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문의 검’ 장동건의 각성..하지만 닥쳐드는 ‘회오리 불’은 신벌?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3. 10. 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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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15일 방송된 tvN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에서 타곤(장동건 분)은 역설한다. “아라문? 그딴 거 필요 없어! 너무 오래 그 이름에 묶여 헤맸다. 나는 타곤! 이 이름에 보탤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타곤에게 이것은 하나의 각성. 한 번의 전진이었다. 타곤은 이나이신기 은섬(이준기 분)과의 전투 중 200년 전 신이 된 영웅 아라문 해슬라가 타던 말 칸모르로 알려진 도우리의 등에 올라탔다. 하지만 도우리의 거부로 낙마해야 했다.

전투를 복기하며 타곤은 군장 연발(이주영 분)에게 물었다. “정말 칸모르일까?” 아라문에 연연하는 타곤을 향해 연발은 외쳤다. “왕께서 칸모르 따위가 무슨 소용입니까? 왕께서 옛이야기 속 누군가의 재림이 아니라 타곤이란 이름을 쓰시길 감히 제가 바랍니다!”

그래, 아라문 따위가 무슨 상관이람. 지상의 가장 강력한 정복왕 타곤이 난데. 아라문의 시간은 200년 전에 이미 흘러갔다. 200년쯤 더 흘러 영웅을 꿈꾸는 누군가에게 ‘타곤의 재림’이란 수식을 안겨주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우매한 중생들은 아직 아라문의 미혹에 빠져있다. 그 중심엔 기마군단을 운용치 못하게 하는 저 영물 칸모르가 있다. 칸모르를 없애면 아라문의 전설도 시들어갈 것이다.

타곤은 포위망을 풀어주고 사로잡힌 타추간 등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도우리와 첩자로 잡힌 수하나(김정영 분)를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성사된 포로 교환장. 자기를 살리고자 도우리를 넘겨주려는 은섬을 향해 타추간은 자신이 그냥 죽겠다고 버틴다. 이때 나눈 타곤과 은섬의 대화는 이채롭다.

타곤: “저렇게 기꺼이 죽겠다는 부하가 있으니 참 좋겠구나.”

은섬: “당신은 그게 좋던가? 수하나 저자도, 타추간도, 나를 위해, 당신을 위해 죽길 마다하지 않아. 그게 정말 좋은가? 아, 그렇지 그러니 그 자리에 갔겠지.”

타곤: “괴로워. 내가 가진 모든 걸 저주할만큼 괴로워. 근데 그 괴로움을 티내는 건 비겁한 거야. 기꺼이 당당히 가차없이 희생시키는 거야. 홀로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그 대화 끝에 타곤은 도우리를 베어 죽이고 수하나마저 “누이, 미안해요!”라는 한 마디와 눈물 한방울로 ‘가차없이’ 희생시킨다.

이 장면과, 그에 앞선 회담장 장면에서 “약한 게 죄가 되지 않는 세상, 힘 없는 게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은섬과 “그런 세상은 만년이 지나도 오지 않아!”라 답한 타곤의 대사는 개인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대심문관’ 편을 연상시킨다.

종교재판이 한창인 16세기 스페인 세빌라에 예수가 재림한다. 모두가 재림 메시아를 알아보는 중 종교재판관인 대심문관은 예수를 투옥시키고 심문한다.

심문의 요지는 ‘세상 잘 굴러가고 있는데 왜 재림해 혼란을 부추기냐’는 것이다. 대심문관은 인간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고 향유할 능력이 부족해서 오히려 빵의 유혹, 기적을 요구하는 유혹, 그리고 권력에 귀속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덧붙여 이런 유혹을 거부한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라서 교회가 그것들을 악마로부터 사들여 사람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 양심의 자유는 끔찍한 고통이자 거대한 근심이므로 교회의 결정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 구원받는다고도 덧붙인다.

그리고는 고뇌에 찬 채로 “난 내일 형을 선고해서 가장 사악한 이교도로서 당신을 화형에 처할 것이오. 다시 말해 두지만 내일이면 당신은 순종하는 양 떼들을 보게 될 것이며, 그들은 내 손짓 하나로 당신을 불태울 화형대 속에 장작을 던져 넣을 것이오. 나는 내일 당신을 화형에 처하겠소. 이것으로 할 말은 다 했소.”라고 말을 맺는다. 대심문관 역시 나름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세계의 질서를 구축했던 것이다.

그리고 듣기만 하던 예수는 대심문관의 입술에 조용히 입술을 맞추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만약 예수가 논쟁에 나섰다면 회담장에서의 은섬과 타곤 같지 않았을까 싶다.

대심문관에게 재림 예수가 필요없듯, 타곤에게도 재림 아라문은 필요 없어졌다. 희생을 강요하는 타곤이지만 그 역시 저 가진 모든 걸 저주할만큼 괴롭다고 고백했다. 무수한 종교재판을 강행하고 예수에게까지 화형을 결정한 대심문관의 고뇌를 닮았다.

타곤은 더 많은 피를 막기 위해 적은 피를 감내하지만 제 욕망을 앞세우는 자고, 은섬은 남의 피를 대신해 제 피 흘리는 것을 마다않는, 헌신하는 자다. 욕망을 앞세울 때 행복은 자취를 감추지만 헌신을 앞세우면 행복과 보람이 뒤를 따른다.

아무도 믿지 말라던 타곤은 회담에서의 약속을 어기고 화공을 준비했지만 은섬의 헌신으로 역화공에 노출된다. 뿔뿔이 흩어지는 아스달의 군대, 그리고 타곤을 향해 신벌처럼 다가오는 거대한 회오리불. 과연 불신자의 최후가 다가오는 것일까?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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