최일선에서 소중한 우리 유산을 지키는데 앞장서는 이들을 제대로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땀 흘리는 장인들이 인정받고 예우받는 사회가 되면 더 많은 이들이 전통을 이으려 할 겁니다. 선조들의 솜씨와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문화유산을 함께 지켜야죠."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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