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불안 글로벌경제 ‘상수’ 재부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란 정치·경제적 반사이익 가장 커
이란 등 참전 국제전 가능성 낮지만
트럼프 재선시 상황 더 악화될 수도
가자(Gaza) 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지 열흘 째에 접어들고 있다. 국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이 정리될 수도 악화될 수도 있어 보인다. 각국 별 이해득실을 잘 따져 이해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비자(韓非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이익을 얻는 자가 주동자”라는 ‘유반(有反)’의 지혜를 강조했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하마스의 노림수는 무엇인지 아직 분명치 않다. 다만 이번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자와 피해를 입은 자의 윤곽은 드러나고 있다.
우선 이번 사태로 이익을 얻은 곳은 이란이고 타격을 입은 곳은 이스라엘과 미국이다. 전쟁 발발 직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태자는 “팔레스타인 편에 서겠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아닌 팔레스타인을 언급한 게 주목할 부분이다.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추진했지만 같은 이슬람권 패권을 추구하는 무함마드 입장에서 이스라엘 편에 설 수는 없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 협상이 중단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사우디는 원자력 발전 기술을 추구하고 있다. 일단은 발전용이지만 핵무장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기술이다. 중동지역 핵확산을 꺼리는 미국은 애초 이를 반대했지만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 수립과 감산 중단을 대가로 허용하기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간의 평화체제를 구축해 미국의 직접 개입을 최소화하며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게 바이든 정부의 목표다.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중동에서 유일한 핵 보유국(추정)은 이란이다. 시아파 이슬람인 이란은 수니파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와는 앙숙이다. 이란과 사우디는 민족도, 역사도, 언어도 다르다. 친미 정책으로 왕정도 유지하고 원유로 막대한 돈을 번 사우디가 핵기술까지 확보하면 중동 패권에서 이란은 수세에 몰리게 된다. 최근 이란과 사우디는 수교를 했지만 숙명적 라이벌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사우디가 감산까지 중단하면 유가하락으로 수입이 줄고 이란산 원유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위축될 수 있다. 그런데 절묘한 시점에 전쟁이 터지며 이스라엘과 사우디, 미국의 삼각 구도가 흔들리게 됐다. 배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란이 하마스가 이번 사태를 일으키는 데 직간접적인 도움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마스가 사용하고 있는 로켓 등 다량의 무기는 이란의 기술로 추정된다.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이번 전쟁의 확산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1973년 제3차 중동전쟁 때와는 정세가 다르다. 당시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남북에서 이스라엘을 협공했다. 현재 이스라엘 동쪽 요르단과 남쪽 이집트와는 평화조약을 맺고 있다. 심지어 현재 이집트 정부는 하마스의 원조인 무슬림형제단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세력이다. 동북쪽 시리아는 내전 중이다. 북쪽으로 국경을 접한 레바논이 이스라엘엔 유일한 위협이다. 이란이 이번 사태의 확산여부를 좌우할 열쇠를 쥐고 있다는 뜻이다.
레바논 집권세력인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다. 게릴라전에 능해 2006년에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막아낼 정도의 무장과 전투력을 갖췄다. 이란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를 통해 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레바논에는 다수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있다. 가자 지구에서 희생자가 급등하면 레바논 여론이 악화돼 집권세력인 헤즈볼라에도 부담이다.
이란산 원유 상당부분이 중국으로 수출된다. 이란이 이번 사태에 개입하면 미국이 경제제재를 하겠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이란의 주요 원유 수출국은 미국이다. 이들의 거래는 미국이 통제하는 달러 결제망 밖에서 이뤄진다. 바이든 정부가 다급히 우리나라가 이란에 지불한 원유수출 대금 60억 달러를 카타르에 동결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제재 효과를 높이려는 일종의 지렛대다.
다만 이란 입장에서도 다시 미국의 제재를 받게되면 경제가 어려워져 정권이 흔들수 있는 만큼 이번 사태에 섣불리 개입할 가능성은 낮다. 우크라이나에 붙잡힌 러시아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서로를 경계하는 미국과 이란이지만 가지지구 민간인 피해를 막아야한다는 데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법부 약화시도에 이어 하마스에 기습까지 허용하며 권력기반이 약해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 축출과 전쟁 승리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시가전에 따른 상당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가자지구에 진입하려는 이유다.
하지만 주변국은 물론 미국까지 인질의 안전을 위협하고 대규모 민간인 피해까지 불러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진입에는 부정적이다.
과거에도 이스라엘과 중동국가 간 전쟁은 결국 협상으로 마무리 됐다. 국제 여론을 감안할 때 이번 역시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로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성과를 얻는게 중요하다. 이스라엘도 이번 전쟁을 길게 끌고 가기 어렵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충돌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중이었고 지금도 미국의 긴축으로 전세계 경제가 어렵다. 대규모 예비군까지 소집되면서 이스라엘 경제의 부담이 엄청나다.
이번 사태가 협상으로 마무리되더라도 중동 불안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되기는 어렵다. 미봉된 상황에 새로운 불씨가 돌 변수는 내년 미국 대선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국제공동 관할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했다. 이란에는 적대적이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해 이란을 압박하면 중동의 시아파 세력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
홍길용 선임기자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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